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트린 드 실기 지음, 이은진·조은미 옮김, 따비, 1만8000원
어쩌다 보니 지난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지금까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혹은 크다고도 작다고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인테리어 하며 나게 됐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헤쳐 나가려니 고난의 행군 그 자체였다. 그런 하루하루는 성취감과 불안감, 그리고 제법 상당한 쓰레기로 마감되었다. 목수와 전기공과 수도공 등등 기능공들이 작업을 마치고 간 자리에 남은 것들, 그 작업의 부산물들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 목록을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도 있다. 생활 쓰레기야 이리저리 분리해서 처리하는 법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건 종류가 달랐다. 말하자면 일종의 산업 쓰레기들이었다. 이걸 처리하기 위해서, 이 일을 전담하는 사람들을 따로 불러 처리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무척이나 부러워졌다.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그들은 거의 전제군주에 다름없다!
이 와중에 읽게 된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는 쓰레기 더미로 골치를 앓는 내게 사실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쓰레기’라는 이 자극적이고 혼잡한 소재를 두고 이토록 차분하게, 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풍경을 풀어내다니.
“그래서 쓰레기는 도시 바깥에, 매립지 개설에 가장 덜 저항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바로 그곳에 자리 잡는다. 쓰레기는, 종종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사회의 ‘쓰레기’들 옆에 부어지는데, 말하자면 ‘계급의 지형학’을 따르는 셈이다.” 같은 대목들에서 나는 ‘계급의 지형학’에 흥분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데, 저자는 나처럼 혹은 나의 쓰레기들을 내게 몰아주고 돌아간 기능공들처럼 감정을 함부로 내다버리지 않는다. 피카소가 ‘넝마의 왕’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는 장면에서도 저자는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피카소는 사물이 버려지는 것을 막고자 쓰레기통을 뒤졌다. 어느 날 이 천재 화가의 열성팬이 천조각을 잔뜩 선물했지만, 피카소는 이를 거절했다. 일상에서 버려지는 소박하고 더러운 천조각에서 시적 감상과 신비한 매력을 찾고 싶었던 탓이다. 장 콕토가 지어준 별명대로 이 ‘넝마의 왕’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한, 그래서 시간의 손때와 땀의 흔적이 묻어 있는, 그리고 그렇게 시간의 길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물건을 좋아했다. 이런 물건에는 분명 새것에는 없는 이야기와 흔적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쓰레기의 예술적인 재활을 말하는 대목에 등장하는 하나의 일화이지만, 여기서도 저자는 결코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있는 것은, 잘 정돈된 혹은 잘 마감된 실내 공간이다.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는 쓰레기라는 아주 특별한 주제를 놓고, ‘계급의 지형학’에서부터 ‘넝마의 왕’까지를 시종일관 차분하게 횡단한다. 그 풍경들은 특별한 이데올로기로 무장돼 있지는 않지만, 혹은 일부러 감추고 있지만, 만약 ‘쓰레기 박물관’이라는 게 있다면, 그 메인 출입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마땅한 책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쓰레기는 그렇게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라는 팻말과 함께.
p.s. 참고로 어쩌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지 못하고 손수 지휘하게 된다면, 기능공들의 일당을 깎지 마시고 차라리 작업하다 생긴 쓰레기 치우는 걸 도와달라고 하시길. 남은 쓰레기들을 처리하다 보면, 정작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일 수 있기 때문에! 피카소는 피카소일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카트린 드 실기 지음, 이은진·조은미 옮김, 따비, 1만8000원
어쩌다 보니 지난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지금까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혹은 크다고도 작다고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인테리어 하며 나게 됐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헤쳐 나가려니 고난의 행군 그 자체였다. 그런 하루하루는 성취감과 불안감, 그리고 제법 상당한 쓰레기로 마감되었다. 목수와 전기공과 수도공 등등 기능공들이 작업을 마치고 간 자리에 남은 것들, 그 작업의 부산물들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 목록을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도 있다. 생활 쓰레기야 이리저리 분리해서 처리하는 법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건 종류가 달랐다. 말하자면 일종의 산업 쓰레기들이었다. 이걸 처리하기 위해서, 이 일을 전담하는 사람들을 따로 불러 처리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무척이나 부러워졌다.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그들은 거의 전제군주에 다름없다!
이 와중에 읽게 된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는 쓰레기 더미로 골치를 앓는 내게 사실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쓰레기’라는 이 자극적이고 혼잡한 소재를 두고 이토록 차분하게, 중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풍경을 풀어내다니.
“그래서 쓰레기는 도시 바깥에, 매립지 개설에 가장 덜 저항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바로 그곳에 자리 잡는다. 쓰레기는, 종종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사회의 ‘쓰레기’들 옆에 부어지는데, 말하자면 ‘계급의 지형학’을 따르는 셈이다.” 같은 대목들에서 나는 ‘계급의 지형학’에 흥분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데, 저자는 나처럼 혹은 나의 쓰레기들을 내게 몰아주고 돌아간 기능공들처럼 감정을 함부로 내다버리지 않는다. 피카소가 ‘넝마의 왕’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는 장면에서도 저자는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피카소는 사물이 버려지는 것을 막고자 쓰레기통을 뒤졌다. 어느 날 이 천재 화가의 열성팬이 천조각을 잔뜩 선물했지만, 피카소는 이를 거절했다. 일상에서 버려지는 소박하고 더러운 천조각에서 시적 감상과 신비한 매력을 찾고 싶었던 탓이다. 장 콕토가 지어준 별명대로 이 ‘넝마의 왕’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한, 그래서 시간의 손때와 땀의 흔적이 묻어 있는, 그리고 그렇게 시간의 길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물건을 좋아했다. 이런 물건에는 분명 새것에는 없는 이야기와 흔적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쓰레기의 예술적인 재활을 말하는 대목에 등장하는 하나의 일화이지만, 여기서도 저자는 결코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있는 것은, 잘 정돈된 혹은 잘 마감된 실내 공간이다.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는 쓰레기라는 아주 특별한 주제를 놓고, ‘계급의 지형학’에서부터 ‘넝마의 왕’까지를 시종일관 차분하게 횡단한다. 그 풍경들은 특별한 이데올로기로 무장돼 있지는 않지만, 혹은 일부러 감추고 있지만, 만약 ‘쓰레기 박물관’이라는 게 있다면, 그 메인 출입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마땅한 책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쓰레기는 그렇게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라는 팻말과 함께.
p.s. 참고로 어쩌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지 못하고 손수 지휘하게 된다면, 기능공들의 일당을 깎지 마시고 차라리 작업하다 생긴 쓰레기 치우는 걸 도와달라고 하시길. 남은 쓰레기들을 처리하다 보면, 정작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일 수 있기 때문에! 피카소는 피카소일 뿐인 것을 어쩌겠는가.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