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선길의 사랑 22 ] 양재천 산책

양재천은 탄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간다


부의 상징인 압구정동과 청담동, 그 부를 지속하거나 새롭게 얻으려는 사다리를 판매하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여기에 밤새 꺼지지 않는 한국의 경제신화인 테헤란로 초고층 빌딩들과 강남역, 소비문화의 속심인 룸싸롱 밤문화까지 우리가 아는 강남의 이야기는 강남의 앞골목 이야기들이다.  

공해추방운동연합에서 활동하다 혼인하고 아이 낳으며 활동을 쉬었다. 다시 환경운동을 시작하고 강남에 들어온 지 8년, 강남의 앞골목에 가려져 시간이 멈춘 뒷골목들을 알게 됐다. 화려한 강남의 뒤란에, 골목 깊은 곳에 구룡마을, 재건마을이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정부의 생계보조가 필요한 수급자가 8번째(9295명)로 많고, 영구임대아파트는 3번째(6680가구), 거동이 불편한 등록 장애인은 13번째(1만5708명)로 많은 곳이다. 강남의 한쪽은 나날이 화려해지는데 다른 한쪽은 1970년대에서 멈춰 있다. 

멈춘 시간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의 한 가운데에 양재천이 있다. 강남의 대치동과 도곡동, 개포동과 수서동을 나누며 양재천이 흐른다. 우리 사회의 욕망의 사다리를 가장 빨리 오르는 사람들이 몰려 살지만, 그 사다리가 얼마나 허약한지 아는 사람들도 그 천변의 양안과 그 뒤란에 함께 산다. 어떤 이들은 앞골목의 빠른 시간대에 살면서 숨이 턱까지 차면 이 천변에 나와 앉는다. 어떤 이들은 뒷골목의 삶을 구별하고 구박하지 않는 이 천변에서 이 부조리한 세계를 용서할 위안을 얻는다.

 

김영란 강남서초환경연합 사무국장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자란다. 골목에서도 대로에서도 양재천의 상하좌우 빈부의 거리 어디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그 아이들이 공간의 차별보다 자연의 포용을 가슴에 품고 자라길 바란다. 그 바람을 지키려고 활동을 다시 시작한 뒤 지금까지 아픈 이들을 좇아가 그들 손을 잡으며 살아왔다. 내가 손잡았던 사람들의 아이들이 양재천, 이 나라 소비 1번지의 한복판을 흘러가는 이 물길처럼 구겨지지 않고 끊이지도 않으며 자신의 시간을 밀어가기를 바란다. 

이 천변에서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걸으며 조망하고, 달리며 관찰할 수 있다. 두 발 대신 두 바퀴를 굴리면서도 그걸 다 할 수 있다. 봄, 벚꽃비가 내리고 메타세쿼이아가 장관이다. 여름, 진초록 향연이 벌어지고 물놀이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솔음으로 튄다. 가을, 놀 물드는 갈대밭이 물길을 따라 흐른다. 겨울, 혼자 걸으며 흰 눈 속에서 숨겨진 흐르는 시간을 본다.  

누구에게나 치유의 공간이 있다. ‘여기도 대한민국인데 왜 이렇게 환경운동하기 힘드냐?’고 가슴이 비명 지를 때마다 찾아갔다. 찾아가 아무 것도 않고 서 있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두 바퀴 굴려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물길 따라 내려가기도 했다. 그 길에서 만났던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한다. 물길을 건너간다. 두 개의 시간 사이를 건너간다. 나는 오래도록 이 물길을 찾으리라. 오래도록 이 마을 없는 마을들에 마을이 생기도록 뛰어다니리라.


글 | 김영란 강남서초환경연합 사무국장

사진 | 이성수 기자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