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일은 알 수 없잖아요.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죠.”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 강이 흐를 그날을 기다린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운 적도, 사진을 업으로 삼은 적도 없는 그를 사람들은 초록사진가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느 사진가도 그만큼 많은 강사진을 찍지 못했으리라. 7년 전 강을 지키기 위해 잡았던 카메라를 이제는 강을 되돌리기 위해 놓을 수 없다는 그, 박용훈(55세) 씨와 강을 만나러 나섰다.
뚜벅이 초록사진가
오전 9시, 서울 남산 아래서 그를 만났다. 주말에 영양댐 예정지에 갔다가 어젯밤에 도착했다는 그는 피곤할 법도 한데 다시 큰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그래도 오늘은 차가 있어 다행이란다. “전 차가 없어요. 현장을 다닐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익숙해져서 힘든 건 없는데 산골마을은 시간을 잘 맞춰야죠.” 빛바랜 카메라 한 대와 망원렌즈 하나, 단렌즈 하나, 그리고 삼각대가 전부다. 뚜벅이라 더 많은 장비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정도로도 충분하단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초록사진가’라 부른다. 4대강이나 내성천에 관심 있는 이라면 그가 찍은 사진을 한 번이라도 봤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카메라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초록사진가란 별칭은 그의 사진으로 전시회를 준비하던 한 단체에서 그를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줬다고 한다. 그 말이 예뻐 그도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쑥스럽고 부담스럽다.
4대강사업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평일에는 출퇴근으로 바빴고 주말이면 좋아하는 산을 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사진은 좋아하는 산을 담기 위한 일종의 취미활동으로 시작했다. 그의 평범한 삶을 흔들어놓은 건 4대강사업이다. “2007년 한반도대운하 이야기가 나왔는데 덜컥 걱정이 되었어요. 강들이 사라질 수 있겠다 싶었지요.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강을 찾았지요.” 홀로 강을 찾아다니던 그는 2008년 2월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주말마다 순례단과 함께 강을 따라 걸었고 2009년 6월 4대강사업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자 보 건설 예정지를 다니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게 되면서 그는 강을 기록하는데 몰두했고 지금까지 온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이토록 강에 매달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연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살잖아요. 저는 그게 강이었던 거죠. 아마 제가 한강에서 모래사장을 보고 자란 마지막 세대일 거예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한강변에 모래사장이 넓었어요. 모래성 쌓고 물놀이도 하고 그랬어요. 겨울에는 한강이 꽁꽁 얼었어요. 아버지랑 스케이트를 타러 나갔죠.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면 쩡쩡 소리가 나는데 얼음 위가 파르스름해 무섭기도 했어요.” 옛 생각에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또 다른 강 추억 하나도 끄집어낸다. “중학교 1학년 때던가. 원래 학교에서 캠프를 가는 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 선배들 꼬임으로 캠프 대신 선배 고향집으로 놀러갔어요. 남한강이 흐르는 어느 시골마을이었는데 강 한쪽으로 깎아질 듯한 절벽이 서있고 다른 한쪽은 모래사장이 넓었어요. 이런 강도 있구나 싶었죠. 그곳에서 수영하고 물고기 잡아먹고 몇 날을 그렇게 보냈어요.” 그에게 강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공간이 아닌 가족과의 추억, 어린 시절의 추억이 머무는 공간이다. 그런 강이 사라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놓을 수 없는 강들
한 시간을 달려 여주에 도착했다. “2008년에 남한강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때마다 여주환경연합에 사진을 공유했는데 어느 날 박희진 국장이 제 사진에서 호사비오리를 발견한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전 새에 대해 잘 몰라요. 호사비오리가 우연히 찍힌 거죠.” 호사비오리는 현재 지구상에 1000여 마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매우 희귀한 종이다.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박 국장 역시 그 지역에 호사비오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발견한 적은 그때 처음이었다.
하지만 모두 사진 속에 남아있는 옛 이야기다. 4대강사업 전만 해도 철새들이 많이 찾았던 남한강은 준설과 함께 새들도 찾기 힘들어졌다. 강 둔치엔 4대강사업으로 파낸 준설토가 갈 곳을 잃고 거대한 산으로 방치되어 있고 샛강으로 변해버린 비내늪 습지는 철새도래지라는 푯말이 무색할 정도로 황량하다. 남한강 초입 오누이가 놀던 모래사장은 거대한 보에 막혀 가라앉았다. 돌아보면 가슴 먹먹한 곳이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습조차 묵묵히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엔 온전하게 살아있는 강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강을 카메라에 담았지요. 그런 와중에 4대강사업이 진행되었고 강이 어떻게 훼손되고 파괴되는지 그 과정을 찍게 된 거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요. 일단은 기록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기록하려고요. 지금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해도 나중에라도 우리가 어떻게 강을 파괴했는지,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또 강을 되돌릴 때 이 기록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남한강뿐만 아니라 금강, 낙동강, 영산강 그리고 그 강들의 지천들, 숱한 강들을 다녔다. “4대강사업이나 댐 문제나 내성천 문제는 사실 본질적으로 같아요. 돈이죠, 돈. 강에서 불로소득을 얻기 위해 벌이는 사업들이죠.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고 우리가 이런 일들에 익숙해진다는 것이죠. 그게 제일 무섭죠.”
내성천은 그에게 특별한 곳이다. “4대강사업 예정지를 따라 다닐 때에요. 안동 오천교를 지났는데 만만치 않은 곳이 있어 물어보니 내성천이래요. 보자마자 어렸을 때 놀던 강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때부터 그는 내성천을 찾았다. “내성천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강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강이에요.” 그에게 내성천은 4대강사업을 풀 열쇠이기도 하다. “4대강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라고 했을 때 두 가지 에너지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4대강사업으로 인한 부작용들, 이를테면 4대강에 녹조가 뒤범벅되어 물고기들이 죽고 다리가 무너지고 보에 금이 가는 문제들을 알려 이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있겠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강의 원래 모습들을 알리고 직접 그 안에 들어가 몸으로 느끼는 과정을 통해 이것이야말로 진짜 강인데,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모아 바꿔낼 수 있겠죠. 전자를 부정적인 에너지라고 한다면 후자는 긍정적인 에너지에요. 둘 다 필요하지만 전 긍정적인 에너지가 더 큰 힘을 낸다고 봐요. 더 나아가 내성천에 대해 사회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합의점을 마련하는 과정이 생긴다면 토건 위주의 사회에서 생태사회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어요.” 그래서 그는 올해, 영주댐이 물을 담고 가동하기 전에 이 댐이 정말 필요한지, 내성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카메라 들고 강을 만나러 가는 초록사진가 박용훈 씨 ⓒ함께사는길 이성수
“모래가 돌아왔다. 고니가 돌아왔다.”
강을 따라 여주, 원주를 지나 충주까지 왔다. 변해버린 남한강에도 희망은 있었다. “최근 모래가 다시 퇴적된 구간에 새들이 머물고 있는 모습이 많아졌어요. 재퇴적 현상을 4대강사업의 실패로 볼 수도 있지만 강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희망적이죠.” 그는 환경연합 회원들과 독자들에게도 당부했다. “우리 강은 4대강사업으로 끝난 게 아니에요. 관심 갖고 계속 주시하지 않으면 4대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요. 당장 성과가 나든 안 나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강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그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뛸 수 있습니다.”
남한강에서 서울로 방향을 틀었다. 미련이 남아서일까. 차는 흥원창으로 가는 길로 빠졌다. 둑방 위에서 그가 눈을 떼지 못한다. 이 겨울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니들이 자산 아래 남한강에 앉아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모래 위로 몇 마리는 털을 고르고, 강 위에서는 자맥질하는 고니들이 엉덩이를 들고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먹이를 찾고 있다. 얼굴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손은 바쁘다. “모래가 돌아오니 고니도 돌아왔어요!”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언젠가 그가 남한강에서 찍었다던 아이의 모습과 닮았다. 그는 지금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찍고 있다. 그렇게 그는 다시 흐를 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 | 박은수 기자
“세상일은 알 수 없잖아요.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죠.”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다시 강이 흐를 그날을 기다린다 ⓒ함께사는길 이성수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운 적도, 사진을 업으로 삼은 적도 없는 그를 사람들은 초록사진가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느 사진가도 그만큼 많은 강사진을 찍지 못했으리라. 7년 전 강을 지키기 위해 잡았던 카메라를 이제는 강을 되돌리기 위해 놓을 수 없다는 그, 박용훈(55세) 씨와 강을 만나러 나섰다.
뚜벅이 초록사진가
오전 9시, 서울 남산 아래서 그를 만났다. 주말에 영양댐 예정지에 갔다가 어젯밤에 도착했다는 그는 피곤할 법도 한데 다시 큰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그래도 오늘은 차가 있어 다행이란다. “전 차가 없어요. 현장을 다닐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익숙해져서 힘든 건 없는데 산골마을은 시간을 잘 맞춰야죠.” 빛바랜 카메라 한 대와 망원렌즈 하나, 단렌즈 하나, 그리고 삼각대가 전부다. 뚜벅이라 더 많은 장비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정도로도 충분하단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초록사진가’라 부른다. 4대강이나 내성천에 관심 있는 이라면 그가 찍은 사진을 한 번이라도 봤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카메라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초록사진가란 별칭은 그의 사진으로 전시회를 준비하던 한 단체에서 그를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줬다고 한다. 그 말이 예뻐 그도 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쑥스럽고 부담스럽다.
4대강사업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평일에는 출퇴근으로 바빴고 주말이면 좋아하는 산을 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사진은 좋아하는 산을 담기 위한 일종의 취미활동으로 시작했다. 그의 평범한 삶을 흔들어놓은 건 4대강사업이다. “2007년 한반도대운하 이야기가 나왔는데 덜컥 걱정이 되었어요. 강들이 사라질 수 있겠다 싶었지요.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강을 찾았지요.” 홀로 강을 찾아다니던 그는 2008년 2월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주말마다 순례단과 함께 강을 따라 걸었고 2009년 6월 4대강사업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자 보 건설 예정지를 다니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게 되면서 그는 강을 기록하는데 몰두했고 지금까지 온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이토록 강에 매달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연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살잖아요. 저는 그게 강이었던 거죠. 아마 제가 한강에서 모래사장을 보고 자란 마지막 세대일 거예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한강변에 모래사장이 넓었어요. 모래성 쌓고 물놀이도 하고 그랬어요. 겨울에는 한강이 꽁꽁 얼었어요. 아버지랑 스케이트를 타러 나갔죠.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면 쩡쩡 소리가 나는데 얼음 위가 파르스름해 무섭기도 했어요.” 옛 생각에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또 다른 강 추억 하나도 끄집어낸다. “중학교 1학년 때던가. 원래 학교에서 캠프를 가는 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 선배들 꼬임으로 캠프 대신 선배 고향집으로 놀러갔어요. 남한강이 흐르는 어느 시골마을이었는데 강 한쪽으로 깎아질 듯한 절벽이 서있고 다른 한쪽은 모래사장이 넓었어요. 이런 강도 있구나 싶었죠. 그곳에서 수영하고 물고기 잡아먹고 몇 날을 그렇게 보냈어요.” 그에게 강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공간이 아닌 가족과의 추억, 어린 시절의 추억이 머무는 공간이다. 그런 강이 사라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놓을 수 없는 강들
한 시간을 달려 여주에 도착했다. “2008년에 남한강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때마다 여주환경연합에 사진을 공유했는데 어느 날 박희진 국장이 제 사진에서 호사비오리를 발견한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전 새에 대해 잘 몰라요. 호사비오리가 우연히 찍힌 거죠.” 호사비오리는 현재 지구상에 1000여 마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매우 희귀한 종이다.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박 국장 역시 그 지역에 호사비오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발견한 적은 그때 처음이었다.
하지만 모두 사진 속에 남아있는 옛 이야기다. 4대강사업 전만 해도 철새들이 많이 찾았던 남한강은 준설과 함께 새들도 찾기 힘들어졌다. 강 둔치엔 4대강사업으로 파낸 준설토가 갈 곳을 잃고 거대한 산으로 방치되어 있고 샛강으로 변해버린 비내늪 습지는 철새도래지라는 푯말이 무색할 정도로 황량하다. 남한강 초입 오누이가 놀던 모래사장은 거대한 보에 막혀 가라앉았다. 돌아보면 가슴 먹먹한 곳이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습조차 묵묵히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엔 온전하게 살아있는 강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강을 카메라에 담았지요. 그런 와중에 4대강사업이 진행되었고 강이 어떻게 훼손되고 파괴되는지 그 과정을 찍게 된 거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요. 일단은 기록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기록하려고요. 지금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해도 나중에라도 우리가 어떻게 강을 파괴했는지,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또 강을 되돌릴 때 이 기록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남한강뿐만 아니라 금강, 낙동강, 영산강 그리고 그 강들의 지천들, 숱한 강들을 다녔다. “4대강사업이나 댐 문제나 내성천 문제는 사실 본질적으로 같아요. 돈이죠, 돈. 강에서 불로소득을 얻기 위해 벌이는 사업들이죠. 문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고 우리가 이런 일들에 익숙해진다는 것이죠. 그게 제일 무섭죠.”
내성천은 그에게 특별한 곳이다. “4대강사업 예정지를 따라 다닐 때에요. 안동 오천교를 지났는데 만만치 않은 곳이 있어 물어보니 내성천이래요. 보자마자 어렸을 때 놀던 강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때부터 그는 내성천을 찾았다. “내성천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강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강이에요.” 그에게 내성천은 4대강사업을 풀 열쇠이기도 하다. “4대강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라고 했을 때 두 가지 에너지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4대강사업으로 인한 부작용들, 이를테면 4대강에 녹조가 뒤범벅되어 물고기들이 죽고 다리가 무너지고 보에 금이 가는 문제들을 알려 이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있겠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강의 원래 모습들을 알리고 직접 그 안에 들어가 몸으로 느끼는 과정을 통해 이것이야말로 진짜 강인데,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모아 바꿔낼 수 있겠죠. 전자를 부정적인 에너지라고 한다면 후자는 긍정적인 에너지에요. 둘 다 필요하지만 전 긍정적인 에너지가 더 큰 힘을 낸다고 봐요. 더 나아가 내성천에 대해 사회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합의점을 마련하는 과정이 생긴다면 토건 위주의 사회에서 생태사회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어요.” 그래서 그는 올해, 영주댐이 물을 담고 가동하기 전에 이 댐이 정말 필요한지, 내성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카메라 들고 강을 만나러 가는 초록사진가 박용훈 씨 ⓒ함께사는길 이성수
“모래가 돌아왔다. 고니가 돌아왔다.”
강을 따라 여주, 원주를 지나 충주까지 왔다. 변해버린 남한강에도 희망은 있었다. “최근 모래가 다시 퇴적된 구간에 새들이 머물고 있는 모습이 많아졌어요. 재퇴적 현상을 4대강사업의 실패로 볼 수도 있지만 강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희망적이죠.” 그는 환경연합 회원들과 독자들에게도 당부했다. “우리 강은 4대강사업으로 끝난 게 아니에요. 관심 갖고 계속 주시하지 않으면 4대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요. 당장 성과가 나든 안 나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강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그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뛸 수 있습니다.”
남한강에서 서울로 방향을 틀었다. 미련이 남아서일까. 차는 흥원창으로 가는 길로 빠졌다. 둑방 위에서 그가 눈을 떼지 못한다. 이 겨울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니들이 자산 아래 남한강에 앉아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모래 위로 몇 마리는 털을 고르고, 강 위에서는 자맥질하는 고니들이 엉덩이를 들고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먹이를 찾고 있다. 얼굴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손은 바쁘다. “모래가 돌아오니 고니도 돌아왔어요!”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언젠가 그가 남한강에서 찍었다던 아이의 모습과 닮았다. 그는 지금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찍고 있다. 그렇게 그는 다시 흐를 강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 | 박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