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133] 인류 스스로 절멸하지 않기 위해

  

보론을 본론처럼 읽기. 『생태민주주의』의 보론 ‘생태민주주의 관점에서 본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생태민주주의의 관점으로 숙의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공론장의 숙의란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이상적인 요소이지만 사회의 여러 가지 패러다임에서 배제된 공론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세대 인간 중심, 국가 중심, 산업자본주의 중심으로 만들어진 패러다임이 공론장 안에서 새롭게 구성되지 않는다면 숙의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지배적 사회 패러다임이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숙의 이전의 작업이다. 그 작업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공론장 안에서 누가 배제되었는가? 숙의의 과정에서 누구의 이익과 피해, 위험이 어떻게 배분되는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정부가 결정 권한을 시민들에게 위임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충분히 인정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탈핵을 모토로 내세웠던 정부와 여당은 공론조사에 맡기기로 결정한 순간부터는 중립자의 자세로만 자신들의 역할을 한정했고, 사회경제적 약자나 미래세대, 생태적 입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5·6호기 건설 중단/재개의 결정 수단으로 공론조사와 숙의의 범위를 좁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3분의 1이 진행된 공사를 중단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최대의 쟁점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이 낯선 상황에 처한 대중여론은, 녹색운동 내부의 낙관론과는 달리, ‘매우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적 관점의 이해득실을 가장 중요한 지점에 놓고 부딪혔다. (과하도록)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이번에는 마저 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정부와 공론화위는 숙의민주주의와 갈등 해결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냈다고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경주지진에 이어 포항지진을 경험한 원전 주변 주민들은 오늘도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선, 공론장 안에서 누가 배제되었는가. “중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경제적 약자와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숙고하는 데 실패”했다. 숙의의 과정에서 누구의 이익과 피해, 위험이 어떻게 배분되었는가. “시민 다수는 원전 중심의 전력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확신할 수 없었”고, “국민경제, 에너지 수급, 수출, 일자를 걱정하는 개발주의, 애국주의 프레임이 보수언론의 스피커를 통해 확산”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공론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숙의민주주의를 체험하는 하나의 성과와 생태민주주의 앞에서 크게 되돌아 나가는 중요한 실패를 기록하였다.  

여전히 우리는 행복의 맥락을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안에서 찾는다. 삶의 질과 지속가능 복지 지수 같은 것들이 GDP를 대체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탈성장 전략을 구축하여 자본가와 노동자의 삶에 반영하며, 자연환경이 인류의 공동자원이라는 사실을 이의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일은 시한을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다시 민주주의의 작은 실험들에 성공하고 생태적 결정에서 실패하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며 아주 천천히 좋아진다. 좋아진다는 믿음을 가질 때조차도 말이다. 그런 이유로 저자의 낙관론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따라 읽는다. “나는 지구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지구 생태자치연방의 꿈이 실현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믿는다. 수많은 전쟁의 고통을 겪은 후 유엔이 만들어졌고, 매우 더디고 어렵지만 전쟁보다는 평화가 더 확장되어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스스로 절멸하지 않기 위해 지구 차원에서 생태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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