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 선거가 지난 11월 2일 끝났다. 대부분의 관심은 공화당의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와 민주당 상원의원 존 케리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뉴스미디어의 말을 빌리자면 잔혹한 공방전이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었지만, 그 외에 전부 네 가지 선거를 치렀다. 미국의 선거제도는 상당히 복잡하다.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상원과 하원, 주지사 및 지방자치단체의 관료, 입법, 사법부 책임자를 선거로 뽑고, 중요 정책의제에 대해서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 복잡한 선거제도를 가장 단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것이 투표용지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한 투표에서 20~30개의 항목에 답해야 한다. 이번 미국 대선과 다른 선거들이 한반도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부시는 투표자 비율로는 51퍼센트 대 48퍼센트, 선거인단 득표는 286 대 252로 승리했다. 또한 그의 공화당 역시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여러 가지 국내의 난제들─사회보장제도개혁, 정보체제개혁, 세제개혁, 정부재정적자─ 등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국가를 갈라놓은 선거의 여파를 수습하고 통합하는 어려운 작업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국내정치여건 속에서 대외관계에 큰 저항이나 갈등을 가져올 급전환의 가능성은 적다. 현재 확보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연속적인 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대선보다 더 중요한 지방선거, 정책선거를 주시해야
총득표율과 선거인단수의 획득이 정비례하지 않았던 2000년 대선의 경우를 들어 미국 대선제도가 건국 초기 느슨한 연방을 국가로 유지하기 위한 미국 건설자들의 고심과 의도가 21세기 현재까지 살아남은 낡은 시스템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반면, 지방선거에는 미국의 제도와 참여를 눈여겨 볼 만한 구석이 있다. 미국은 단체장은 물론 주정부 고위관리, 시군의 검찰총장, 경찰총장, 재무관, 지방대법관까지 지방선거로 뽑는다. 심지어 주립대학 이사까지 선거하는 주도 있다. 이런 식의 지방선거제도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들이 결정하는 참여의 확대를 제도화한 것으로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인 정치, 행정구조를 가진 한국이 연구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또한 미국 지방선거제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민들이 중요한 사회의제에 대해 투표행위를 통해 의사를 결집하고 이것이 정책화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 동성 결혼, 토지이용, 도박장 설치 등등 국민의 복지 및 도덕적 문제에 관계되는 다양한 의제를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심각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인간 미발달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 ‘동성간의 결혼 법적 인정’ 등이었다. 줄기세포 연구는 카톨릭교와 다른 종교단체가 반대했고, 부시의 연방정부는 이 연구에 정부예산을 지급하지 않는 방침이었으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투표자의 59퍼센트가 주정부의 30억달러 연구자금지원을 투표로써 승인했다.
환경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권위주의적으로 서열화된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중앙이 막대한 정책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정책시스템 속에서 지방은 중앙의 지원에 목을 매게 되고 정책결정의 자주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더 곤란한 점은 중앙의 반환경적 개발계획에 대해 ‘아니오’라고 즉답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주요 개발이슈를 포함한 지역의 문제를 정책 투표로 판단하고 정책화하는 지방자치제도의 발달은 단기적인 혼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환경과 생활에 긍정적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미국 선거에서 대선에만 주목하는 것은 올바른 관심이라고 할 순 없다. 지역의 운명을 지역공동체가 결정하는 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성의 문제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두고 ‘케리가 됐어야 더 좋았네, 아니 부시가 차라리 더 좋네’ 하는 식의 발상과 발언이 국회를 비롯해 나라 곳곳에서 떠돌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외교정책, 특히 북핵문제를 둘러싼 정책과 접근법의 차이를 두고 나오는 말들이다. 미국뿐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대통령이 바뀌면 행정부가 바뀌고 대외, 국내 정책의 변화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뿐이다. 만일 한국이 부시의 재선 때문에 새롭게 머리를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원칙에 근거한 장기적 전략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행태일 뿐이다. 실상 부시의 보수정책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1981년부터 시작된 미국정치의 긴 흐름의 연속선상에 놓인 것이다.
미국 공화당 안에는 자유적 공화당 인사가 있고 민주당 안에는 보수적 민주당 인사가 있다. 때문에 한국이 자국의 이익을 증진하려면 단지 부시 행정부만을 상대로 외교적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양당의 핵심적 인물들을 고루 설득하는 다변화된 외교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목격되는 단절된 점진주의(Disjointed Incrementalism) 또는 그럭저럭 해나가기(Muddling Through)로는 국익을 증진시킬 수 없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며, 우리 운명은 우리가 개척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선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한반도의 입장, 시민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부시 재선이라는 ‘벌어진 현실’에 대응할 구체적 행동을 준비해야 한다.
임길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미국 미시간주립대 및 한국 KDI 국제정책대학원 석좌교수
부시는 투표자 비율로는 51퍼센트 대 48퍼센트, 선거인단 득표는 286 대 252로 승리했다. 또한 그의 공화당 역시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여러 가지 국내의 난제들─사회보장제도개혁, 정보체제개혁, 세제개혁, 정부재정적자─ 등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국가를 갈라놓은 선거의 여파를 수습하고 통합하는 어려운 작업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국내정치여건 속에서 대외관계에 큰 저항이나 갈등을 가져올 급전환의 가능성은 적다. 현재 확보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연속적인 정책을 추구할 것이다.
대선보다 더 중요한 지방선거, 정책선거를 주시해야
총득표율과 선거인단수의 획득이 정비례하지 않았던 2000년 대선의 경우를 들어 미국 대선제도가 건국 초기 느슨한 연방을 국가로 유지하기 위한 미국 건설자들의 고심과 의도가 21세기 현재까지 살아남은 낡은 시스템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반면, 지방선거에는 미국의 제도와 참여를 눈여겨 볼 만한 구석이 있다. 미국은 단체장은 물론 주정부 고위관리, 시군의 검찰총장, 경찰총장, 재무관, 지방대법관까지 지방선거로 뽑는다. 심지어 주립대학 이사까지 선거하는 주도 있다. 이런 식의 지방선거제도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들이 결정하는 참여의 확대를 제도화한 것으로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인 정치, 행정구조를 가진 한국이 연구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또한 미국 지방선거제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민들이 중요한 사회의제에 대해 투표행위를 통해 의사를 결집하고 이것이 정책화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 동성 결혼, 토지이용, 도박장 설치 등등 국민의 복지 및 도덕적 문제에 관계되는 다양한 의제를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심각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인간 미발달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 ‘동성간의 결혼 법적 인정’ 등이었다. 줄기세포 연구는 카톨릭교와 다른 종교단체가 반대했고, 부시의 연방정부는 이 연구에 정부예산을 지급하지 않는 방침이었으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투표자의 59퍼센트가 주정부의 30억달러 연구자금지원을 투표로써 승인했다.
환경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권위주의적으로 서열화된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중앙이 막대한 정책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정책시스템 속에서 지방은 중앙의 지원에 목을 매게 되고 정책결정의 자주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더 곤란한 점은 중앙의 반환경적 개발계획에 대해 ‘아니오’라고 즉답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주요 개발이슈를 포함한 지역의 문제를 정책 투표로 판단하고 정책화하는 지방자치제도의 발달은 단기적인 혼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환경과 생활에 긍정적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미국 선거에서 대선에만 주목하는 것은 올바른 관심이라고 할 순 없다. 지역의 운명을 지역공동체가 결정하는 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성의 문제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두고 ‘케리가 됐어야 더 좋았네, 아니 부시가 차라리 더 좋네’ 하는 식의 발상과 발언이 국회를 비롯해 나라 곳곳에서 떠돌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외교정책, 특히 북핵문제를 둘러싼 정책과 접근법의 차이를 두고 나오는 말들이다. 미국뿐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대통령이 바뀌면 행정부가 바뀌고 대외, 국내 정책의 변화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뿐이다. 만일 한국이 부시의 재선 때문에 새롭게 머리를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원칙에 근거한 장기적 전략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행태일 뿐이다. 실상 부시의 보수정책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1981년부터 시작된 미국정치의 긴 흐름의 연속선상에 놓인 것이다.
미국 공화당 안에는 자유적 공화당 인사가 있고 민주당 안에는 보수적 민주당 인사가 있다. 때문에 한국이 자국의 이익을 증진하려면 단지 부시 행정부만을 상대로 외교적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양당의 핵심적 인물들을 고루 설득하는 다변화된 외교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목격되는 단절된 점진주의(Disjointed Incrementalism) 또는 그럭저럭 해나가기(Muddling Through)로는 국익을 증진시킬 수 없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며, 우리 운명은 우리가 개척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선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한반도의 입장, 시민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부시 재선이라는 ‘벌어진 현실’에 대응할 구체적 행동을 준비해야 한다.
임길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미국 미시간주립대 및 한국 KDI 국제정책대학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