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밀양에서 농사짓다

밀양에서 농사짓는 곽빛나 씨 사진제공 곽빛나

 

나는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두 분도 밀양에서 태어나 자랐고, 나도 계속 밀양에서 자랐다. 대학교 다닐 적에 잠깐 다른 도시로 간 적 있었지만, 모든 이가 그러하듯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흘러 다시 밀양으로 돌아왔다.  

어릴 적에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교가 시키는 대로 국가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면 부자가 되고 좋은 삶을 살아가리라 확신했었다. 재능도 없는, 잘 못하는 공부로 시름하며 4년제 대학을 입학할 때도 누구보다 나는 잘 살 거라 생각했다. 

 

농부가 되다 

학교와 기숙사만 오고가는 평범한 나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함께 한국에도 후쿠시마와 같은 핵발전소가 21기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핵발전소 사고로 삶터를 잃은 사람들, 그리고 수십만 년을 감당해야할 방사능을 보면서 좋은 삶을 사는 건 핵발전소가 없는 세상이여야 가능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공과도 관계없는 환경연합 활동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2년 1월 16일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이 송전탑 문제로 분신한다.  

나는 그렇게 송전탑 문제로 다시 밀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핵발전소는 사고만이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나는 처음으로 전기를 쓰는 일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밀양송전탑 싸움을 밀양어르신들과 함께하면서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의 세상은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죽이고 더 많이 사재껴야 잘사는 삶이라고 여긴다. 활동가로 사는 삶도 밤늦게까지 일하고 더 멀리 달리고 컴퓨터 앞에서 사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적게 쓰고 적게 죽이면서 전기를 적게 쓰는 방법은 몸으로 일하고 자연에 감사하는 농부가 되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보다 촌에서 자란 내가 더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부모님이 농부지만 오롯이 혼자서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작년 한해 참 실수투성이였다. 

 

농사 2년차에 들어서다  

지난해 수확한 당근과 브로콜리 사진제공 곽빛나
 

가장 먼저 농사를 지으려면 땅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없는 나는 땅을 살 수가 없었다. 농촌의 땅은 서울보다 싸지만 도시처럼 10평, 30평 내놓지 않는다. 몇 백 평을 사야하니 결코 싸지 않다. 그렇다고 요즘 흔히들 집 구하는 방법처럼 어플에서 쉽게 땅을 찾아보거나 빌릴 수 있지도 않다. 나는 운이 좋게 밀양송전탑의 인연으로 단장면에 약 200평 하우스를 2동 빌렸다. 수중에 100만 원이 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농사를 짓는 동안 돈이 생기려면 5~6개월의 작물이 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동안 먹고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물론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 살만큼의 돈이 벌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관행농으로 여러 동의 하우스에 일꾼을 들여다 쓰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 ‘슈바’라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필요한 만큼만 벌고 적게 쓰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비닐을 안 쓰려면 농사꾼에게 몇 평이 적당할까?

사람이 사는 데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적당한 노동은 몇 시간일까? 

택배와 포장을 최소화한 판매는 어떻게 해야 할까? 

농촌에서 친구를 어떻게 만들까? 

기후변화로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하나씩 해보고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내 곁에는 함께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있다. 서로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는데, 젊은 친구들도 곁에서 함께 농사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려면 내가 농사꾼으로 사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불안정하다. 그러던 와중에 영화 『리틀포레스트』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리틀포레스트』를 보고 많은 청년들이 농촌에서도 삶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기를 바랐다. 

 

판타지가 주는 상처가 있다

 『리틀포레스트』를 보고 많은 지인들이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덧붙이는 말은 ‘네가 화낼 것 같더라’는 말이었다. 그 말대로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화가 났었다. 도시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시사람들이 바라는 농촌이 어떤 것인지 그대로 드러났다. 그 욕망 안에는 농촌을 힐링의 용도로만 사용하고 버리고 있다. 내 우려처럼 ‘힐링 판타지’ 영화는 칭찬일색으로 소비만 되었다. 

영화가 현실과 너무 달라서 박탈감이 든다는 나의 평은 농촌을 있는 그대로 다큐멘터리로 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언제든 지치고 힘들면 갈 수 있는 곳, 배고프지 않고 관계로 힘들지 않은 그런 대피소가 있어”가 아니라 ‘한국이 바라는 가치랑 다르게 느리고, 다른 방식으로 힘들지만 그런 삶도 나쁘지 않아’라며 지금과 다른 삶, 다른 방식을 청년들에게 제안하는 영화이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에서 삶이 실패하거나 나이가 들어서 농촌에 가야지 하는 사람들에게 ‘농촌은 그런 공간이 아니다. 농촌은 도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착취당해왔고 도시가 망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는 곳이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농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름다운 농촌은 그 곳에 사는 예쁘고 맑은 얼굴의 청년이 아니라 계절마다 자라고 익어가는 들녘에 있다. 그 들녘은 영화처럼 씨를 심고 열매를 먹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아주 많은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없는 『리틀포레스트』는 농사짓고 먹는 것이 한없이 쉬워만 보인다. 왜 엠마스톤이 연기한 빌리진킹의 주근깨 얼굴과 같은 묘사가 리틀포레스트에서는 없었을까.  

이상한 건 또 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한 주인공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계속 농촌에서만 살았다는 은숙이라는 캐릭터도 서울말을 쓴다. 예쁘고 아름다운 판타지 속에서는 사투리가 어울리지 않나 보다.  

한국농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을 담는 것이다. 한해 먹을 고추장, 된장은 영화내용에 없지만 일본식 요리가 주요장면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이 영화는 일상이아니라 여행처럼 농촌을 보기 때문에 그런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체험도 아닌 딱 별미를 맛보는 힐링 장소 정도로 말이다.  

때를 놓치면 한해 농사는 망한다. 나도 주변에서 감자 싹은 구해놓았느냐, 고추모종이 필요하냐, 등의 때에 맞는 농사 작기를 이야기해주는 어른들이 곁에 있어서 무난히 넘겼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풀매라는 동네 어른들의 잔소리가 아니라 농촌에는 어른들과 결혼, 학업 외에 나눌 이야기 거리가 있다. 꼰대가 아니라 배움을 알려주는 공간이 도시보다 농촌이 어쩌면 더 나을 수 있다. 

 

다른 가치로 삶을 살다 

슈바와 함께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곽빛나 씨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곽빛나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정말로 『리틀포레스트』를 보고 농촌에서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는가? 아니면 도시에서 사는 게 정말 힘들고 지치면 농촌이나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도시에서 삶이 실패해서 나는 농사를 지으러 온 게 아니다. 배가 고파서 시골 정을 그리면서 농사를 지으러 온 것도 아니다. 잠깐 힐링하려고 몇 달만 있으려고 농사짓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말하는 정상의 삶에서 벗어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덜 죽이고 싶었다. 다른 가치로 삶을 살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반응이다. 농사는 성스럽고 어렵고 위대한 것이 아니다. 이분화해서 농촌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 곽빛나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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