사람[즐거운 동행 10] 물 한 방울 흙 한 줌의 나들이

광주환경운동연합 회원소모임 '물 한 방울 흙 한 줌' 회원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아이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서 애초 생각만큼 만족스러운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어디  가서 뭘 할지 결정하기 어렵고 비슷한 생각으로 나온 이들에 치이고, 도로를 막은 차들의 행렬에 치이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만 더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아이와의 나들이를 제도화된 서비스 상품의 소비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물 한 방울 흙 한 줌’이라는 생태문화답사모임이 있다. 이들의 나들이는 다르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기성품이 된 경관지 여행이나 트랜디한 문화상품의 소비가 아니라 자연과 자연 속에 깃든 문화 체험이다. 그러니 사진 찍는 것만 목적이 된 나들이를 서비스하는 시장의 풍경과 이들의 체험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의 5월 프로그램은 ‘영산강 자전거 탐사’다. 그 길을 따라나섰다. 사창교에서 시작해 광주천을 지나 풍영정까지 자전거로 갈 참이다.

 

청년모임에서 가족들의 생태문화답사모임으로 

‘물 한 방울 흙 한 줌’은 광주환경연합 회원들의 소모임이다. 1999년 지리산 생태답사를 시작으로 17년을 이어온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장수 생태문화 답사 모임이다. 모임 이름도 회원들의 공모로 정해졌는데 물 한 방울 흙 한 줌도 소중히 여기는 환경연합 회원 모임이 되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가족단위로 참여하고 있지만 시작은 청년들의 답사모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청년들이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모임에 참여하다보니 자연스레 가족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12가족 정도 참여하고 있는데 서너 가족만 모여도 아이들 노는 소리에 시끌벅적하다. 

답사는 한 달에 한 번 떠난다. 연초 회원총회에서 연간 계획을 세우고 회원들이 나눠서 세부 일정과 프로그램을 짠다. 광주천, 영산강, 무등산 등 광주지역의 산과 강, 습지뿐만 아니라 순천만, 제주 등 자연과 생태를 만날 수 있는 곳들은 어디든 찾아간다. 또 사찰이나 문화유적지 등 역사문화답사, 책을 읽고 떠나는 문학기행도 한다. 일 년에 한두 번은 1박 2일 일정으로 답사를 떠나는데 지난해에는 통영 연대도에서 에너지 자립 마을 체험을 했다. 보기 좋은 곳만 찾는 것은 아니다. 새만금갯벌 간척지나 승촌보 공사현장 등 논란이 되는 곳을 찾아 현장을 직접 보고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세월호사고 2주기를 맞아 푸른길 공원을 걸으며 희생자들을 기리고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때는 답사보다 농사를 중심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땅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해보자며 땅을 빌려 모도 심고 고구마와 감자, 배추 농사를 3년 정도 지었다. 올해도 모내기도 하고 함께 모여 김장을 담글 예정이다.  

‘물 한 방울 흙 한 줌’ 답사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일회용품 안 쓰기, 배움이 있는 답사, 에너지 적정답사가 그것이다. 이를 테면 도시락을 쌀 때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그 지역의 문화해설사를 초대해 더 알찬 답사를 하기도 한다. 또 지역 안에서 움직이긴 하지만 멀리 가야할 때는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카풀을 이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함께 자라는 아이들 

수풀에서 장지뱀 한 마리를 찾아서 이리저리 관찰하며 신이 난 아이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국윤주 씨는 청년모임이던 때부터 참가했다. 지금은 두 딸과 함께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큰 딸 유민이를 안고 제주 물영아리오름을 올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3살이나 됐어요.”라며 흐뭇해한다. 다 큰 유민이는 이제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한몫하고 있다. 유민이처럼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모임에 참여한 아이들은 12, 13살 정도 됐다. “아이들이 많이 컸어요. 저학년일 때는 말도 잘 듣고 화목했는데 요즘은 고분고분하지 않아요. 제가 준비하는 답사는 주로 걷는 것들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반발을 많이 받고 있어요.”라며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사실 아직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는 것보다 또래를 만나고 노는 것이 더 즐겁다. 그래도 이 모임에서만큼은 스마트폰이나 게임기 대신 자연 안에서 새로운 놀잇감도 찾고 어울려 논다. 그리고 올해는 아이들이 직접 답사를 준비할 정도로 아이들도 나름대로 모임을 즐기고 있다. 

송명수 회원은 아들과 함께 왔다. “저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죠. 하지만 개별 활동은 허락되지 않아서요.”라며 웃는다. 그래도 모임에 참여한 지 8년이나 됐다. 처음은 아내 손에 이끌려 왔지만 이제는 아내 없이도 아들 손 붙잡고 함께 나설 정도다. “농사도 짓고 김장도 함께 하고, 다 기억에 남고 좋죠. 부부싸움을 해도 이 모임에 오면 다 풀려요.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를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 오면 환경문제가 어떤 것들이 있고 또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특히 아이들이 이런 활동을 하고 배울 수 있어 더 좋아요.”라고 말한다.  

가족이 총출동한 이종명 씨에게 이 모임은 일요일을 깨우는 존재다. “모임이 없으면 무의미하게 뒹굴거리다가 월요일을 맞게 돼요. 사실 나이가 들수록 관계 맺는 것에 두려움도 있고 또 피로감이 있는데 여기 참여하면서 그런 것들을 깰 수 있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낯설지만 익숙해지는 그 과정이 즐거워요.”라며 말한다. 가족이 가장 기억에 남는 답사는 가장 힘들었던 첫 답사였다. “산을 간다고 해서 걱정을 했죠.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어렸거든요. 근데 회장님이 동네 뒷산 수준이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죽는 줄 알았어요. 쌍둥이들도 다시는 안가겠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이후에 그 어떤 답사도 힘들지 않더라고요. 아이들도 그때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라고 하고. 통영 연대도에서 1박2일을 했던 때도 기억에 남아요. 다른 답사모임도 있지만 답사와 환경을 주제로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서 좋아요.” 그의 아내 이호정 씨의 말이다. 

이날 프로그램을 준비한 정영준 씨는 6살 딸과 4살 아들과 함께 왔지만 다른 아이들의 상태도 챙기고 자전거에 이상이 있으면 달려가 챙기느라 바쁘다. 그의 아이들은 모임의 더 큰 아이들이 알아서 돌본다.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밖에 나가 애들을 캐어하는 게 부담이죠. 우리 답사모임에는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있어서 애들이 자기들끼리 돕고 챙겨요. 그래서 우리 집처럼 아이들이 어려도 부모들이 수월해요.” 영준 씨의 아내 정미영 씨의 말이다. “우리 가족에게 이 모임은 나침반 같은 곳이에요. 한 분 한 분 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알려주는 분들이죠. 특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많이 배워요.”라며 자랑한다.  

 

다음 달은 어디로 가볼까 

풍영정에 들러 영산강과 풍영정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회원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나들이의 백미는 도시락이다. 한곳에 둘러앉아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 먹는다. 아이들이 뚝딱 도시락을 비우고 재잘대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좀 쉰 뒤 다시 페달을 밟아 풍영정으로 갔다. 풍영정은 조선시대 지어진 정자로 광주와 광산 일대 100여 개의 정각 중 대표적인 곳이다. “저 위에 제일호산이라는 판 보이죠. 명필 한석봉이 쓴 거랍니다.” 문화해설사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은 국윤주 씨가 해설을 맡았다. “저 앞에 보이는 강은 예전에 극락강이라고 불렀어요. 그만큼 아름다운 강이었어요.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을 벌이면서 영산강 밑바닥을 긁어내는 공사를 하려고 했어요. 다행히 환경단체 노력으로 막아냈지만 만약 그 계획대로 됐다면 이런 모습도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장난치던 아이들도 국윤주 씨의 설명에 슬쩍 고개를 돌려 현판을 찾고 강을 본다. 어른이 된 후에도 지금의 이 광경을 또 볼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힘들다고 투덜대던 아이들이 모임이 끝나자 아쉬워한다. 다음 모임은 모내기란 말에 아이들이 술렁거린다. 모 심을 생각에 힘이 들지만 논에서 뒹굴 생각을 하니 즐겁다. 그 다음에는 영광 송이도에도 가고 무박으로 별자리도 볼 계획이다. 덩달아 다음 달이 기다려진다.  

3대가 한 가족인 게 기본이고 온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였던 시절은 갔다. 아이까지 셋, 아니면 넷이 기본인 핵가족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삶과 생각을 공유하는 이웃이 없다. 핵가족들이 한 모임에 모여 서로에게 삶의 길을 묻고 답하며 더 큰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일은 가능하다. ‘물 한 방울 흙 한 줌’이 그것을 알려 주었다.

 

글 | 박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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