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8년 전 어느 출판사 회의실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선생님께서 지인과 함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당시 선생님은 유명한 그림책작가셨고 나는 책 한 권 내지 못한 신인이었다. 나는 한눈에 선생님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선생님은 나를 전혀 모르셨다. 하지만 밝게 웃으시며 내 인사를 받아주셨다. 오늘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으니 8년 전 5분 남짓한 시간이 선생님과 내가 함께한 유일한 시간이다.
그날 선생님은 자신의 신간을 보기 위해 출판사로 직접 들르신 것이다. 책이 나오면 댁으로 보내드릴 텐데 어려운 걸음을 하셨냐고 송구스럽게 바라보는 담당자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로 나온 책이 너무 보고 싶어서 밤에 잠도 설쳤어요. 자랑하고 싶어서 내 친구도 데려왔는데….”
선생님 곁에서 선생님처럼 친구도 수줍게 웃고 계셨다. 나는 그림이 든 내 화구가방을 손으로 힘차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언제까지 즐거울까?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설레며 일하지 못했다. 늘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안달복달 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즐거운 상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언제나 목표점에 다다르기만 원했다. 하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진다고 여겼던 목표점은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과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데 목표점은 처음부터 그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다.
선생님은 50년 넘는 세월동안 화폭을 마주하며 아이들이 웃는 모습 시장에서 일하는 상인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을 그리셨다. 마지막 작품은 모나미 볼펜으로 그리신 어느 낡은 괘종시계 이야기다.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그림책을 만들었고 그 일이 너무 좋아 밤잠을 설친다고 수줍게 말씀하시던 선생님은 이제 책으로만 만나 뵐 수 있다. 아니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말한다. 50년 넘는 세월을 한 길을 걸을 수 있었기에 선생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또 누군가는 오늘 소담하게 내리는 눈은 선생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는 다시 없을 것이다.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모습 그대로가 남는 것이라고 오늘도 선생님께서 남기신 책 한 장 한 장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 같다. 사람들 곁에 책으로, 그림으로, 글로 남아 가장 오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꽃이다. 지금 내리는 저 눈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리라.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8년 전 어느 출판사 회의실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선생님께서 지인과 함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당시 선생님은 유명한 그림책작가셨고 나는 책 한 권 내지 못한 신인이었다. 나는 한눈에 선생님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선생님은 나를 전혀 모르셨다. 하지만 밝게 웃으시며 내 인사를 받아주셨다. 오늘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으니 8년 전 5분 남짓한 시간이 선생님과 내가 함께한 유일한 시간이다.
그날 선생님은 자신의 신간을 보기 위해 출판사로 직접 들르신 것이다. 책이 나오면 댁으로 보내드릴 텐데 어려운 걸음을 하셨냐고 송구스럽게 바라보는 담당자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로 나온 책이 너무 보고 싶어서 밤에 잠도 설쳤어요. 자랑하고 싶어서 내 친구도 데려왔는데….”
선생님 곁에서 선생님처럼 친구도 수줍게 웃고 계셨다. 나는 그림이 든 내 화구가방을 손으로 힘차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언제까지 즐거울까?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설레며 일하지 못했다. 늘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안달복달 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즐거운 상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언제나 목표점에 다다르기만 원했다. 하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진다고 여겼던 목표점은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과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데 목표점은 처음부터 그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다.
선생님은 50년 넘는 세월동안 화폭을 마주하며 아이들이 웃는 모습 시장에서 일하는 상인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을 그리셨다. 마지막 작품은 모나미 볼펜으로 그리신 어느 낡은 괘종시계 이야기다.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그림책을 만들었고 그 일이 너무 좋아 밤잠을 설친다고 수줍게 말씀하시던 선생님은 이제 책으로만 만나 뵐 수 있다. 아니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말한다. 50년 넘는 세월을 한 길을 걸을 수 있었기에 선생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또 누군가는 오늘 소담하게 내리는 눈은 선생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는 다시 없을 것이다.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모습 그대로가 남는 것이라고 오늘도 선생님께서 남기신 책 한 장 한 장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 같다. 사람들 곁에 책으로, 그림으로, 글로 남아 가장 오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꽃이다. 지금 내리는 저 눈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리라.
글 · 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