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림 26] 바보처럼

 

누군가 나에게 새해소망을 물었습니다. 나는 목표와 소망 사이에서 언제나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이라 선뜻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목표는 구체적인 행동을 요하고 소망은 신의 한 수가 필요한 꿈같은 일 혹은 기적에 가까운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간단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데 얼마 전 친구가 말했던 새해소망이 생각났습니다.  

친구의 새해소망은 바보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남들 눈에 다소 바보처럼 보이더라도 그냥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선수를 뺏긴 것이 아쉬웠을 정도로 그 소망이 아름다운(?) 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그림밖에 모르는 화가 분을 만나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데려온 여자 친구가 아들을 닮아서 약간 바보 같아서 좋았다는 화가 분의 말씀에 일행 중 누군가 “곰은 여우 만나야죠. 야무지고 똑똑한….” 이라는 뻔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자 화가 분은 그냥 바보로 사는 게 좋다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내 눈엔 바보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살아야만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당당함과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부러웠습니다. 나 역시 요란한 빈 수레를 끌며 언덕을 오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데 혼자만 모르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진정한 바보로 살 수 없는 속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세가 아니라 진짜 바보처럼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새로운 날들에 축복을 빕니다. 더불어 차가운 길 위에서 갈 곳 몰라 막막한 날에도 항상 자신을 지켜나갔던 당신에게 새해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보냅니다. 

  

글 · 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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