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195] 성장의 바깥을 상상하고, 살아내는 일

어쩌면 모두 다 아는 종류의 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는 2조5000억 톤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고, 2021년 한 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54억 톤이었다. 지구 온도 2도 상승까지는 9000억 톤이 남아 있고, 18년 정도가 남아 있다. 지구상에서 인류의 시대는 거의 끝에 다다랐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그 위기의 해결책들을 내놓는다. 물론 그것들에는 비용이 든다. 어김없이 자본주의적 불공정함 또한 개입된다.

전 세계 상위 20% 이상의 고소득자들이 누리는 소비생활은 이미 지구 생태계의 허용범위를 벗어났다. 한국의 경우 2019년 기준 하위 50%가 1인당 평균 7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반면 상위 1%는 1인당 180톤을 배출했다. 언제나 자동차와 함께하는 이동, 비행기로 떠나는 해외여행, 가전제품이 완벽하게 구비된 주방, 빼곡하게 옷을 걸어둔 드레스룸,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완벽하게 구비된 스마트한 일상…. 이것들을 자본주의삶의 표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후위기의 시대에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 또한 마땅하다. 지금의 위기는 기후위기 그 자체에만 있지 않고, 위기의 불평등에도 있다는 점에서 여러 겹의 난제를 안고 있다.

이런 현실 인식 위에서 쓰인 책이 바로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다. ‘녹색’성장의 허울을 쓰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방식 말고, 탈성장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도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인 셈이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문제를 특정해 볼까 한다. 제주도 입도세 문제. 제주에서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이슈 중의 하나가 입도세였다. 제주가 아름다운 관광자원으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안다. 온갖 종류의 쓰레기 더미로 덮이는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섬은 잘 모른다. 알 수는 있지만, 그것은 바다 건너의 일일 뿐이다. 제주도를 찾는 이들에게 환경보전기여금을 부과하자는 논의는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거론되던 이야기다. 금액은 8천 원 남짓이다. 이 소식이 언론을 탔던 날, 온라인에서는 팽팽한 찬반 논란이 일었고, 입도세를 받을 거라면, 육지세를 내라는 식의 조롱도 터져 나왔다. 비용의 측면에서 이런 논란은 이해가 간다. 제주도는 8천 원 더 비싼 섬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아진 비용과 비아냥의 궁극적인 화살은 제주도와 그 섬의 주민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화살은 과녁을 가리지 않는다.

자, 이 대목에서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사회적으로 좀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다 싶은 환경적 제안이 하나 있었다. 제주의 지역 언론에서 기획안 이 아이디어는 자동차가 없는 이른바 ‘뚜벅이’들에게 도보 소득을 제공하자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관광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제주도의 주차 전쟁은 이미 수년째 골칫거리이고, 서울 강남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제법 만만찮은 교통체증이 제주도의 일상을 고단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긍정적이며 괜찮은 제언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므로, 어떤 것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이익을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더 나은 일상과 더 나은 환경에 복무하도록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입도세가 지금 당장 어떤 섬 하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들.

도보 소득 같은 신박하지만 가능할까 싶은 대안적 기획이 탄소배출과 맞서 싸울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우리는 이미 성장의 깃발을 든 채 마이너스통장을 모두 다 소진했다. 탈성장,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해보지 않은 것, 혹은 이제 막 시도해 보는 일이다. 성장 시스템 바깥을 상상하고, 그 바깥을 기획하는 일, 그것을 살아내는 일은 생존전략이다. 매우 절박한.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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