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림 93] 그림 그리는 마음


내가 사는 마을 법흥리에 가을이 왔다.

봄은 늦게 오고 가을은 일찍 온다는 파주. 그곳에서도 군사분계선에 가까운 이곳 법흥리는 유독 더 춥다,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낮은 대한민국 여느 지역처럼 늦더위가 기승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에 예술인 마을이 있다. 초기보다 현재는 많은 예술인이 떠났기에 예술인 마을이 어울리지 않는 소리도 종종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친구들이 많이 와주었고 첫날 오픈하자마자 전시 그림을 완판했다. 그림값 이십오만 원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금액으로 그림이 모두 팔렸다. 갤러리 사정도 있고 여러 저작권도 있어서 그림값을 모두 올렸다. 예전 내 작업실 월세를 평생의 그림값으로 정했기에 25만 원을 제외한 금액은 모두 기부할 예정이다.

전시가 시작되기 전, 지인 두 사람이 각각 한 점씩 그림을 사겠다고 했다. 아마 팔리지 않을 것을 예상했나 보다. 내 예상도 그랬다. 

친구에게 멀리 보내기 싫은 그림 한 점을 부탁했고 모두 세 개의 판매 완료 스티커를 붙이고 전시를 시작했다. 전시를 오픈하고 도슨트가 시작되기 직전 그러니까 전시 시작 30분 만에 그림 판매가 종료되었다. 

짧은 순간 그림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을 보았다. 그들 중 누군가는 그림보다 내 전시의 성공을 돕고 싶었을 테지만 내가 눈여겨본 사람들은 그림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나는 그 눈빛을 알아보았을까? 그 눈빛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가능했을까? 

사실 나는 그리는 행위는 좋지만, 그림 감상을 즐기지 않는다. 그림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아마 직업으로 예술을 하는 이들이 경험하는 ‘업이 된 슬픔’ 때문일지도. 내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그림 그리는 마음만 알았지 그림을 원하는 마음은 몰랐던 거다. 그림이 어떤 위안을 준다면 좋겠다.

요즘 이곳저곳에서 힘들다고 한다.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거라고 말한다. 나는 앞날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림 그리는 동안 평온했던 내 마음처럼 그들도 평온하길, 그림 덕분이라고 여겨주길.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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