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95] 다음은 당신의 가족이다

『신문 아카하타』 편집국 지음, 홍상현 옮김, 나름북스, 1만5000원

 

원자로 한 기당 대규모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양키 스타디움에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 동일한 확률이다. 그럴싸한 신화는 보통 그렇게 시작한다. 얼토당토않은 비유가 진실을 가리고 거짓의 신화를 만든다. 그런데 그 비유를 팩트의 언어와 다시 결합시킨다면? 1975년 10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연료용융의 확률을 2만분의 1로 보고 있으며, 이는 200원자로/년 동안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그리고 3년 뒤, 쓰리마일 섬 원전에서 노심용융이 일어났다. 미국 원자력 역사상 가장 큰 사고로 기록된 사고다. 체르노빌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쓰리마일 섬 원전 사고가 더 많이 언급되었을 것이라는 일각의 얘기도 있다. 인터넷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검색 화면이 다 펼쳐지기도 전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그러나 감은 상태에서도 그 이미지의 잔상이 남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사진들이 나온다. 한순간에 폐허의 도시 혹은 유령의 도시가 된 체르노빌은 두고두고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의 지명이 되었고, 지금은 후쿠시마가 그것을 넘겨받고 있다. 비유 속의 양키 스타디움은, 우리가 그저 손쉽게 꼽는 것만으로도 벌써 세 번이나 파괴되었다. 그러니까 지구는 벌써 (전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것만 세어도) 세 번이나 운석과 충돌한 셈? 아이러니하게도 저 끔찍한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들은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을 주장하던 수많은 주장과 비유들을 산산조각 내서 날려버리지 못했다. 여전히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많으며, 아직 폭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다른 원전들을 새로운 믿음의 근거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마저도 논파되면, 드디어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싸잖아? 그래도 편리하잖아? 그래도 지역경제가 발전하잖아? 

지역 경제 발전! 강원도 삼척에서 원자력 발전소 유치를 놓고 벌인 주민투표에서 삼척 시민들은 85퍼센트의 반대의사를 표출했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반대. 그렇지만 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사무를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법적 효력이 없으며, 원전이 지역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어느 지역에서나 만병통치로 쓰이는 마법의 언어가 바로 저 지역 경제 발전이다. 이쯤에서 『원전 마피아-이권과 종속의 구조』가 밝히는 그 지역 경제 발전의 허울을 읽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간사이 전력은 이른바 ‘원전 머니’를 63개 마을에 풀었다. 이를 테면, 마을 ‘매수’ 사업. 원전이 있는 마하마초는 2006년 한 해에만 12억3000만 엔의 기부금을 받았고, 후쿠이 현은 2009년 현재 100억 엔의 교부금을 받았다.

“모든 것의 발단은 바로 간사이 전력으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5억 엔의 기부금이었습니다. 지자체 당국은 기금을 설립해 은행에 5억 엔을 모두 예치한 후, 그 이자를 마을에 배포하는 시스템을 구성했습니다. 각 지구마다 연간 최대 180만 엔 정도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굴러들어 와 주민들의 축제나 여행, 청소 등에 쓰입니다. 이는 모두 마을 단위에서 전체적으로 치러지는 행사들이기 때문에 설사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사이 전력은 지역에 돈을 기부해 지역 유력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회사도 간사이 전력 관계사뿐이고, 돈 나올 데라고는 간사이 전력밖에 없거든요. 미하마초에서는 한마디로 ‘간사이 전력 느님’인 거죠.”  

개인의 삶은 한 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자명한 현실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생중계되는 중이다. ‘세월호’에서 가라앉은 것은 위험이 닥치면 어른들이(혹은 시스템이 혹은 사회가) 구해줄 것이라고 세상의 상식과 선의를 믿었던 순진하고 무구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거대한 죽음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위험과 함께 살기와 결별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다음 사고는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나라에만 해도 23기의 원전이 있으며, 수명을 다한 원전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 와중에서 그 생명을 갱신해가며 가동중에 있다. 안전하지 않은 것들을 경고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언어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원전 마피아들의 검은 돈은 언제나 위력적이고 묵시록의 어휘들은 ‘값싸고 편리한 전기’의 신화 앞에서 공허하다. 원전 마피아의 유토피아에서 희생자 예비 명단에 등재된 이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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