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94] 4월 17일을 기다리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음, 생각의길, 1만2000원

 

침몰. 고작 두 음절로 이루어진 이 말이 얼마나 처참한 미궁이 되어 우리를 가두고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4월 16일 아침,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펴낸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은 세월호 사건에 조금만 귀를 열어둔 이들이라면 얼마든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서 들었을 법한 이 엉망진창의 ‘세월호 현실’에 대한 길지 않은 첫 번째 보고서이다.  

4월 16일 전원 구조라는 엄청난 오보를 시작으로 우리가 줄곧 지켜본 것은 ‘침몰 그 자체’였다. 세월호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있었으되, 그 첫 번째 탈출 이후 진정한 의미의 구조는 진행되지 못했고(혹은 진행시키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 중계된 것은 더 이상 추가로 집계되지 않는 생존자 숫자였고, 그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더 깊은 죽음들이었다.  

배를 버린 선장과 구조 현장을 버린 해경, 위기에 처한 국민들에게서 등을 돌린 국가재난시스템 같은 것들이, 깊어지는 침몰과 쌓여가는 죽음을 가리기 위해 동원된 미디어의 호들갑 사이로 삐죽삐죽 고개를 쳐들 뿐이었다.  

사실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안전’과 관련된 현실은 그 관련 사실 하나 하나가 매우 충격적이고 치를 떨 만한 일인데도, 최악의 뉴스들은 날마다 갱신되다시피 했다.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진 규제 완화 혹은 규제 철폐, 허울뿐인 국가재난관리 시스템, 해피아 혹은 관피아가 장막을 이룬 관리 감독 체계의 허술함, 구난업체 언딘의 이해할 수 없는 늑장대응과 VTS 관제탑의 안일한 근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안전행정부의 대처, 청와대의 (비밀스러운) 허둥지둥에 이르기까지, 마치 변덕스런 기상 예보처럼 쉴 새 없이 기함할 소식들이 터져 나왔다. 매일이 4월 16일이었고, 날마다 잿더미 같은 대참사였다.  

이 와중에 가장 눈물겨운 것은 유가족들의 고단하고 슬픈 싸움이다. 언젠가 그 싸움들 역시 낱낱이 기록되어 전해질 날이 오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담게 될 모든 활자들은 아프게 새겨질 것이 틀림없다. 손쉬운 털어내기에 골몰하는 정치권, 무심함을 넘어서서 의도적인 조롱과 비난을 퍼부어대는 일부 국민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다 포함하는 특별법에 대해서 곧이곧대로 다뤄주지 않는 언론, 이것들이 모두 지금-이곳을 집어삼키려 일렁이는 깊은 파도들이다. 사고가 있던 날부터 유가족들 서 있던 모든 자리들은 진실을 찾기 위한 전쟁터의 최전선이었다. 

“지난 7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증인신문 절차가 진행되었다. 그중 한 학생은 증언 말미에 ‘선원들에 대한 처벌보다 더 원하는 것은 왜 친구들이 그렇게 돼야 했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무엇 때문에 세월호 침몰사고는 대참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수백 명의 생떼 같은 목숨을 수장시켜야 했는지, 진실을 알고 싶은 국민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어쩌면 생존 학생의 저 진술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모든 것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것 없이 배를 버린 선장(들)을 향한 분노나 국민의 안전에 속수무책인 국가 권력을 향한 비판은 의미 없는 감정소모와 다를 바 없다.  

“또 세월호야? 이제 찬바람도 부는데, 그만할 때 되지 않았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래, 여전히 세월호다. 세월호가 그렇게 가라앉아야 했던 그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세월호다. 팽목항은 이미 4월 16일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봄을 맞이하지 못했으므로, 아직도 세월호를 붙들어야 한다. 산 사람은 그렇게 참혹한 우리의 진실을 마주하고, 그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야 한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한다면, 묻어 두고 가야 하는 것이 끔찍한 진실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더 처참한 침몰과 더 거대한 파국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p.s. 사실은, 지금까지 쓴 모든 것들은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던진 말들이다. 나는 어느새, 아니 진즉부터 이 슬픔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당신도 안다. 지금은 그 어떤 슬픔도 과잉일 수 없으며, 416 세월호에 대한 그 어떤 진술들도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것을. 그런 이유로 지금-이곳의 어느 누구도 아직 4월 17일을 갖지 못했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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