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나 시바 지음, 우석영 옮김, 1만6000원
연말이라 여럿이 식사하는 자리가 많아지는 시간들이다. 의례적인 안부와 서로의 사는 이야기가 오가고, 식탁 위에는 음식과 더불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온갖 분야의 이야기들이 모자란 반찬 추가하듯 쉬지 않고 올라온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덜 화제가 된다.
“오늘날 식량은 더 이상 영양원이 아니다. 식량은 일개 상품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투자 대상이자 이익 창출의 대상인 무언가로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세계 곳곳에서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고,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2007년 이후 튀니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카메룬, 인도 등 37개국에서 식량 관련 폭동이 51회 발생했다. 현재의 푸드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 정의, 평화 같은 중요한 모든 기준에서 볼 때 심각하게 고장 나 있다.”
이것을 한 문장 안에 다 담아내자면, 책의 제목처럼,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가 될 것이다. 회식의 다양한 주제들 사이에 곁들여 놓고 깊이 있게 파고들기에 몹시도 곤란한 질문이다. 패러다임과 패러다임이 부딪히는 주제라는 것을 우리는 학습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산업 패러다임과 생태 패러다임의 대결에 대한 논의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강력한 대결에 관한 주제는 회식이 끝난 후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자.
“둘 중 어떤 패러다임을 우리의 렌즈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답변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두 패러다임에서 ‘세계’와 ‘푸드’의 의미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산업농, 기계농이라는 지배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검토해보자. 이 패러다임에서 ‘푸드’는 단지 이윤을 위해서 생산되고 거래되어야 하는 상품에 불과하며, ‘세계’는 씨앗과 농약이 농업용 투입물로서 판매되고 농산물이 식품으로서 판매되는 시장에 불과하다. 이 렌즈로 지구를 본다면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건 화학 비료와 제초제, 기업에서 생산한 종자와 GMO(유전자 변형 유기체), 농기업과 생명공학 기업이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는 다르다. 생산되는 식량의 30%만이 산업형 농장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 70%는 자그마한 땅에서 일하는 소농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자그마한 땅에서 일하는 소농들, 결국 그렇게 귀결된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먹을거리를 ‘작게 일구는 일’에서부터 자연의 경제와 인간의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태어나게 된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 환경 운동가이자 환경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가 이끈 생태농업 공동체 나브다니야의 경험은 아마도 이 책의 밑거름이 되었을 텐데, 책의 곳곳에는 인간과 자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도사리고 있으며, 산업농이 어떻게 세계를 기형적으로 살찌우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 있다. 기형적으로 비만한 우리의 세계는 생태 파괴와 기아, 빈부격차와 전쟁, 위기에 처한 식량 민주주의, 인간과 여타 생물 종 사이에 깨진 균형감 등등의 병증들을 갖고 있다는 진단서가 첨부된 것은 물론이다.
사실 우리는 이 세계의 문제들 앞에서 언제나 진땀만 흘린다.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는 아이 앞에서 마음이 아프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을 위해서 기도하는 한편 산업농의 세상을 비판하기도 하며, 살충제로 지탱되는 먹음직스러운 먹을거리 앞에서 혀를 끌끌 차지만, 대부분의 경우 악의적으로 세계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을 테지만, 우리는 혹은 나는 무심한 파괴의 군단에 속해 있을 때가 훨씬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눈에 띄는 문장 하나가 있다. “우리 자신이 곧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변화가 되도록 노력하자.” 사실 그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아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 세계의 모든 변화 혹은 거의 모든 혁명은 그것에서 출발한다. 우선 이것 하나를 외도록 하겠다. 볼리비아에서는 각 지역의 소농가 농민들이 생산한 200여 종의 감자 품종이 시장에 등장하지만, 우리가 집어 먹는 포테이토칩은 단일 경작 방식으로 생산된 감자로 만들어져 마트에 진열된다. 결국, 감자들은 그냥 감자가 된다.
글|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반다나 시바 지음, 우석영 옮김, 1만6000원
연말이라 여럿이 식사하는 자리가 많아지는 시간들이다. 의례적인 안부와 서로의 사는 이야기가 오가고, 식탁 위에는 음식과 더불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온갖 분야의 이야기들이 모자란 반찬 추가하듯 쉬지 않고 올라온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덜 화제가 된다.
“오늘날 식량은 더 이상 영양원이 아니다. 식량은 일개 상품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투자 대상이자 이익 창출의 대상인 무언가로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세계 곳곳에서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고,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2007년 이후 튀니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카메룬, 인도 등 37개국에서 식량 관련 폭동이 51회 발생했다. 현재의 푸드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 정의, 평화 같은 중요한 모든 기준에서 볼 때 심각하게 고장 나 있다.”
이것을 한 문장 안에 다 담아내자면, 책의 제목처럼,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가 될 것이다. 회식의 다양한 주제들 사이에 곁들여 놓고 깊이 있게 파고들기에 몹시도 곤란한 질문이다. 패러다임과 패러다임이 부딪히는 주제라는 것을 우리는 학습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산업 패러다임과 생태 패러다임의 대결에 대한 논의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강력한 대결에 관한 주제는 회식이 끝난 후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자.
“둘 중 어떤 패러다임을 우리의 렌즈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답변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두 패러다임에서 ‘세계’와 ‘푸드’의 의미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산업농, 기계농이라는 지배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검토해보자. 이 패러다임에서 ‘푸드’는 단지 이윤을 위해서 생산되고 거래되어야 하는 상품에 불과하며, ‘세계’는 씨앗과 농약이 농업용 투입물로서 판매되고 농산물이 식품으로서 판매되는 시장에 불과하다. 이 렌즈로 지구를 본다면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건 화학 비료와 제초제, 기업에서 생산한 종자와 GMO(유전자 변형 유기체), 농기업과 생명공학 기업이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는 다르다. 생산되는 식량의 30%만이 산업형 농장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 70%는 자그마한 땅에서 일하는 소농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자그마한 땅에서 일하는 소농들, 결국 그렇게 귀결된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먹을거리를 ‘작게 일구는 일’에서부터 자연의 경제와 인간의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태어나게 된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 환경 운동가이자 환경 사상가인 반다나 시바가 이끈 생태농업 공동체 나브다니야의 경험은 아마도 이 책의 밑거름이 되었을 텐데, 책의 곳곳에는 인간과 자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도사리고 있으며, 산업농이 어떻게 세계를 기형적으로 살찌우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 있다. 기형적으로 비만한 우리의 세계는 생태 파괴와 기아, 빈부격차와 전쟁, 위기에 처한 식량 민주주의, 인간과 여타 생물 종 사이에 깨진 균형감 등등의 병증들을 갖고 있다는 진단서가 첨부된 것은 물론이다.
사실 우리는 이 세계의 문제들 앞에서 언제나 진땀만 흘린다.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는 아이 앞에서 마음이 아프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을 위해서 기도하는 한편 산업농의 세상을 비판하기도 하며, 살충제로 지탱되는 먹음직스러운 먹을거리 앞에서 혀를 끌끌 차지만, 대부분의 경우 악의적으로 세계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을 테지만, 우리는 혹은 나는 무심한 파괴의 군단에 속해 있을 때가 훨씬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눈에 띄는 문장 하나가 있다. “우리 자신이 곧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변화가 되도록 노력하자.” 사실 그것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아니다. 그렇게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 세계의 모든 변화 혹은 거의 모든 혁명은 그것에서 출발한다. 우선 이것 하나를 외도록 하겠다. 볼리비아에서는 각 지역의 소농가 농민들이 생산한 200여 종의 감자 품종이 시장에 등장하지만, 우리가 집어 먹는 포테이토칩은 단일 경작 방식으로 생산된 감자로 만들어져 마트에 진열된다. 결국, 감자들은 그냥 감자가 된다.
글|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