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아산환경연합 회원 윤순옥 씨. 봄 맞으러 오른 숲길에서 지난 가을 내려앉은 낙엽이 그녀의 발길을 붙잡는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숲을 좀 안다’는 이들은 앞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본다. 숱하게 다녀 이제는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걸음은 초행길 등산객보다도 느리다. 참나무, 굴참나무, 단풍나무, 산수유, 생강나무, 꽃다지, 광대나물, 제비꽃, 고마리 등등 친구를 만나듯 이름 한 번씩 불러주고 심지어 눈 위 동물발자국에도 아는 체하고 안부를 묻고서야 걸음을 옮긴다. 유순옥(54세) 씨의 숲 나들이도 그러하다. 그녀는 천안아산환경연합 회원 소모임 ‘숲나들이’에서 활동하며 광덕산 숲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숲 생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숲 나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집으로 가려면 산 하나를 넘어야 했어요. 그때 같은 반 친구가 함께 길을 가는데 길가에 핀 꽃이며 풀, 나무 이름을 척척 맞추는 거예요. 정말 그 친구가 똑똑하고 특별해 보였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물었더니 백과사전에서 봤대요. 우리집은 넉넉하지 않아 백과사전은 꿈도 못 꿨거든요. 어찌나 부럽던지.” 세월이 흘러 세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도 그 아쉬움은 잊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10년 전 천안아산환경연합에서 숲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그때 기억이 떠올랐고 바로 신청을 했다는 그녀다. 하지만 마음처럼 풀꽃, 나무 이름을 외우는 건 쉽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꽃이며 나무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이 꽃이 저 꽃 같고 저 나무가 이 나무 같았다. 뭐 그렇다고 특별한 방법도 없었다. 자꾸 들여다보고 얼굴과 이름을 익히는 수밖에. 그렇게 숲을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 풀꽃의 이름이 생각나더란다.
그리고 풀꽃 이름을 술술 대는 친구가 부러워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소녀는 마흔을 훌쩍 넘어 그 시절 자신을 닮은 아이들에게 풀꽃과 나무 이름을 알려주고 숲을 안내하는 숲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 교육 의뢰가 들어왔을 때 몇 날을 거쳐 강의안을 만들고 현장을 체크했어요.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걱정이 컸는데 막상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하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나름 숲 교육의 목적도 생겼다. “지식전달을 하는 과학수업이 아닌 아이들이 자연과 친해지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요즘 아이들 너무 실내에만 있잖아요. 밖으로 나와 자연도 접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그러면 좋잖아요.”
특히 그녀가 관심을 갖는 건 중학생, 고등학생들이다. “사실 생태교육이 가장 필요한 대상은 중학생, 고등학생들이에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모두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교실에서 경쟁을 하잖아요. 그 스트레스가 오죽하겠어요?” 그녀 또한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 마음이 더 쓰인다. “전에 분당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한 적이 있어요. 교육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이들이 숲에서 위로 좀 받아갔으면 했죠.” 아이들과 숲 산책을 하고 숲에서 본 색깔들로 천연염색도 하고 천연염색한 천으로 손바느질을 해 주머니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이 시기 아이들은 뭘 하는 걸 귀찮아하고 의존성이 높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임하는 거예요. 아이들과 바느질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어요. 사실 제가 더 도움이 됐어요. 우리 아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저 시기에 어떤 게 필요한지 그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거든요.”
잔소리 필요없는 그녀의 친환경 생활
환경에도 관심 많은 그녀다. 집에서는 ‘에코 맘’이다. “정말 필요한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고 그게 아니라면 생활패턴을 바꾸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우리 가족이 화장지를 엄청 사용했어요.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베어지고 환경이 오염되는지 이야기해봤자 그때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했죠. 가만히 봤더니 방마다 화장지며 쓰레기통이 있더라고요. 꼭 필요한 걸까.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주방과 화장실을 빼고 방마다 두었던 화장지며 쓰레기통을 없앴어요. 그랬더니 불평소리도 없이 화장지 사용량이 줄더라고요.” 잔소리 백번보다 효과도 크고 가족들의 반발도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물 마실 때 컵에 물을 가득 따르잖아요. 하지만 대부분 그 물을 다 먹지 못하고 반 이상은 버려요. 심각한 물 낭비죠. 우리 집은 컵 크기를 줄였어요. 컵이 작아지니 물이 넘칠까 가득 따르지 못하고 먹을 만큼만 먹게 되니 버려지는 물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집과 가족들을 서서히 바꿨고 지금도 바꿔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도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있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서울 목동에서 신혼살림을 할 때에요. 남편이 수질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공해추방연합이 창립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행사장을 찾아갔죠. 그날이 추워서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모피코트를 입고 갔어요. 행사장 입구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절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했어요. 그때는 왜 날 그렇게 쳐다볼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았어요.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때 만났던 남자는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였다. 환경단체 창립식에 모피 옷을 입고 나타난 윤 씨가 최 대표도 당황스러웠을 터다. 그날의 기억 때문에 이제는 옷 입을 때나 살 때도 스타일뿐만 아니라 환경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풀꽃 이름 외우던 친구가 부러워 마흔에 시작한 숲 공부는 그녀의 인생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미완의 프로젝트
숲이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슬럼프도 찾아왔다. 그녀뿐만 아니라 숲 나들이 회원들도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었다. “천안아산환경연합에서 교수님을 초대해 작은 강의를 마련해주었어요. 그동안 쌓인 고민도 털어놓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도 구했죠. 그때 교수님이 각자 개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뭘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전 친정엄마와 사계절 나물에 대한 도감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세웠어요. 숲에서 배운 식물들이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어요. 엄마가 계절마다 산과 들로 다니며 캐다가 밥상에 올려놓은 것들이었죠. 엄마가 전문가였어요. 근데 너무 무시하고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됐죠.” 엄마와 함께 산이며 들을 다니며 나물을 찾고 엄마가 부르던 식으로 이름을 붙이고 엄마의 손으로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겠다는 계획을 꼼꼼히 세웠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가난했던 시절, 힘들게 살아온 엄마의 삶이 떠오르고 왜 그렇게 사셨는지도 이해되더라고요.”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가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위로하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에게 선물을 전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계획을 세우고 막 시작하려던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한동안 그녀가 겪었을 슬픔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결국 ‘엄마의 사계절 나물도감’은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았다.
슬픔을 추스르고 그녀가 눈을 돌린 것은 ‘밥상’이었다. “엄마와 하려던 것은 산과 들에서 밥상까지였어요. 거꾸로 밥상부터 시작해보려고요. 건강한 먹을거리가 뭔지,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찾아가 보려고요.” 문성희 씨의 건강한 밥상 교실에서 요리 강좌를 듣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나는 것들로 쉽고 간단하게 만드는 음식들을 배워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만 건강한 밥상은 소박함에 있더라고요. 아이들과 숲 교육할 때 함께 만들어보고 나물을 찾아보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엄마와 못 이룬 프로젝트를 숲에서 아이들과 이어나갈 것이다.
숲 나들이 하실래요
“예전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몇 평의 집이 있고 자산도 얼마나 있어야 하고…… 그런 쪽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있는 것도 덜어내고 싶어요.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세상은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정신 줄 놓지 않고 살려면 사람이 중요하더라고요. 이웃들과 공동체를 꾸려 서로 의지하고 나누며 소박하게 살고 싶어요.” 숲에서, 또 숲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인생 계획을 수정했다.
아산의 남산을 오른다. 숲은 봄이 오는 소리를 먼저 알아챘다. 광대나물이며 꽃마리들이 비쭉 초록 싹을 내밀었고 나뭇가지에 달린 꽃눈들은 터질 듯하다. “예전에 어르신들은 산에 들어갈 때 기침을 하거나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셨대요. 여느 집에 방문할 때 노크를 하듯이 ‘나 산에 들어간다’는 신호를 냈대요. 그만큼 산에 사는 생명들을 배려해주신 거죠. 봄은 작은 생명들이 많이 나오는 때에요. 정해진 길로 다니고 조심히 다니면 좋겠죠? 무엇보다 나무, 풀꽃 하나하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저절로 우러나올 거예요.” 이 봄, 마음으로 숲을 보라 권하는 유 씨다. 그래도 한 가지 당부는 한다. “봄꽃들이 예쁘다고 집으로 가져가지 마세요. 금방 죽어버리고 숲에서 본 것만큼 아름답지 않아요. 모든 생명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에요.”
천안아산환경연합 회원 윤순옥 씨. 봄 맞으러 오른 숲길에서 지난 가을 내려앉은 낙엽이 그녀의 발길을 붙잡는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숲을 좀 안다’는 이들은 앞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본다. 숱하게 다녀 이제는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걸음은 초행길 등산객보다도 느리다. 참나무, 굴참나무, 단풍나무, 산수유, 생강나무, 꽃다지, 광대나물, 제비꽃, 고마리 등등 친구를 만나듯 이름 한 번씩 불러주고 심지어 눈 위 동물발자국에도 아는 체하고 안부를 묻고서야 걸음을 옮긴다. 유순옥(54세) 씨의 숲 나들이도 그러하다. 그녀는 천안아산환경연합 회원 소모임 ‘숲나들이’에서 활동하며 광덕산 숲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숲 생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숲 나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집으로 가려면 산 하나를 넘어야 했어요. 그때 같은 반 친구가 함께 길을 가는데 길가에 핀 꽃이며 풀, 나무 이름을 척척 맞추는 거예요. 정말 그 친구가 똑똑하고 특별해 보였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물었더니 백과사전에서 봤대요. 우리집은 넉넉하지 않아 백과사전은 꿈도 못 꿨거든요. 어찌나 부럽던지.” 세월이 흘러 세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도 그 아쉬움은 잊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10년 전 천안아산환경연합에서 숲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그때 기억이 떠올랐고 바로 신청을 했다는 그녀다. 하지만 마음처럼 풀꽃, 나무 이름을 외우는 건 쉽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꽃이며 나무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이 꽃이 저 꽃 같고 저 나무가 이 나무 같았다. 뭐 그렇다고 특별한 방법도 없었다. 자꾸 들여다보고 얼굴과 이름을 익히는 수밖에. 그렇게 숲을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 풀꽃의 이름이 생각나더란다.
그리고 풀꽃 이름을 술술 대는 친구가 부러워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소녀는 마흔을 훌쩍 넘어 그 시절 자신을 닮은 아이들에게 풀꽃과 나무 이름을 알려주고 숲을 안내하는 숲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 교육 의뢰가 들어왔을 때 몇 날을 거쳐 강의안을 만들고 현장을 체크했어요.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걱정이 컸는데 막상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하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나름 숲 교육의 목적도 생겼다. “지식전달을 하는 과학수업이 아닌 아이들이 자연과 친해지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요즘 아이들 너무 실내에만 있잖아요. 밖으로 나와 자연도 접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그러면 좋잖아요.”
특히 그녀가 관심을 갖는 건 중학생, 고등학생들이다. “사실 생태교육이 가장 필요한 대상은 중학생, 고등학생들이에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모두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교실에서 경쟁을 하잖아요. 그 스트레스가 오죽하겠어요?” 그녀 또한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 마음이 더 쓰인다. “전에 분당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한 적이 있어요. 교육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이들이 숲에서 위로 좀 받아갔으면 했죠.” 아이들과 숲 산책을 하고 숲에서 본 색깔들로 천연염색도 하고 천연염색한 천으로 손바느질을 해 주머니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이 시기 아이들은 뭘 하는 걸 귀찮아하고 의존성이 높아요.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임하는 거예요. 아이들과 바느질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어요. 사실 제가 더 도움이 됐어요. 우리 아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저 시기에 어떤 게 필요한지 그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거든요.”
잔소리 필요없는 그녀의 친환경 생활
환경에도 관심 많은 그녀다. 집에서는 ‘에코 맘’이다. “정말 필요한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고 그게 아니라면 생활패턴을 바꾸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우리 가족이 화장지를 엄청 사용했어요.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베어지고 환경이 오염되는지 이야기해봤자 그때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했죠. 가만히 봤더니 방마다 화장지며 쓰레기통이 있더라고요. 꼭 필요한 걸까.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주방과 화장실을 빼고 방마다 두었던 화장지며 쓰레기통을 없앴어요. 그랬더니 불평소리도 없이 화장지 사용량이 줄더라고요.” 잔소리 백번보다 효과도 크고 가족들의 반발도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물 마실 때 컵에 물을 가득 따르잖아요. 하지만 대부분 그 물을 다 먹지 못하고 반 이상은 버려요. 심각한 물 낭비죠. 우리 집은 컵 크기를 줄였어요. 컵이 작아지니 물이 넘칠까 가득 따르지 못하고 먹을 만큼만 먹게 되니 버려지는 물도 없더라고요.” 그렇게 집과 가족들을 서서히 바꿨고 지금도 바꿔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도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있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서울 목동에서 신혼살림을 할 때에요. 남편이 수질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공해추방연합이 창립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행사장을 찾아갔죠. 그날이 추워서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모피코트를 입고 갔어요. 행사장 입구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절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했어요. 그때는 왜 날 그렇게 쳐다볼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았어요.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때 만났던 남자는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였다. 환경단체 창립식에 모피 옷을 입고 나타난 윤 씨가 최 대표도 당황스러웠을 터다. 그날의 기억 때문에 이제는 옷 입을 때나 살 때도 스타일뿐만 아니라 환경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풀꽃 이름 외우던 친구가 부러워 마흔에 시작한 숲 공부는 그녀의 인생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미완의 프로젝트
숲이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슬럼프도 찾아왔다. 그녀뿐만 아니라 숲 나들이 회원들도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었다. “천안아산환경연합에서 교수님을 초대해 작은 강의를 마련해주었어요. 그동안 쌓인 고민도 털어놓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도 구했죠. 그때 교수님이 각자 개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뭘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전 친정엄마와 사계절 나물에 대한 도감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세웠어요. 숲에서 배운 식물들이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어요. 엄마가 계절마다 산과 들로 다니며 캐다가 밥상에 올려놓은 것들이었죠. 엄마가 전문가였어요. 근데 너무 무시하고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됐죠.” 엄마와 함께 산이며 들을 다니며 나물을 찾고 엄마가 부르던 식으로 이름을 붙이고 엄마의 손으로 밥상에 오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겠다는 계획을 꼼꼼히 세웠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가난했던 시절, 힘들게 살아온 엄마의 삶이 떠오르고 왜 그렇게 사셨는지도 이해되더라고요.”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가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위로하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에게 선물을 전하지 못했다. 프로젝트 계획을 세우고 막 시작하려던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한동안 그녀가 겪었을 슬픔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결국 ‘엄마의 사계절 나물도감’은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았다.
슬픔을 추스르고 그녀가 눈을 돌린 것은 ‘밥상’이었다. “엄마와 하려던 것은 산과 들에서 밥상까지였어요. 거꾸로 밥상부터 시작해보려고요. 건강한 먹을거리가 뭔지,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찾아가 보려고요.” 문성희 씨의 건강한 밥상 교실에서 요리 강좌를 듣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나는 것들로 쉽고 간단하게 만드는 음식들을 배워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만 건강한 밥상은 소박함에 있더라고요. 아이들과 숲 교육할 때 함께 만들어보고 나물을 찾아보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엄마와 못 이룬 프로젝트를 숲에서 아이들과 이어나갈 것이다.
숲 나들이 하실래요
“예전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몇 평의 집이 있고 자산도 얼마나 있어야 하고…… 그런 쪽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있는 것도 덜어내고 싶어요.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세상은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정신 줄 놓지 않고 살려면 사람이 중요하더라고요. 이웃들과 공동체를 꾸려 서로 의지하고 나누며 소박하게 살고 싶어요.” 숲에서, 또 숲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인생 계획을 수정했다.
아산의 남산을 오른다. 숲은 봄이 오는 소리를 먼저 알아챘다. 광대나물이며 꽃마리들이 비쭉 초록 싹을 내밀었고 나뭇가지에 달린 꽃눈들은 터질 듯하다. “예전에 어르신들은 산에 들어갈 때 기침을 하거나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셨대요. 여느 집에 방문할 때 노크를 하듯이 ‘나 산에 들어간다’는 신호를 냈대요. 그만큼 산에 사는 생명들을 배려해주신 거죠. 봄은 작은 생명들이 많이 나오는 때에요. 정해진 길로 다니고 조심히 다니면 좋겠죠? 무엇보다 나무, 풀꽃 하나하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저절로 우러나올 거예요.” 이 봄, 마음으로 숲을 보라 권하는 유 씨다. 그래도 한 가지 당부는 한다. “봄꽃들이 예쁘다고 집으로 가져가지 마세요. 금방 죽어버리고 숲에서 본 것만큼 아름답지 않아요. 모든 생명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에요.”
글 | 박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