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림 03] 대머리 총각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이 어리고 빡빡 밀어 버린 헤어스타일 때문에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그냥 대머리 총각이라고 불렀다. ‘탈모로 인해 머리를 전부 밀었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더랬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를 더는 대머리 총각이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의 외모를 비하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친근한 인상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인데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다. 되도록 세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물을 절약하기 위해 민머리 헤어스타일을 선택했다고 했다. 중고로 물건을 구입하고 옷이나 신발도 함부로 사지 않는다고 했다. 환경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지구인이 바로 대머리 총각의 참모습이었다. 

‘너 하나가 애쓴다고 환경문제가 해결 되겠냐?’며 주위 사람들은 그의 실천력을 비웃었지만 나의 눈에는 그가 반듯한 두상만큼이나 생각도 바르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보였다. 

지난해 뜻이 맞는 친구들과 모여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목적으로 그림을 넣은 티셔츠를 만들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다. 그 때 그렸던 새끼 고라니 그림을 다시 펼쳐보며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한 글귀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자각한 열망과 가능성은 너무도 강력해서 폐허 속에서도, 아수라장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병 들어가는 지구별이 폐허이자 아수라장이라면 내가 만난 대머리 총각(이제는 추억 속 별명이 되었지만)의 빛나는 열망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가능성이 아닐까.

 

글 · 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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