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성성한 정수리가 노래방 불빛을 받아 노랗게 익어 있었다. 맥주 두어 잔에 발그스름해진 눈가에 피곤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더는 젊다고 말하기 어려운 중년의 세 여자가 노래방에 모여 조촐한 송년회를 하는 자리였다. 일행 중 누군가가 각자 아버지의 18번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막걸리와 파전을 좋아하는 친구가 일어나 ‘칠갑산’을 불렀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체면상 부르시던 공식적인 18번이라고 했다. 아버지 생전에 진짜 18번이 뭐냐고 한 번 여쭤볼 걸 그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닭튀김에 맥주를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엇박자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렀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윈 친구의 기억 속 18번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일어나 나의 아버지의 애창곡을 불렀다.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없겠지.
변해버린 당신이기에.
내 곁에 있어 달라 말도 못하고.
내 아버지의 18번 ‘무정 부르스’
새벽 일터로 나가실 때 솜바지를 입으시며 나지막이 무르시던 노래다. 일손을 놓으시고 컴퓨터 노래방 프로그램에 맞춰 부르시던 노래다. 술에 취해 부르시고 할아버지 제사날 밤을 치며 부르시던 노래다. 어쩌면 쓸쓸하고 외롭고 허전한 날, 홀로 부르셨을지도 모르는 노래다.
노래방을 나오며 알았다. 나만 아버지의 애창곡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내 곁에 아직도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없는’ 것은 떠나간 님이 아니라 세월일지도 모른다.
노래방에서 불러보는 아버지의 노래는 차마 쑥스러워 입조차 떼지 못했던 나의 사랑고백쯤으로 여기고 싶다.
흰머리 성성한 정수리가 노래방 불빛을 받아 노랗게 익어 있었다. 맥주 두어 잔에 발그스름해진 눈가에 피곤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더는 젊다고 말하기 어려운 중년의 세 여자가 노래방에 모여 조촐한 송년회를 하는 자리였다. 일행 중 누군가가 각자 아버지의 18번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막걸리와 파전을 좋아하는 친구가 일어나 ‘칠갑산’을 불렀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체면상 부르시던 공식적인 18번이라고 했다. 아버지 생전에 진짜 18번이 뭐냐고 한 번 여쭤볼 걸 그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닭튀김에 맥주를 곁들여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엇박자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렀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윈 친구의 기억 속 18번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일어나 나의 아버지의 애창곡을 불렀다.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없겠지.
변해버린 당신이기에.
내 곁에 있어 달라 말도 못하고.
내 아버지의 18번 ‘무정 부르스’
새벽 일터로 나가실 때 솜바지를 입으시며 나지막이 무르시던 노래다. 일손을 놓으시고 컴퓨터 노래방 프로그램에 맞춰 부르시던 노래다. 술에 취해 부르시고 할아버지 제사날 밤을 치며 부르시던 노래다. 어쩌면 쓸쓸하고 외롭고 허전한 날, 홀로 부르셨을지도 모르는 노래다.
노래방을 나오며 알았다. 나만 아버지의 애창곡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내 곁에 아직도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없는’ 것은 떠나간 님이 아니라 세월일지도 모른다.
노래방에서 불러보는 아버지의 노래는 차마 쑥스러워 입조차 떼지 못했던 나의 사랑고백쯤으로 여기고 싶다.
글 · 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