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갑상선암은 원전 책임” 승소 판결 받은 균도 네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얻어낸 균도 아빠 이진섭 씨와 이균도 씨 ⓒ함께사는길 이성수

 

“발전소를 운영하는 피고는 방사선 방출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지난 10월 17일 오전 10시 부산지법은 균도 네 가족이 고리핵발전소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살다가 가족이 병에 걸렸다며 (주)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핵발전소 옆에서 살다가 암에 걸렸다는 이들의 주장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아들은 발달장애 엄마 아빠는 암  

균도 네 가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핵발전소인 고리1호기를 비롯해 총 6기가 가동중인 기장군에 산다. 균도 아빠 이진섭 씨는 1990년 결혼하고 부산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당시 양산군 장안읍 좌천리)에 자리를 잡았다.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고리핵발전소가 있었지만 당시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이야기했고 처가도 지척에 있었다. 무엇보다 핵발전소 때문에 주변지역 개발이 제한된 탓에 마을은 조용하고 환경적으로 보전도 잘 되어 있어 그의 마음에 들었다.  

3년 후 이 마을에서 큰 아들인 균도 씨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들은 선천성 자폐성장애였고 아들의 치료를 위해 2년 정도 서울에 올라와 살았다. 하지만 별 소득 없이 다시 기장군으로 돌아온 그는 지역에서 아들과 같은 발달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며 2011년부터는 균도 씨와 함께 전국을 도보하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문제를 알리고 있다. 균도 네는 20년 넘게 고리 원전 반경 5킬로미터 안에서 살았고 현재도 핵발전소와 가까운 기장읍에서 살고 있다.  

핵발전소가 가족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낀 건 2011년과 2012년 이 씨와 그의 아내가 연이어 암 진단을 받고 부터다. 2011년 이 씨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기장군이 진행하는 무료 암 검진 대상자로 선정돼 검진을 받던 중 직장암이 발견됐다. 다행히 초기라 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이듬해 그의 아내 역시 같은 병원에서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이 씨는 한 가족의 불행으로만 여기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병원에 가보니 우리 동네 사람들 중에 암에 걸린 사람들이 참 많았다. 요즘 시대에 병원을 못가는 동네도 아니고 개발이 덜 돼 건강을 위협하는 오염원도 딱히 없는 동네다. 다른 지역과 다른 게 있다면 고리핵발전소밖에 없다.”  

그와 아내가 암 선고를 받던 시기, 세상은 고리핵발전소 부품 비리 문제가 시끄러웠다. 한수원 직원과 납품업체가 짜고 중고부품을 새 부품이라 속여 고리핵발전소의 주요 기기 부품으로 사용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가 높았다.  

고리핵발전소는 안전할까. 왜 우리 동네엔 암에 걸린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핵발전소 주변 지역의 암 발병률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비슷할까.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안전하다는 말만 할뿐 답을 주지는 않았다. 

 

이진섭 씨와 균도 씨는 2012년 소송 제기 후 탈핵을 외치며 고리에서 삼척까지 도보했다. 균도 네의 바람은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 대상 건강역학조사 실시와 고리1호기 폐쇄다 사진제공 이진섭


"핵발전소가 원인” 정부 상대로 소송 제기

정부의 답을 듣기 위해선 소송밖에 길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2012년 7월 정부를 상대로 고리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아들의 자폐와 부부의 암 발병 등 일가족 3명이 병에 걸렸다는 내용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이 정상가동중인 핵발전소를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소송 접수 전 기자회견을 열고 “핵발전소의 안전성 신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변 주민을 비롯한 모든 국민을 대신하는 소송”이라며 소송의 의미를 밝혔다. 

하지만 한수원의 대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재판을 수차례 연기하는 등 불성실하게 재판에 임했고 그 때문에 2년 3개월 동안 단 4차례의 재판만 열렸다. 일부 주민들은 정부에서 안전하다고 하는데 왜 문제를 만드느냐며 그를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론의 관심도 떨어지고 환경단체의 지원도 떨어지자 이 씨는 아들 균도 씨와 함께 고리에서 삼척까지 걸어가며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고 핵발전소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다 2014년 2월 뜻밖의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기장군이 공동으로 진행한 ‘기장군민 건강증진사업’ 성과를 홍보하면서 2010년 7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진행한 암 검진 결과 기장군 지역주민들의 암 진단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는 사실을 언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 내용에 따르면 기장군 지역주민들의 암 진단율은 전국평균보다 2〜3배 높았다. 특히 갑상선암이 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위암 31건, 대장암 6건, 폐암 4건, 전립선암 3건, 간암, 식도암, 유방암, 직장암이 각 2건, 담도암이 1건이었다. 이는 원자력의학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주민들은 제외한 수치였다. 의학계에서도 주민들의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기장군이 발표한 암 진단율 수치는 소송 전 이 씨가 병원과 기장군을 찾아가 수차례 물었던 내용이었고 그때마다 병원과 기장군은 개인정보라며 공개하지 않았던 사안이었다. 그는 자료를 구해 변호사에게 넘기고 다음 재판일을 기다렸다.  

 

법원, 갑상선암은 원전 책임 인정 

그리고 2014년 10월 17일, 소송한 지 2년 3개월 만에 재판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그와 아들의 질병에 대해선 기각을 하고 아내의 갑상선암에 대해서 영향이 있다며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갑상선암의 발생에는 방사선 노출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피고가 핵발전소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20년 가까이 거주하면서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 씨 아내에게 1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특히 발전소에서 방출된 연간 방사선량(제한구역 경계 기준)이 관련 법령에서 정한 연간유효선량 기준을 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연간유효선량이 인체가 노출되었을 경우 절대적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수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이 씨 부인이 발전소 부근에서 거주하면서 상당한 기간 발전소에서 내보내는 방사선에 노출되었고, 그로 인하여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암 발생에 대한 원전 책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원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방사성물질을 방출하는 원전이 건강에 위해한 시설이라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이 씨도 예상하지 못한 판결이었다. “흥분이 돼서 판결문을 다 듣지도 못하고 나왔다. 변호사를 붙잡고 우리 이긴 거 맞느냐고 묻는데 입이 덜덜 떨리더라. 나와 균도도 소송에 넣었지만 사실 목표는 갑상선암이었다.” 그의 승소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분위기도 달라졌다. 고맙다며 전화하는 주민들도 있고 소송을 함께 하고 싶다는 연락도 100명 넘게 왔다. 환경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원전 주변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3년 이상 거주하고 현재 갑상선암이 발병한 피해자들을 모아 공동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변 주민을 비롯해 모든 국민을 대신한 소송” ⓒ함께사는길 이성수 


고리1호기 폐쇄하고 인근 주민들 역학조사 실시하라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한수원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균도 네도 항소했다. 이 씨는 재판부가 갑상선암이 핵발전소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피해를 10분의 1밖에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으며 이후 소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판례를 남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항소를 했다고 밝혔다.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1심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이 씨와 균도 건은 기각이 된데다 아내의 갑상선암도 일부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나머지 소송비용을 이 씨가 다 부담해야 한다. 또 항소 결과에 따라 그 비용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건강역학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정부와 한수원이 핵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려면 주민들 건강조사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한 적이 없다. 2심 재판부는 한수원에 역학조사를 강제했으면 한다. 또 이번 계기를 통해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 대상 건강역학조사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었으면 한다.”며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리1호기 폐쇄다. “고리1호기는 지역주민들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지역 지원금도 2012년부터는 발전량에 따라 책정되면서 액수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고리1호기는 방사능물질을 계속 배출하고 있다. 더군다나 고리1호기 폐쇄는 시민들과 약속한 사안이다. 이제 꺼버려야 한다.”며 그는 힘주어 말했다.


글 | 박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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