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환경[영화 속 환경 이야기] 인간 자격에 대한 질문, 영화 『기생수』

“인간의 수가 반으로 줄면 불타는 숲도 반으로 줄까? 인간의 수가 100분의 1로 줄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로 줄까?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두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영화 『기생수(奇生獸)』는 이렇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화두를 던지며 시작한다. 영화의 원작은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의 동명 만화다. 20~30년 전인 1990년대 초반 처음 월간지에 연재됐지만, 세월이 흘러도 원작에 내재된 메시지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하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원작은 2014년 1편, 2015년 2편 영화로 개봉됐다. 전체적으로 볼 때 1편보다 2편이 원작 느낌을 잘 살렸다고 할까(원작을 안 봤다면 1편부터 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점령해 인간을 포식 대상으로 삼는 과정에서 반기생수 주인공과의 사투를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 평범한 고등학생 신이치는 한밤중 침입하는 기생생물에게서 다행히 뇌를 빼앗기지 않았지만, 대신 오른 팔에 기생 생물이 자리를 잡게 된다. 그래서 ‘미기(오른쪽이)’라 불리는 이 기생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신이치와 공생하게 되고, 이들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뇌를 점령한 다른 기생수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혈투를 벌이게 된다.  

기생수가 인간의 뇌를 점령하다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을 조정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작 『사피엔스』에서 현생 인류가 다른 원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결정적 이유를 ‘거짓말 할 수 있는 능력’, 즉 허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으로 봤다. 이는 뇌가 발달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뇌는 인간이 사실상 지구를 지배하게 하는 만든 결정적 동력이었다. 영화 『기생수』에서 기생수는 자신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해 한 도시의 시장을 당선시키는 등 자신만의 콜로니를 형성해 나간다. 안정적인 먹이를 공급받으면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영화에서 기생수 미기는 단순히 전투에 능한 것만 아니다. 원작에서 미기는 “개에 기생한 놈은 개만 먹고 인간에 기생한 놈은 인간만 먹는다”며 “동족을 잡아먹는 신종 생물인 셈”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기생수가 천적이 없는 지구에서 인간의 천적으로 등장했다는 얘기다. 영화 초반 미기는 “인간은 거의 모든 종류의 생물을 잡아먹지만, 내 동족들이 먹는 것은 고작 한두 종”이라며 “악마, 그것에 가장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이야”라고 말한다. 이랬던 미기는 후반부로 가면서 주인공 신이치와의 교감과 지식 습득, 내적 성찰을 통해 생명과 인간의 의미를 설명한다. 미기는 사실상 영화의 중요 화자이자 깨달음의 존재인 셈이다.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영화 『기생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구라는 행성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약 300~350만 년 전 직립보행과 간단한 도구를 사용한 최초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연한 이후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라고 불리는 원인들이 출현했다. 이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 유럽, 중동으로 퍼져가던 약 7만4천 년 전 이들은 괴멸적 상황에 처했다. 바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쪽에 위치한 토바 화산이 폭발했기 때문인데,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과거 200만 년 동안 가장 큰 화산, 그래서 슈퍼 화산이라 불리는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토바 화산 폭발은 제주도 크기만 한 칼데라 호수를 남겼는데, 당시 약 9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남아프리카 해안에서도 화산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화산 분출물이 1000 세제곱킬로미터를 넘었는데, 이렇게 발생된 먼지와 화산재가 햇빛을 차단해 지구 평균 온도가 4~5도 가량 낮췄다고 한다(『경향신문』, “지구 전 생명체 위협한 ‘토바 화산’… 인류는 견뎠고 살아남았다” 2018년 3월 18일 기사).  

 이 때문에 식물 성장이 안 돼, 당시 인구수는 불과 몇 천 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농경이 발명되던 약 1만2천 ~ 1만 년 전 당시 지구 인구는 100만 명 수준이었다. 최초의 거대 문명이 발생하던 시기인 약 5500년 전 세계 인구는 500만 명이었고, 산업혁명이 발생했던 150년 전에는 약 10억 명이었다. 인류가 10억 명이 도달하기까지 5만 년이 걸렸지만, 최근 10억 명 증가에는 단 10년이 채 걸리지 않은 상황이다. 그에 따라 인류는 시간당 18TW(1테라와트=100만 메가와트)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고, 연간 9조 세제곱미터의 물과 식량 생산을 위해 육지 면적의 40퍼센트를 점령하고 있다(가이아 빈츠, 『인류세의 모험』 2014. 곰 출판).  

 최근 전 세계 인구는 75억 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인간을 제외한 지구 역사상 어떤 종도 이 만큼의 생물 양을 가진 적 없다고 한다. 그에 따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은 2018년 3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산업혁명까지 멸종된 생물 숫자보다 산업혁명 이후가 더 많은 상황”이라며 “1950년대 이후부터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됐다”고 말할 정도다. 

 

인류세 시대 

이렇게 지구 사용의 가속화에 따라 지질시대(Geological Time)를 새롭게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16년 1월 12개국 24명의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사이언스(Scienec)』지에 논문을 발표해, 인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 구분을 공식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질시대는 대(代 era), 기(紀 period), 세(世 epoch) 순으로 구분하는데, 현재 인류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에 살고 있다.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이후 현생 인류의 정주와 번성이 홀로세 시작의 중요 기준이었다.  

인류세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199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루천(Paul Crutzen)이라는 네덜란드 학자다. 그는 2002년 『네이처(Nature)』를 통해 이와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면 크루천이나 전문가들이 현재 우리가 홀로세기를 지나 인류세에 돌입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생물종 멸종과 야생동물 영역 격감, 산업혁명 이후 증가한 이산화탄소, 한 해 3억 세제곱미터 생산되는 플라스틱, 20세기 화학비료 사용에 따른 토양 내 질소, 인 함량 증가, 미세먼지 증가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여기에 핵실험 여파로 생성된 방사능 물질의 퇴적 역시 중요 근거로 보고 있다. 미국, 소련, 프랑스 등은 1950~1960년 태평양, 중앙아시아 등에서 핵실험을 집중했는데, 이 때문에 인공 방사성 물질이 땅 속에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실제 그린란드에서 채취한 빙하 안에 방사능 낙진 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방사능 낙진이 퇴적된 시점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방사능 물질 확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영화 『기생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서 최강의 전투 기생수를 꼽으라면 ‘고토’를 빼놓기 어렵다. 인간의 뇌를 점령한 기생수는 육체적으로 보통 사람을 능가한다. 고토는 이런 기생수가 뇌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 등 모두 5마리가 자리 잡은 존재다. 전투 중에는 팔이 방패로 변해 총알을 막고 두 다리를 변형시켜 달리는 차량을 따라잡는 능력을 보여준다. 주인공 신이치는 미기마저 고토에서 흡수당한 상황에서 겨우 쓰러트릴 수 있었다. 결정적 이유가 바로 방사능물질이었다.  

1990년대 원작에서는 신이치가 산업 폐기물 불법 소각재에서 빼낸 철근(아마도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 물질이 묻어 있는)에 찔려 고토를 제압했다는 설정이었지만, 2015년 2편에서는 소각장 내 철근으로 찌른 설정으로 변경됐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일본정부는 방사성 기준을 크게 완화시켜 일반 소각장에서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했고, 영화 『기생수』는 이런 시대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자격 

영화 『기생수』에서 주인공 신이치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강아지가 죽어 있었어. 분명 본적도, 알지도 않은 강아지를 보면서 왜 슬퍼지는 걸까?”라고 자문한다. 이때 미기는 “그야 인간은 다른 종의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생물이니까. 그래서 인간은 자신과 다른 생물과 공존할 수 있는 거야. 인간만이 갖고 있는 사랑스런 특징이지. 때로는 거침없이 도움의 손길도 내주잖아”라고 말한다. 원작과 영화에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이 내용이 아닐까. 

우리나라 동물단체 중 하나인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자신이 동물권, 동물복지 운동을 벌이는 이유를 한마디로 ‘아주 상식적인 연민’이라 설명한다. 타인과 타 생명체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여섯 번째 멸종이 진행되고, 인류세가 도래한 현재 우리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 아닐까. 영화 『기생수』가 처음에 던진 화두처럼, 모두의 생명의 지키기 위해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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