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희망의 이유 90] 열여덟 살 스파이더 맨, 습지에 떴다!

서울시 강서구와 경기도 부천시 사이엔 김포공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갈대와 억새, 부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금개구리며 황조롱이 등이 살고 있는 습지도 있다. 최근 이곳에서 아직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신종거미가 발견됐다. 거미를 발견한 이는 다름 아닌 열여덟 살 고등학생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스파이더 맨이라 불릴 정도로 거미를 좋아하는 성민규 군이다. 

 

정명고등학교 2학년 성민규 군 ⓒ함께사는길 이성수

 

거미와 소년 

6월 어느 토요일, 고등학생 대여섯 명이 김포공항습지를 찾았다. 도시에 살면서 흙이라도 제대로 밟아봤을까 싶은 아이들이 수풀을 헤치며 뭔가를 찾는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민규 군이 김포공항습지에서 신종거미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학교 친구들이 함께 습지 조사를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애벌레며 딱정벌레 한 마리라도 발견하면 민규 군에게 쫓아가 “얘는 이름이 뭐냐.”, “무엇을 먹고 살아?” 등 질문을 한다. 이곳에서만큼 민규 군은 습지 안내자이자 해설자다. 한 친구가 애벌레를 들고 왔다. 민규 군도 모르는 눈치다. “그건 나도 몰라.”하며 머쓱하게 웃더니 조사를 계속한다. 그래도 스파이더 맨이란 별명답게 거미에 대해선 전문가 뺨 친다.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어디에서 사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떻게 사냥하는지 막힘이 없다.  

민규 군이 거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우연한 기회에 타란튤라란 거미를 기르게 되었어요. 거미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타란튤라의 멋진 외모에 끌렸죠. 하지만 막상 거미를 키우려다 보니 거미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다가 한국에도 다양한 거미들이 서식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거미 동호회에도 가입을 했어요.” 인터넷만으론 정보가 채워지지 않자 남양주에 있는 거미박물관이란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동국대 생물학 교수이자 생물학자인 김주필 교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 교수는 우리나라 거미에 대해 함께 공부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민규 군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 교수 지도 아래 동물분류학, 생물학, 거미학, 거미 채집 방법과 조사 방법 등을 배우고 거미를 조사하러 다녔다. 전라남도 여서도, 충남 대난지도, 강원도 계방산, 태안 신두리 해안 등 전국을 다녔다. 부모님은 아들의 진로와 안전 문제 때문에 반대를 했지만 민규 군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조사를 마치고 또 열정을 쏟는 모습에 부모님도 안심을 하고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셨다.  

사실 거미 조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따로 있었다. “집안에서 서식하는 거미를 옥내성 거미라고 하는데 목조주택에 많이 서식해요. 하지만 요즘 아파트, 빌라가 대부분이다 보니 옥내성 거미를 보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옥내성 거미를 보려고 목조주택으로 지어진 폐가에 들어가기도 해요. 벽지 뒤에 거미들이 많이 숨거든요. 그래서 벽지를 뜯었는데 사람 형태가 나오는 거예요. 정말 기겁했어요. 또 한 번은 옷장을 열었는데 할머니 사진이 나온 적도 있어요. 그럴 땐 무서워요.” 그럴 때면 영락없는 아이다.   

 

“알면 사랑한다” 

거미는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쳤다. “일단 거미의 생태가 특이해요. 모든 거미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미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 위에서 먹이 활동을 해요. 무엇보다 가장 끌리는 것은 다양성 때문이에요. 속마다 과마다 참 다양해요. 그래서 점점 빠지는 것 같아요.” 

거미에 빠진 민규 군을 친구들은 스파이더 맨이라고 부른다. “거미를 무서워하는 친구들은 있는데 제 앞에서 거미를 죽이는 친구는 없어요. 저도 예전엔 거미를 무서워했어요. 제가 최재천 교수님을 존경하는데 그분이 하신 말 중에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어요. 제 좌우명이기도 한데요, 거미를 알아 가다보니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리낌 없고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가끔 친구들이 집에 나타나는 거미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한다. “방바닥에 실 같이 긴 다리로 기어가는 거미가 있는데 집유령거미에요. 또 눈이 여섯 개인 거문육눈이유령거미, 벽이 갈라진 곳에 거미줄을 치고 사는 깔대기 거미 등이 있어요. 또 오래된 주택에는 농발거미란 거미가 사는데 바퀴벌레 잡아먹기론 으뜸이에요. 일본에서는 친환경 바퀴벌레 제거제로 판매까지 하고 있대요. 한국 거미 중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칠 만한 종은 없어요. 독이 있어도 모기 물린 정도? 그리고 집 거미가 잡아먹는 것들이 주로 바퀴벌레, 곱등이, 집게벌레 등이에요. 집에서 바퀴벌레나 곱등이를 보는 것보다 거미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민규 군은 집 거미에 대한 정보에 이어 집 거미 대신 변명을 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김포공항습지에서 거미 조사에 나선 민규 군. 이날 운좋게 신종거미를 또 만날 수 있었다 ⓒ박은수

 

김포공항습지에서 찾은 신종거미 

김포공항습지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5월이다. “한국거미연구소에서 물거미를 본 적 있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혹시 내가 사는 지역에도 물거미가 있을까 싶어 습지를 찾아봤어요. 인터넷에 ‘부천 습지’라고 쳤더니 김포공항 습지 기사들이 쭉 뜨더라고요.”  

집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 김포공항 습지를 찾았다. “보는 순간 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관도 멋지고 식생과 거미류를 봤더니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거미상은 아니더라고요.”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습지를 찾아 거미상을 조사했다. “채집 방법 중에 스위핑 넷이라고 있어요. 채집용 채를 흔들면서 곤충을 채집하는 방법인데 신종거미도 그렇게 발견했어요. 처음엔 그저 가재거미과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하나하나 검토를 하니 뭔가 다르더라고요. 거미는 각 종마다 생식기 모양이 달라요. 근데 같은 모양이 없는 거예요. 김주필 교수님께 여쭤봤더니 신종 같다고, 좀 더 검토를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일 년여 넘게 검토해본 결과 거미는 신종인 걸로 확인됐다.    

김포공항습지에서 신종 거미를 발견한 민규 군은 서울환경연합에 연락을 했다. 습지가 골프장으로 사라질까 걱정이 컸던 것이다. “신종거미도 지키고 싶었고 거기에 사는 다른 거미들, 그리고 다른 생물들을 지키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조사한 거미만도 약 100종이에요. 조사 범위도 좁고 시기도 짧은데도 그 정도에요. 아마도 김포공항습지에 200종(거미)까지 서식할 것으로 보여요. 이 정도는 도서지방이나 국립공원처럼 생태계가 잘 보전된 지역에서 나올 수 있는 수에요. 단순히 거미만이 아니에요. 어느 지역의 생물상을 전부 조사하기 어려울 때 상위 포식자들을 조사를 하면 밑에 다른 종들이 얼마나 많은지 파악할 수 있어요. 거미는 소형 무척추 동물 중 상위 포식자에요. 거미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생물종들도 다양하다고 파악할 수 있다고 배웠거든요. 이런 곳이 사라지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어른들이 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골프장을 짓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힘들다. “골프장이 지어지면 생태계를 복구할 수 없을 거예요. 어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중요하겠지만 다른 것들도 생각을 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골프장이라는 게 모든 시민들이 다 이용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시민들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인데 특정 계급에게만 토지 이용권을 부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잖아요. 대신 이곳이 습지공원화 되어 시민들에게 개방이 된다면 모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간이 되지 않을까요?” 소년은 나름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사실 처음엔 내가 이런 문제에 나서도 될까, 너무 어린 나이에 정치적인 문제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어요. 아직도 조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김포공항습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습지를 지켜주세요 

거미를 좋아하지만 아직 꿈 많은 소년이다. 꿈도 여러 번 바뀌었다. 천문학도가 되고 싶어 밤하늘 별에 빠진 적도 있고 “별을 보다 감수성이 생겨” 시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진로 걱정에 한동안 방황을 좀 했어요. 아직 이르긴 하지만 천직을 찾은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생물을 좋아하기도 했고 처음 거미 조사를 하러 여서도를 갔는데 뭔가 응어리진 것이 풀렸어요. 또 직업이 하나일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생태학자가 꿈이지만 서울환경연합 이세걸 처장님처럼 환경운동도 함께 하고 싶어요. 되고 싶은 어른요? 지식인이 되고 싶어요. 시민들을 일깨우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지식인이 되고 싶어요.”  

“잡았다.” 채집망에 거미 한 마리가 걸려들었다. 거미를 꺼내자 민규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난해 발견했던 신종거미다.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아이들의 눈이 반짝 빛난다. 거미가 민규 군의 손등을 타고 기어오르자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그 틈에 개구리 한 마리가 그 옆을 뛰어가고 갈대숲 사이에서 개개비 소리가 경쾌하게 흐른다.  

열여덟 살 스파이더 맨은 거미를 대신해 세상에 외친다. “김포공항습지를 지켜주세요. 거미와 다른 생물들의 터전을 지켜주세요.”  


글 | 박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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