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순 지음, 낮은산, 1만2000원
가족을 위한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사람, 그 자체가 삶의 이유가 돼 버린 사람들에게는 그 생을 상징하는 어떤 물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자전거였다. 요즘처럼 세련된 고성능의 자전거가 아니라, 이른바 ‘쌀집 자전거’라고 불리는 옛날 자전거, 그게 그의 자가용이었다. 통 넓고 낡은 양복바지, 그리고 가벼운 점퍼 차림에 낡은 구두를 신고 그는 자전거에 올라 열심히 페달을 굴러 출근을 했고, 퇴근을 했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었고, 날이 추울 때는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다. 간혹 만두나 군고구마 따위의 먹을거리를 검은 비닐봉투에 달랑달랑 매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쉬는 날이면 열심히 자전거를 닦았고, 기름칠을 했다. 아버지가 택한 밥벌이는 자전거와 무관했지만, 어린 나의 눈에 아버지의 일은 자전거로 완성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어떤 사치도 허용하지 않았던 그는, 내가 아는 한 십오 년 이상 동안 단 하나의 자전거를 소유했다. 아버지에게 자동차가 없다는 사실은 어린 나를 자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전거가 아니라면 버스를!”이라는 고집을 신념처럼 유지했고, 가족 나들이라도 가는 날에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버스를 두 번, 세 번 갈아탔다. 그 때문에 출발 전부터 나는 그 나들이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의 노동을 위해서 쓰이는 자전거를 나는 마지막까지 아껴주지 못했다. 자전거도, 그 자전거의 주인도 이제는 세상에 없고, 그 자전거를 아껴주지 못했던 뒤늦은 미안함과 자전거에 대한 특별한 애잔함만 남아있다. 운명의 장난처럼 몇 번의 이사를 거처 어린 시절 바로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탓에 골목 어귀를 돌아 그의 자전거와 골목을 빠르지 않은 속도로 돌아가는 장면들이 문득문득 눈앞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에는 뜨거운 땀방울과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노동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기의 몸뚱이로 생활 혹은 생계와 싸우는 이들에 대한 따뜻함으로 쓰인 책이다.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는 그때 나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하며 쓰고 그린 이야기입니다. 어린 내 눈에도 그때 아버지는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일터의 새벽은 몹시도 추워 이른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아버지는 솜바지를 입었습니다. 살면서 꾀를 부리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의 낡은 솜바지를 떠올립니다. 다시 일을 나가던 날 아침, 아버지가 동네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사 주었습니다. 멜로디언을 내 품에 안겨 주시며 활짝 웃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솜바지를 입은 아저씨가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나르고, 땀을 흘리고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림과 이야기로 담아낸 책이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다. 다음은 책의 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가. 그래도 솜바지 아저씨는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어.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고. 새가 울고 웃는 줄도 모르고. 하지만 시간은 아저씨보다 더 빠르게 달려갔지. 아저씨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고 솜바지도 군데군데 낡아 가기 시작했어.”
솜바지 아저씨의 노동하는 하루하루는 멜로디언에 행복해하는 딸아이와 그 가족의 역사를 이룰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단 하나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던 그 나날들이 나의 유년시절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곳의 우리에게는 그 노동하는 하루하루를 되돌려 받기 위해서 수년을 싸우고 패배한 뒤에 다시금 70미터 높이의 굴뚝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 자본과 권력은 겨울 날씨보다 더 차가운 얼굴로 외면하고, 우리 중의 누군가는 (혹은 나는) 자기의 밥벌이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며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세상의 모든 솜바지 아저씨, 고공에서 혹은 광장에서 자기의 노동으로 돌아가려는 모든 이들, 자기의 노동으로 자기의 역사를 조금씩 굴리는 그 모든 이들에게 책의 마지막 구원을 동원해 응원을 보낸다. “더위에 지지 않는 전설의 추장처럼. 추위에 물러서지 않는 용맹한 에스키모처럼.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고. 새가 울고 웃는 줄도 모르고.” 함께 살아봅시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고정순 지음, 낮은산, 1만2000원
가족을 위한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사람, 그 자체가 삶의 이유가 돼 버린 사람들에게는 그 생을 상징하는 어떤 물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자전거였다. 요즘처럼 세련된 고성능의 자전거가 아니라, 이른바 ‘쌀집 자전거’라고 불리는 옛날 자전거, 그게 그의 자가용이었다. 통 넓고 낡은 양복바지, 그리고 가벼운 점퍼 차림에 낡은 구두를 신고 그는 자전거에 올라 열심히 페달을 굴러 출근을 했고, 퇴근을 했다. 비가 오면 비옷을 입었고, 날이 추울 때는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다. 간혹 만두나 군고구마 따위의 먹을거리를 검은 비닐봉투에 달랑달랑 매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쉬는 날이면 열심히 자전거를 닦았고, 기름칠을 했다. 아버지가 택한 밥벌이는 자전거와 무관했지만, 어린 나의 눈에 아버지의 일은 자전거로 완성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어떤 사치도 허용하지 않았던 그는, 내가 아는 한 십오 년 이상 동안 단 하나의 자전거를 소유했다. 아버지에게 자동차가 없다는 사실은 어린 나를 자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전거가 아니라면 버스를!”이라는 고집을 신념처럼 유지했고, 가족 나들이라도 가는 날에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버스를 두 번, 세 번 갈아탔다. 그 때문에 출발 전부터 나는 그 나들이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의 노동을 위해서 쓰이는 자전거를 나는 마지막까지 아껴주지 못했다. 자전거도, 그 자전거의 주인도 이제는 세상에 없고, 그 자전거를 아껴주지 못했던 뒤늦은 미안함과 자전거에 대한 특별한 애잔함만 남아있다. 운명의 장난처럼 몇 번의 이사를 거처 어린 시절 바로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탓에 골목 어귀를 돌아 그의 자전거와 골목을 빠르지 않은 속도로 돌아가는 장면들이 문득문득 눈앞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에는 뜨거운 땀방울과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노동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기의 몸뚱이로 생활 혹은 생계와 싸우는 이들에 대한 따뜻함으로 쓰인 책이다.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는 그때 나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하며 쓰고 그린 이야기입니다. 어린 내 눈에도 그때 아버지는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일터의 새벽은 몹시도 추워 이른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아버지는 솜바지를 입었습니다. 살면서 꾀를 부리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의 낡은 솜바지를 떠올립니다. 다시 일을 나가던 날 아침, 아버지가 동네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사 주었습니다. 멜로디언을 내 품에 안겨 주시며 활짝 웃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솜바지를 입은 아저씨가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나르고, 땀을 흘리고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림과 이야기로 담아낸 책이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다. 다음은 책의 한 장면이다.
“사람들은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가. 그래도 솜바지 아저씨는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어.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고. 새가 울고 웃는 줄도 모르고. 하지만 시간은 아저씨보다 더 빠르게 달려갔지. 아저씨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고 솜바지도 군데군데 낡아 가기 시작했어.”
솜바지 아저씨의 노동하는 하루하루는 멜로디언에 행복해하는 딸아이와 그 가족의 역사를 이룰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단 하나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던 그 나날들이 나의 유년시절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곳의 우리에게는 그 노동하는 하루하루를 되돌려 받기 위해서 수년을 싸우고 패배한 뒤에 다시금 70미터 높이의 굴뚝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 자본과 권력은 겨울 날씨보다 더 차가운 얼굴로 외면하고, 우리 중의 누군가는 (혹은 나는) 자기의 밥벌이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며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세상의 모든 솜바지 아저씨, 고공에서 혹은 광장에서 자기의 노동으로 돌아가려는 모든 이들, 자기의 노동으로 자기의 역사를 조금씩 굴리는 그 모든 이들에게 책의 마지막 구원을 동원해 응원을 보낸다. “더위에 지지 않는 전설의 추장처럼. 추위에 물러서지 않는 용맹한 에스키모처럼.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고. 새가 울고 웃는 줄도 모르고.” 함께 살아봅시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