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살대를 위하여 100] 짐과 날개

『말레피센트(Maleficent, 2014)』. 요정과 트롤이 나오는 이 판타지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는 ‘즐겨주마!’가 마땅할 것이지만 요정 말레피센트가 화면에 처음 등장한 순간 다큐의 눈으로 보게 되고 말았다. 커다란 독수리 날개를 등에 단 깜찍한 요정 소녀에게 받은 첫인상은 ‘그 날개 너무 무겁겠다!’였다. 그 큰 날개를 등에 달고 있다면 날지 않을 때 그 날개는 필시 사람 하나를 업고 있는 무게로 등을 짓누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상은 계속 돌아갔지만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짐일지 날개일지 모를 것들에 대하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보고서(OECD 국가의 사망원인별 사망률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 자살 사망률은 2002~2012년 사이 28.2퍼센트 증가해 OECD 국가 중 1위다. 게다가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청소년 자살률은 매년 증가한다. 노인 자살률 또한 세계 최고다. 출산율이 높을 리 없다. 싱가포르 등 4개 인구 소국을 제외하면 세계 최저 출산 국가다. 최고의 기대에 놓였지만 평균 이하 경쟁력을 가진 자신에게 절망한 어린 영혼들과 불편한 몸과 빈 지갑의 노인들이 자신을 가족의 짐으로 여기는 것이다. 짐이 된 삶을 끝내려는 유혹에 약할 수밖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위원회(9.19)를 열고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지정했다. 유엔의 해양법협약과 우리나라의 해양환경관리법은 온배수를 해양오염의 하나로 규정해왔다. 바다를 해치는 열폐기물을 신재생에너지로 둔갑시키는 이유는 국내 발전회사들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이하 RPS) 의무이행량을 못 채우고 올해에만 630억 원이 넘는 벌금을 낼 상황이고 의무공급량이 매년 느는 만큼 벌금도 매년 점점 더 내게 생겼기 때문이다.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위한 제도가 발전사들의 짐이니 제도적 사기로 그 짐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2026년 세계 역사상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퍼센트 이상)가 된 나라에 합계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사회라면 생산가능인구의 부양 부담이 극대화된다. 아이와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여야 청장년들의 부담도 준다. 교육과 복지에 대한 국가정책이 사실은 최선의 경제정책인 셈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석유피크와 핵발전의 위험성은 화석연료시대가 지났음을 웅변한다.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가 최선의 미래 에너지정책이다. 고교까지 무상교육 공약 파기, 기초노령연금 축소 등 복지정책 포기, 온배수가 신재생에너지라 우기는 에너지정책의 분열증적 왜곡은 미래의 날개를 현실의 짐으로 여기는 국가의 실패이다.
 
2015 예산에서 노동복지예산이 30퍼센트를 넘는다지만 위기의 현실을 구할 정도의 수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자 감세로 빠진 복지비용을 서민 증세로 메꿀 수 없으니 더 이상의 복지정책 비용 마련이 힘든 탓이다. 2015 예산에서 신재생에너지 예산은 작년보다 6퍼센트 가까이 준 8000여억 원에 불과하다. 말레피센트가 권력욕에 빠진 인간에게 속아 날개를 뺏겼을 때 나라를 구할 힘도 빼앗겼다. 아이들과 노인들이 자신을 짐으로 여기게 만들고, 발전사들이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의무를 짐으로 여기게 만드는 국가정책은 미래의 날개를 뽑는 행정이다.
 
지금 우리 등을 누르는 하중은 짐이 아니라 날개의 무게다. 우리 사회는 더 크고 튼튼한 날개가 필요하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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