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희망의 이유 98] 희망의 에너지 가르치는 민쌤 이야기

어릴 적 장래희망란에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쓴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학년이 갈릴 때 어떤 선생님을 만났나에 따라 장래희망은 자주 바뀌었는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은 그해 만난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민승현(58세) 선생님을 만나고 ‘선생님’이라고 적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 민승현 선생님 ⓒ함께사는길 이성수


교단에서 전하는 환경 이야기  

민승현 선생님은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이다. 민 선생님이 안내하는 교실로 들어가자, 소형 태양광 패널이 달린 비행기, 소형 풍력발전기 같은 재생가능에너지 교구들이 눈에 띈다. 교실 뒤 게시판에는 이달의 식품 방사능 분석 결과표와 함께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지도, 방사능 오염 경로와 인체 영향 그림 등 방사능 관련 정보들이 붙어있다. 교구들은 그가 직접 고른 것들이고 게시판 정보 역시 그가 정보를 찾아서 붙인 것들이다.  

환경이야기를 교단에서 풀어내는 것은 그가 오랜 환경연합 회원인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런 일이다. 그는 1989년 환경연합 전신인 공해추방연합 회원이 되어 26년째 연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에는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도올 김용옥 씨 책을 읽다가 ‘앞으로는 환경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글귀가 있었어요. 저도 환경문제에 공감을 하고 있었지만 딱히 나서서 뭘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몇몇이 독서모임이라도 할라치면 빨갱이니 의식화교육으로 몰아세우고 공해니 환경문제를 꺼내는 건 반정부 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가끔 선생님들끼리 핵발전소에 대해 아이들이 질문을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를 후원하기로 한 거죠.”  

수년간 후원만 하다가 1990년 대 말부터는 회원 참여활동에 다니기 시작했다. “회원참여 프로그램으로 숲을 간 적이 있어요. 숲길을 걷다가 낙엽 위에 누워보라고 하더라고요. 어른이 되어서는 처음이었죠. 느낌이 참 좋았어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면 참 좋겠다 싶어 학교로 돌아와 흉내를 내봤어요.” 그것이 ‘민 선생님의 환경교육’ 시작이었을 것이다. 환경연합에서 진행하는 강좌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그 내용을 다시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환경연합 활동가를 초청해 에너지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환경연합에 태양전지판과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교육용 차량이 있었거든요. 활동가분이 교육차량을 몰고 찾아가는 환경교육을 해주었죠.”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놓은 방사능 관련 정보들 ⓒ함께사는길 이성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 

그의 최대 관심사이자 근심거리는 핵과 방사능이다. 2011년 3월 11일 가까운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는 충격이었다. 핵발전소로 인한 방사능 오염 피해는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까지 넘어와 공포는 현실이 되었다. 당장 먹을거리가 문제였다. “급식시간이 정말 힘들어요. 영양사에게 수산물이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신경 좀 써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방사능 오염이 높으니 수산물은 되도록 먹지 말라고 지도했어요. 집에서도 알아야 될 것 같아 시민방사능감시센터에서 나온 식품 중 방사능 검사 결과 자료를 출력해 학부모들에게 전하기도 했어요.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학부모들도 있었지만 일부 학부모는 왜 아이들에게 겁을 주냐고 항의하기도 했어요. 이해는 되죠. 핵 자체가 공포스럽고 잔인한 거잖아요. 그나마 정부가 후쿠시마 인근 현들에서 난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방송에서 방사능 오염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좀 나아지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음식만 잘 골라 먹으면 안전하겠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진실은 그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2년 전에 환경연합에서 초청한 헬런 컬티콧 박사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은 먹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방사능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몸에 들어와 성장조절유전자를 건드리면 잠복기를 거쳐 20~30년 후에 암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린이와 임산부가 훨씬 더 위험하단 거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국은 이미 위험한 나라다, 후쿠시마 4호기에 7.0 이상 지진이 발생한다면 한반도는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하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다른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핵발전소는 한 번 터지면 절멸이고 핵은 생명과 공존할 수 없었다. 알수록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들이었다.  

분노가 일었다. “몇 년 전 『레오니드 이야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레오니드 이야기』는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서 성장한 레오니드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1986년 체르노빌 참사가 부른 비극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어요. 정보도 별로 없고 찾은 자료에는 체르노빌 사고로 31명이 사망했다는 거예요. 그 정도면 그리 별 게 아닌 것 같은데 왜 다들 체르노빌, 체르노빌 하는 걸까 싶어 관련 책들을 찾아 읽었어요.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속고 살았구나 싶었죠.  역사적으로 보면 나쁜 놈들은 다 핵과 관련된 인물들이었고 그동안 핵 세력들이 어떻게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는가 싶어 분노가 일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서 농사짓기 사진제공 민승현

 

더 열심히 탈핵 관련 강의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강좌를 같이 들었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태양의 학교란 모임도 만들었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주축이 되어 핵 없는 세상을 목표로 탈핵과 에너지 교육을 기획, 보급하고(교사) 특강, 에너지 캠프와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며(학생), 방사능에서 안전한 급식 조례 운동(학부모) 등을 펼치고 있다. 그도 모임 카페에 원자력 관련 책과 자료, 토론회 소식 등을 올리고 회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핵에너지 실체를 보고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찾은 방법은 참여와 실천이었던 것이다.  

기분 좋은 소식들도 전해준다. 최근에 초록교육연대가 서울시와 탈핵 에너지 버스를 개발, 올해부터 운영할 계획이며 전북교육청에서는 탈핵 교재를 발간해 각 학교에 배포했다고 한다. 그 소식들을 전하며 그는 활짝 웃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선생님들이나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역량이 조금씩 쌓이면서 이런 결과들이 나올 수 있었어요. 조금 더 시민사회의 관심들이 모이면 아이들 교육과정에 탈핵이 반영되고 더 나아가서 탈핵을 정식으로 선언하는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지도 않겠어요?” 그가 희망을 내비친다.  

 

함께 배워 미래를 지킬 것 

전에도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핵에 대한 본질을 알게 된 후부터는 흥미를 넘어 절실해졌다. 그는 에너지 문제가 교육의 문제일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 교육의 문제는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지 않는 거예요. 에너지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교육에 에너지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게 하는 지적 전통이 없죠. 에너지 문제는 사실 주류 에너지의 문제점을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조건적 수용만 하도록 한 교육의 문제일 수 있어요. 그래서 교육이 바로서면 에너지 문제도 바로 설 수 있다고 전 믿어요.”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운다. “교사라는 직업이 원래 그런 거예요.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하잖아요.”  

한 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은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여 사람과 자연에 이로운 에너지를 확대하고 해로운 에너지를 걸러내는 행동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민 선생님의 에너지 교육은 계속될 것이다. “이 에너지를 써야만 해!”가 아니라 “어떤 에너지가 너희가 살 세상에 이롭겠니?” 묻는 그의 에너지 교육은 사실, 에너지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해야 우리 사회를 책임지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시민윤리교육이다. 그에게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배우고 익힌 아이들이 탈핵 한국, 지속가능한 한국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더 많은 어른들이 또 다른 민 선생이 되어야 그런 희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글 | 박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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