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숙 글, 남해의봄날, 1만5000원
“벽화가 정말 예뻐.”, “동화 속의 마을이 정말 있더라니까.” 동피랑 마을에 대한 찬사들은 워낙에 널리 퍼져서 가보지 않고도 이미 익숙해진 기분이다. 그래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행된 철산동이나 홍제동의 개미마을의 마을 벽화를 떠올리며 조금은 시큰둥하기도 했다. 그 동피랑과 통영의 지난 10년을 다룬 책이 바로 『춤추는 마을 만들기』다. <푸른통영21 추진협의회>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10년 동안 이끈 윤미숙 전 사무국장이 펴냈다(그는 지난 12월 29일 통영시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라는 어리둥절한 소식을 접했다).
동피랑 마을의 가장 유명한 벽화는 바로 ‘날개’다. 날개로 가득 찬, 그래서 벽면이 거대한 날개로 변신해 어느 신비한 순간이면 날갯짓을 크게 하며 날아갈 것 같은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다. 한동안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 담벼락에도 날개를 그려달라며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재개발 계획에 따라 밀려나버릴 운명에 처했던 동피랑 마을은 그렇게 날개를 달았다. 하나의 마을이 그 자리에서 자기의 터전을 지키는 일, 살던 사람들을 그대로 살게 만드는 일, 그 당연한 일을 지속시키기는 일은 사실상 쉽지 않다. 개발의 논리에는 공생과 지속의 당위로 맞서야 하고,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십상인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는 솔직함과 인내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이야기의 시작쯤이다. 화석에너지 제로의 섬인 ‘에코 아일랜드 연대도’, 구도심 재생프로젝트 ‘강구안 푸른 골목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통영의 시끌시끌한 골목마다 그가 있었다. 그가 통영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벽화가 대유행이다. 그러나 도심의 때깔 바꾸기만으로는 지속이 절대 불가능하다. 예술 작품이 몇 개 들어섰다고 그 공간에 사는 주민들에게 일찍이 없던 애정이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밑바탕이자 기본은 소통과 공감이다. 추진하는 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충만한 측은지심과 재생, 즉 다시 일어서기에 어떤 형식으로든지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하는 낮은 마음이다. 사실 마을 만들기에 관한 모든 사업은 복지의 개념에서 출발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맞다.”
동피랑에 날개를 달아준 마을 벽화의 밑그림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다. 마을을 예쁜 포토월로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원래 그 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그냥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들, 사람들이 살던 대로 살게 하기 위한 일들이다. 그런 이유로 책은 실제의 통영을 몹시도 궁금하게 만든다. 동피랑 마을이 벽화를 입게 된 이후에, 연대도가 화석에너지 제로의 섬이 된 이후에, 강구안의 골목들이 아기자기 자기 스토리와 색채를 가진 이후에, 마을의 일상에너지들이 어떤 식으로 재생되는지……. 더 이상 시큰둥할 수 없게 만든다. 마을, 소통, 공감. 사실은 특이할 것 하나 없는 주제어들이다. 그리고 마을을 헐고, 그곳에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를 세우고, 쇼핑몰을 조성할 때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주제어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보태자면, 나는 제주에 산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돼 활기를 띠는 마을의 이야기와 여전히 선주민들과 이주민들 사이에 놓인 유리벽을 철거하지 못해 갈등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도시 생활을 다 벗지 못한 채 어영부영 살고 있는 내게, 제주귀농을 ‘치밀하게’ 계획하며 제주에 머물고 있는 후배가 그랬다. “삼춘들이 그러더라고요. 아이는 마을이 키워주는 거라고.” 이 한 마디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마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제주사투리의 뉘앙스를 충분히 살리려면 삼촌이 아니라 ‘삼춘’이라고 발음해야 옳다. 남자든 여자든 마을 어른들을 친밀하게 부를 때 그렇게 부른다. 그 삼춘들의 마음을 얻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날 사람이 아니라야 눈길을 준다. 공감, 소통, 애정 확인이 모두 이뤄진 다음에는, 그때는 마을이 기꺼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선다. 그럼 게임 끝이다. 통영이든 제주든, 벽화를 보러 사람들이 마을을 드나들고, 떠나려던 사람이 머물고, 마을이 궁금해진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오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생계의 방식을 고민하고, 도시가 아니라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그럼 게임 끝이다.
마을을 춤추게 하는 것이 자본의 흐름이나, 땅 한 평의 가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종종 아주 뒤늦게 받아들여진다. 마을의 내일에 필요한 것이 결국에는 어제와 오늘의 재미나는 일상이라는 그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윤미숙 글, 남해의봄날, 1만5000원
“벽화가 정말 예뻐.”, “동화 속의 마을이 정말 있더라니까.” 동피랑 마을에 대한 찬사들은 워낙에 널리 퍼져서 가보지 않고도 이미 익숙해진 기분이다. 그래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행된 철산동이나 홍제동의 개미마을의 마을 벽화를 떠올리며 조금은 시큰둥하기도 했다. 그 동피랑과 통영의 지난 10년을 다룬 책이 바로 『춤추는 마을 만들기』다. <푸른통영21 추진협의회>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10년 동안 이끈 윤미숙 전 사무국장이 펴냈다(그는 지난 12월 29일 통영시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라는 어리둥절한 소식을 접했다).
동피랑 마을의 가장 유명한 벽화는 바로 ‘날개’다. 날개로 가득 찬, 그래서 벽면이 거대한 날개로 변신해 어느 신비한 순간이면 날갯짓을 크게 하며 날아갈 것 같은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다. 한동안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 담벼락에도 날개를 그려달라며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재개발 계획에 따라 밀려나버릴 운명에 처했던 동피랑 마을은 그렇게 날개를 달았다. 하나의 마을이 그 자리에서 자기의 터전을 지키는 일, 살던 사람들을 그대로 살게 만드는 일, 그 당연한 일을 지속시키기는 일은 사실상 쉽지 않다. 개발의 논리에는 공생과 지속의 당위로 맞서야 하고,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십상인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는 솔직함과 인내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이야기의 시작쯤이다. 화석에너지 제로의 섬인 ‘에코 아일랜드 연대도’, 구도심 재생프로젝트 ‘강구안 푸른 골목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통영의 시끌시끌한 골목마다 그가 있었다. 그가 통영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벽화가 대유행이다. 그러나 도심의 때깔 바꾸기만으로는 지속이 절대 불가능하다. 예술 작품이 몇 개 들어섰다고 그 공간에 사는 주민들에게 일찍이 없던 애정이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밑바탕이자 기본은 소통과 공감이다. 추진하는 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충만한 측은지심과 재생, 즉 다시 일어서기에 어떤 형식으로든지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하는 낮은 마음이다. 사실 마을 만들기에 관한 모든 사업은 복지의 개념에서 출발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맞다.”
동피랑에 날개를 달아준 마을 벽화의 밑그림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다. 마을을 예쁜 포토월로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원래 그 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그냥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들, 사람들이 살던 대로 살게 하기 위한 일들이다. 그런 이유로 책은 실제의 통영을 몹시도 궁금하게 만든다. 동피랑 마을이 벽화를 입게 된 이후에, 연대도가 화석에너지 제로의 섬이 된 이후에, 강구안의 골목들이 아기자기 자기 스토리와 색채를 가진 이후에, 마을의 일상에너지들이 어떤 식으로 재생되는지……. 더 이상 시큰둥할 수 없게 만든다. 마을, 소통, 공감. 사실은 특이할 것 하나 없는 주제어들이다. 그리고 마을을 헐고, 그곳에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를 세우고, 쇼핑몰을 조성할 때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주제어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보태자면, 나는 제주에 산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돼 활기를 띠는 마을의 이야기와 여전히 선주민들과 이주민들 사이에 놓인 유리벽을 철거하지 못해 갈등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도시 생활을 다 벗지 못한 채 어영부영 살고 있는 내게, 제주귀농을 ‘치밀하게’ 계획하며 제주에 머물고 있는 후배가 그랬다. “삼춘들이 그러더라고요. 아이는 마을이 키워주는 거라고.” 이 한 마디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마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제주사투리의 뉘앙스를 충분히 살리려면 삼촌이 아니라 ‘삼춘’이라고 발음해야 옳다. 남자든 여자든 마을 어른들을 친밀하게 부를 때 그렇게 부른다. 그 삼춘들의 마음을 얻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날 사람이 아니라야 눈길을 준다. 공감, 소통, 애정 확인이 모두 이뤄진 다음에는, 그때는 마을이 기꺼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선다. 그럼 게임 끝이다. 통영이든 제주든, 벽화를 보러 사람들이 마을을 드나들고, 떠나려던 사람이 머물고, 마을이 궁금해진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오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생계의 방식을 고민하고, 도시가 아니라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그럼 게임 끝이다.
마을을 춤추게 하는 것이 자본의 흐름이나, 땅 한 평의 가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종종 아주 뒤늦게 받아들여진다. 마을의 내일에 필요한 것이 결국에는 어제와 오늘의 재미나는 일상이라는 그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