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86] 파편 속 후쿠시마의 진실

오래된 그리고 유명한 일본 영화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라쇼몽』(羅生問)이라는 작품이다. 같은 제목의 짧은 소설과 다른 소설을 함께 엮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화한 이 작품은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한 전력도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내용과 형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숲 속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관련 인물과 목격자들의 진술이 제각각으로 달라, 누구도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식으로 그려진다. 굳이 『라쇼몽』까지 끌고 올라가긴 했지만, 진실의 절대성이 아니라 진실의 상대성에 집중하는 작품들은 드물지 않다. 진실은, 사건에 연루된 그 어떤 사람 혹은 그 어떤 시선이 일방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만 종합될 따름이다. 시선들의 총합,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의 이름이 곧 진실이라는 것.  

진실에 관한 가장 현실적인 또 다른 사례는 재판이다. 한 사건에 대해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 재판에는 원고와 피고 그리고 법관이 필수요소로 존재한다. 피고는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며, 원고는 피고야말로 유죄일 수밖에 없다고 강력하게 밀고 나간다. 때로 명명백백 유무죄를 가를 수 있는 사건들도 있지만, 원고와 피고가 일말의 진실을 나누어 가진 경우도 곧잘 생긴다. 그렇지만 법관은 그 둘의 주장과 논리를 살피면서, 둘 중 하나에게 거짓의 책임을 묻는다. 법관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한정되지만은 않는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 실행을 강제하기에 이른다.  

영화와 현실이 그려내는 진실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분명 다르다. 영화에서는 법관 혹은 법정이 없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혹은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법관이야말로 횡포이며 독재이며 무지라고 말한다. 이 세계의 의미는 누군가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자의 시선으로 판단하고 정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의 의미는 복잡하며, 진리는 단순하지 않고, 나와 나의 주장은 진실을 구성하는 한 부분일지언정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와 진실 앞에서 한정 없이 겸손해야 할 뿐이다.  

세상 앞에서 한정 없이 겸손하라! 혹은 이성의 독재를 끊임없이 경계하라! 이 주장이 매력적인가? 그러나 명심해야 할 지점이 분명히 있다. 진실의 상대성을 드러내는 일은 이성의 독재를 해체하는 탁월한 전략이다. 이른바 해체-탈구축의 이야기로서 말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이 해체-탈구축은, 필연적으로 지향 없는 지향이 되고 만다. 마치 텔레비전 리모컨으로 여러 채널을 마구잡이로 눌러대는 꼴이라고나 할까. 세계는 그저 파편처럼 흩어지고 그 파편들 속에서만 세계는 얼핏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세계의 의미가 조각날 때, 독재는 더 기승을 부린다. 독재는 당신과 내가 화해할 수 없이 갈라서는 것을 좋아한다.  

2011년 일본 원전 대재앙을 125명의 관련자를 인터뷰하여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한 『멜트다운』을 읽는 자리에서 다소 장황하고 엉뚱한 이야기판을 벌인 까닭을 이제 말하려 한다. 설마 그 누군가가 일본의 원전 혹은 다른 재앙을 말할 때, 그 재앙의 ‘다른 이유’를 말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들’은 결국 ‘다른 진실들’을 목표로 한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때의 ‘다른 진실’이란 결국 ‘진실은 없다’는 식의 파멸적 결론을 낳을 뿐이다. 누군가 그 파멸적 결론을 유도하려 할 때, 이 책을 권하자. 

“원인 제공 기업인 도쿄전력의 경영진들, 책임을 져야 하는 관청인 경제산업성 관료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보안원의 원전 전문가들, 도쿄전력에 2조 엔(약 23조250억 원)이나 대출해주고도 도쿄전력 경영이 위험해지자 자신들의 채권을 보전하는 일에만 필사적이었던 어리석은 은행가들, 미증유의 국난을 당했음에도 제정신으로 한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정쟁으로 날을 보낸 정치가들…엘리트나 중역, 선량이라 불린 사람들의 능력 결여와 보신, 책임 전가, 그리고 정신의 황폐”를 기록한 이 엄청난 ‘진실’을 권하자.  

봄을 기약하는 자리에 간절한 소망 하나를 새긴다. 왕에게는 다른 말을 전하는 어릿광대를! 우리에게는 바른말을 전하는 시끄럽고 요란한 나팔수를!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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