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주로, 아파트에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생활을 터전을 옮긴 뒤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흙과 풀과 나무와 조금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새로운 환경에 무심히 지냈다. 그 나무가 그 나무 같고, 이 나무가 저 나무 같았다. 나무들은 그렇게 서로서로 닮았으나 제 각기 다른 생애를 지니고 있는데, 역시 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건사를 해주어야 한다. 헌데 그러기엔 나는 너무나 게으른 사람이었다. 반면, 남편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우리집 진돗개를 살뜰하게 돌보면서도 그 개가 말을 걸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이 꽃과 나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줄 것 같아.” 그는 특별히 섬세하거나 다정한 부류의 남자가 아니지만, 나무의 모양과 성질, 꽃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사람을 대하듯 한다. 그래서 나와 나의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이 상대하는 꽃과 나무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애쓴다. 친구들이 가장 눈을 반짝이는 대목은 낯선 나무들의 이름이다. 이를 테면, 때죽나무와 같은 것. “중이 떼로 모여 있는 것 같아서 떼중나무라고 하기도 하고, 독성이 있어서 잎을 먹으면 떼로 죽는다고 해서 떼죽나무라고도 한다는데,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고.” 대부분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고’로 끝나는 시시한 이야기들은 우리 삶에 있을 법한 어떤 경우의 수들을 늘 포함하는 탓에 기분 좋게 키득거릴 소재가 되어준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숲 읽어주는 남자』는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는데, 우선 ‘산책이 즐거워지는 자연 이야기’라는 부제부터가 더할 나위가 없다. 지난 봄, 조금 이르게 피어난 벚꽃들로 온 동네가 화사함으로 빛나던 때, 우리 부부는 조금씩 다른 수형과 꽃 색깔, 주변 환경과의 각기 다른 어울림 같은 것을 따져보느라 산책의 범위가 매일 조금씩 넓어졌다. 주로 남편이 이야기를 하고 내가 듣는 쪽이었는데, 그러한 종류의 산책은 나무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생활과 문화 혹은 역사에 관한 것들로도 쉽게 번져나갔다.
우리 부부의 잡담이야 쉽게 잊히고 말았지만, 숲 해설가이자 저자의 벚나무 산책은 이런 식이다. “남산에 오르는 길가에 벚나무가 늘어섰다. 줄기가 꽤 굵은 것으로 보아 심은 지 오래된 벚나무다. 벚나무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지만, 이 정도로 굵어지려면 100년 가까이 됐음 직하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 통치할 때 남산에 신사를 세웠는데, 아마도 그 무렵에 심은 게 아닌가 싶다. 나무를 안아본다. 한 아름이 훨씬 넘는다. 나무를 안으면 나무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지를 동네라고 한다면, 내일의 동네는 오늘의 동네보다 조금 더 커져도 좋을 텐데, 그럴 때 그 산책을 가장 열렬하게 응원하는 게 바로 나무라는 건 너무나 명백하다.
요즘 제주도는 곳곳마다 귤꽃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낮은 돌담을 휘감은 그 향기는 매우 강렬한 편이다. 향이 강해서 그런가 남편은 귤꽃 향을 썩 내켜하지 않는 편인데, 반면 나는 애써 그 향이 진동하는 동네를 찾아 나선다. 향이 동네에서 동네로 타고 흐르는 탓에 산책의 범위는 밑도 끝도 없이 확장되는데, 그것이 새로운 산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곧잘 탐험에 가까운 산책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이왕 그렇게 일이 커진 김에 저자의 제안에 따라 보기로 한다. “나무가 많은 길에서 잠깐 멈춰 상상해보자. 나무들 나이를 유추하고 5년 전, 10년 전, 20년 전의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반대로 10년 뒤, 30년 뒤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도 숲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 단언컨대, 숲을 보는 또 다른 재미일 뿐만 아니라, 세계 혹은 나의 생애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되어 줄 것이다. 진짜로 그렇게 따라해 보아서 하는 말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서울에서 제주로, 아파트에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생활을 터전을 옮긴 뒤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흙과 풀과 나무와 조금 더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새로운 환경에 무심히 지냈다. 그 나무가 그 나무 같고, 이 나무가 저 나무 같았다. 나무들은 그렇게 서로서로 닮았으나 제 각기 다른 생애를 지니고 있는데, 역시 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건사를 해주어야 한다. 헌데 그러기엔 나는 너무나 게으른 사람이었다. 반면, 남편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우리집 진돗개를 살뜰하게 돌보면서도 그 개가 말을 걸어줄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이 꽃과 나무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줄 것 같아.” 그는 특별히 섬세하거나 다정한 부류의 남자가 아니지만, 나무의 모양과 성질, 꽃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사람을 대하듯 한다. 그래서 나와 나의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이 상대하는 꽃과 나무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애쓴다. 친구들이 가장 눈을 반짝이는 대목은 낯선 나무들의 이름이다. 이를 테면, 때죽나무와 같은 것. “중이 떼로 모여 있는 것 같아서 떼중나무라고 하기도 하고, 독성이 있어서 잎을 먹으면 떼로 죽는다고 해서 떼죽나무라고도 한다는데,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고.” 대부분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고’로 끝나는 시시한 이야기들은 우리 삶에 있을 법한 어떤 경우의 수들을 늘 포함하는 탓에 기분 좋게 키득거릴 소재가 되어준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숲 읽어주는 남자』는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는데, 우선 ‘산책이 즐거워지는 자연 이야기’라는 부제부터가 더할 나위가 없다. 지난 봄, 조금 이르게 피어난 벚꽃들로 온 동네가 화사함으로 빛나던 때, 우리 부부는 조금씩 다른 수형과 꽃 색깔, 주변 환경과의 각기 다른 어울림 같은 것을 따져보느라 산책의 범위가 매일 조금씩 넓어졌다. 주로 남편이 이야기를 하고 내가 듣는 쪽이었는데, 그러한 종류의 산책은 나무에 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생활과 문화 혹은 역사에 관한 것들로도 쉽게 번져나갔다.
우리 부부의 잡담이야 쉽게 잊히고 말았지만, 숲 해설가이자 저자의 벚나무 산책은 이런 식이다. “남산에 오르는 길가에 벚나무가 늘어섰다. 줄기가 꽤 굵은 것으로 보아 심은 지 오래된 벚나무다. 벚나무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지만, 이 정도로 굵어지려면 100년 가까이 됐음 직하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 통치할 때 남산에 신사를 세웠는데, 아마도 그 무렵에 심은 게 아닌가 싶다. 나무를 안아본다. 한 아름이 훨씬 넘는다. 나무를 안으면 나무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지를 동네라고 한다면, 내일의 동네는 오늘의 동네보다 조금 더 커져도 좋을 텐데, 그럴 때 그 산책을 가장 열렬하게 응원하는 게 바로 나무라는 건 너무나 명백하다.
요즘 제주도는 곳곳마다 귤꽃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낮은 돌담을 휘감은 그 향기는 매우 강렬한 편이다. 향이 강해서 그런가 남편은 귤꽃 향을 썩 내켜하지 않는 편인데, 반면 나는 애써 그 향이 진동하는 동네를 찾아 나선다. 향이 동네에서 동네로 타고 흐르는 탓에 산책의 범위는 밑도 끝도 없이 확장되는데, 그것이 새로운 산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곧잘 탐험에 가까운 산책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이왕 그렇게 일이 커진 김에 저자의 제안에 따라 보기로 한다. “나무가 많은 길에서 잠깐 멈춰 상상해보자. 나무들 나이를 유추하고 5년 전, 10년 전, 20년 전의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반대로 10년 뒤, 30년 뒤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도 숲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다.” 단언컨대, 숲을 보는 또 다른 재미일 뿐만 아니라, 세계 혹은 나의 생애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되어 줄 것이다. 진짜로 그렇게 따라해 보아서 하는 말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