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몸과 마음의 가난함으로 풍요한 삶을 일구는 시인 이선관


시인은 모름지기 생태론자라는 말을 나는 고쳐 쓴다.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시인이다라고. 생명에 대한 사랑 없이, 그 근원자리 모태인 자연에 대한 외경과 사랑 없이 어찌 생태운동, 환경운동이 있을 수 있으며 생명을, 환경을 사랑하면서 그 외경, 그 아름다움을 어찌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생명을, 자연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절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노래하는 자가 아니다. 생명을 사랑하기에 생명 자체의 존엄함, 그 신령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에 생명에 대한 훼손, 그 근원인 어머니 자연과 환경생태계에 대한 파괴와 유린에 대해 피맺힌 절규로, 통곡으로, 온몸으로 맞서는 자이기도 하다. 

여기 한사람의 시인이 있다. 아니 한사람의 생태운동가가 있다. 일찍이 이 땅에 환경시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70년대 중반부터 일련의 환경시를 통해 개발독재 아래 죽어가는 강과 바다를, 황폐화되고 있는 조국의 환경을 온몸으로 고발하고 증언해 온 사람, 시만 써서 밥 먹고사는 놈은 필시 사기꾼임에 틀림없다는 평소의 내 생각에 단 한사람의 예외인 사람, 이선관(李善寬) 시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바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난다./ 이따이 이따이// 설익은 과일은/ 우박처럼 떨어져 내린다./ 이따이 이따이// 새벽잠을 설친 시민들의/ 눈꺼풀은 아직 열리지 않는다./ 이따이 이따이// 비에 젖은 현수막은/ 바람을 마시며 춤춘다/ 이따이 이따이// 아아/ 바다의 유언/ 이따이 이따이. - 「毒水帶 1」 전문, 1975 


우리나라 환경시의 효시(嚆矢)라고 해도 좋을 이 시 「毒水帶 1」은 75년에 발표되었다. 칠십년대 중반이라면 서슬 푸른 유신독재의 조국 근대화라는 거대한 명제 앞에서 아무도 감히 환경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수조차 없었던 때라 할 수 있다.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며 투쟁하던 이들도 유신독재에 맞서기 위한 민주화 운동에만 매달려 있었을 뿐이고 그외의 대다수 국민들은 개발독재에 의해 밀어붙여지는 이른바 근대화 정책을 통해 풍요의 80년대 그 장미빛 환상에 잠겨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 풍요의 꿈, 장미빛 환상은 조국 근대화 정책의 상징이던 수출자유지역단지가 있는 마산의 어린교(橋) 아래에서부터 죽임의 폐수가 되어 흘러가버린 것이다.


어린교(橋) 아래로/ 빨간물이 내려간다./ 이따이 이따이// 어린교 아래로/ 주황물이 내려간다./ 이따이 이따이// 어린교 아래로/ 노랑물이 내려간다./ 이따이 이따이//  (중략)  어린교 아래로/ 이따이 이따이가 내려간다./ 이따이 이따이//  아아/ 언약의 무지개......!/ 이따이 이따이.  –「毒水帶 2」 부분 


그러나 그 죽임의 독극물이 그냥 흘러가버린 것은 아니다. 남쪽 바다, 푸른 물결 춤추던 가고파의 그 해맑던 바다, 그 그리운 바다가 있던 마산에는 이제 바다가 없다. 어린교 아래로 흐르던 죽임의 강물을 통해 환경생태계의 파괴와 훼손에 바탕한 공업화 중심의 경제성장의 한계와 재앙에 대해 남먼저 아파하고 이를 미리 경고했던 사람. 그는 20여년이 지난 오늘, 다시 죽음의 바다 위에 서서 마산에는 바다가 없다고 절규하고 있다. 마산의 바다는 20여년 전 독수대를 통해 바다의 유언을 들었던 시인의 예언대로 마침내 생명이 끝난 바다, 죽음의 바다로 되어버린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 죽음의 바다는 더 이상 바다가 아니다. 마산에는 이제 바다가 없는 것이다. 


옛날 어느 외국인이/ 마산 바다를 보고는/ 태평양 연안에서는/ 북미의 샌프란시스코와/ 호주의 시드니항에 버금가는/ 하늘이 주신 호수같은 바다라고/ 말했다 한다./  (중략)  …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된 이래로/ 오늘도 마산은 항구다/ 그러나 마산에 바다는 없다/  마산은 항구지만 바다는 없다/ 없다.

–「마산은 항구지만 바다는 없다」 부분, 1996


끈질긴 생명력은 고향 마산에 

온건히 뿌리박고 있는 그의 삶으로부터 나와 


시인이란 본시 불행한 족속이란 말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그 중에서도 이선관 시인 그는 더욱 불행한 족속이다. 20여년 이상 죽어가는 바다를, 이땅의 산하를 지켜보며 함께 아파하고 한 맺힌 절규와 신음을 함께 나누는 그 고통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이같은 시인의 고통, 시인의 불행이 단지 그만의 아픔과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라는 데서 이 시대의 비극이 있다.

시인 이선관, 그는 42년에 이곳 마산에서 태어난 이래 줄곧 여기에서 자랐으며 아직도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고 아마도 여기서 그의 육신을 마감할 것이다. 우리 모두 근대화 산업화, 저 현란하고 호사로운 서구 소비 문화, 물질 중심적 산업 문명의 신기루를 쫓아 뿌리 뽑혀 떠도는 삶 속에서 허우적이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고향 마산에서 한 발자국도 옮겨 딛지 않고 견고히 뿌리박고 살아왔다.

날이 갈수록 더욱 초조해지고 텅비어가는 것 같은 우리 내면의 이 공허감, 끝모를 존재의 이 박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이 생명의 근원 자리인 고향, 땅, 자연, 공동체-그 뿌리로부터 절연된 것에서 빚어진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그 고장에서 토박이로, 지킴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조부박(輕眺浮薄)한 이 시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불구의 몸과 온갖 질병을 다 앓은 허약한 육신을 가진 이선관이라는 한 무력한 인간이 20여년이 넘도록 환경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시를 통해 고발하고 비판하고 경고하고 때로 저항하며 온 몸으로 버텨올 수 있었던 그 끈질긴 생명력은 다름아닌 땅에, 고향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는 그의 삶과, 생명의 소중함, 모든 존재의 소중함에 대한 애절한 그의 사랑과 뼈저린 그의 체험 때문임은 틀림없다. 

그렇다. 그는 시를 통해서 불구자라는 자기자신에 대한 모멸과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뭇 생명, 살아있는 것들 그 자체의 거룩함과 존엄성을 일깨우며, 한편으로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들 - 자본주의, 외세, 분단 등 우리의 정치 경제체제와 사회문화 구조에 이르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 바탕인 산업문명 그 과학기술 문명양식에 대해 비판하고 고발하고 저항하며 당당히 맞서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서 상처받고 고통당하던 과정을 통해 일깨워진 남달리 비상한 근원적인 생명감각은, 한 병약하던 인간이 죽임의 거대한 세력에 맞서 환경과 생명을 수호하는 전장(戰場)의 선두에서 치열하고 뜨거운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 강인한 전사로 우뚝서게 만든 것이다.


시를 통해 생명사랑과 반생명적인 것에 대한 저항 

시집 『창동 허새비의 꿈』의 책머리 글에서 그는 ‘나라를 사랑하고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지 않으면 그런 시는 시가 될 수 없다’는 다산 정약용의 말을 인용하면서 배금주의와 물질주의가 급성질환처럼 만연된 이 시대에 살아있다는 증거를 위해서 아주 적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그에게 있어서 시를 통한 생명사랑과 반생명적인 것에 대한 저항은 곧 주체적, 자주적 존재에 대한 치열한 자기확인의 과정임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20년 이상 일관되게 환경시를 써 온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독재체제의 그 억압구조에 대한 저항에도 또한 머뭇거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발음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뇌성마비 장애자이면서도 지난 시기 반체제 시인의 상징인 김지하 시인보다 먼저 시국관련 시 때문에 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던 일화는 그의 존재와 그 삶이 어떠했는지를 드러내 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유신독재가 최절정기였던 71년에 쓴 「애국자」라는 시는 그중에서 백미라 할 만하다.


빛이/ 어둠을 사르는/ 새벽이었다// 문틈에선가/ 창틈에선가/ 나의 침실 깊숙히 파고드는// 동포여! / 하는 소리에 매력을 느끼다가/ 다시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니//  똥 퍼여? / 하는 소리라/ 나는 두 번째 깊은 잠에 취해버렸다.   –「애국자」 전문, 1971 


지난해, 그는 두가지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 하나는 그동안 써 오던 환경에 관련한 시들을 묶어 ‘재생지로 만든 이선관 환경시집’ 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집 『지구촌에 주인은 없다』를 간행한 것과, 젊은 뇌성마비 장애인이 발로 쓴 『새들처럼』이란 시집의 출간을 도운 일이다. ‘발로 쓴 박연복 시집’『새들처럼』의 발문에서 그는 태어나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인 박연복의 25년 동안 살아온 기도처럼 기필코 한 마리 새가 되어 여러 새들 속에 끼어 날아갈 것을 축원하고 있다. 그 축원 속에서 나는 이선관 시인 그 자신 또한 한 마리 큰새가 되어 공해와 매연으로 오염되지 않은 푸른 창공을 힘차게 날고 있는 꿈을 본다.

환경시집 출간을 계기로 최근에 한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시가 대중의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생태문제와 같은 현실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시가 대상으로 삼는 생태론이란, 인간이 지상에 거주한다는 근본적이고도 심오한 형태의 것이어야 한다”는 프랑스 시인 미셀 드기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집의 제목인 『지구촌에 주인은 없다』는 매우 의미깊은 메시지로서 과연 인간이 지구촌에 주인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문득 환경문제란 인간의 욕망을 관리하는 문제라는 말과 함께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이땅에서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는 생존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비해 유독 인간만은 그렇지 않음으로, ‘살아 있고 살리는’ 뜻에서 볼 때 인간이야말로 으뜸가는 해충(害蟲)일 것이다라는 스코트 니어링의 지적이 생각난다.


무소유의 소박한 삶은 그만큼 더 넉넉하고 

이선관 시인을 잠시라도 만나본 사람이면 한결같이 느끼는 것은 불구의 몸과 고달픈 그의 지난 삶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또한 물질중심의 이 각박한 세태에서 지나치게 가난한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늘 웃음을 머금고 있는 천진하고 밝은 그의 표정과 참으로 선량한 그 모습에 대한 놀라움이다. 무엇이 그의 혼을 그렇게 맑게 하고 인간정신의 선량한 품성과 삶의 너그러움을 잃지 않게 하는지를, 그리고 또한 어떻게 그속에서도 그렇게 끈질긴 저항의식과 치열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그는 지난해 연말 이곳 마창 환경운동연합에서 수여하는 녹색문학상을 받았다. 그 상을 받고 그는 참으로 기뻐했다. 그가 매일 들러 점심공양을 하는 부림시장 지하의 작은 밥집 ‘성광집’의 이영자 시인 - 이 시인 또한 그가 발굴해 낸 시인이라는데서 내심 그의 자부심이 크다 - 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녹색문학상을 받고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문학상인 ‘공꼬르’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턱도 없이 상이 흔한 세상에서 조그만 이 상을 받고 그가 그렇게 기뻐한 이유는 그 상의 의미가 당신에겐 더욱 각별한 것이었을 뿐아니라 그 어느 관(官)과도 연결고리가 없는 순수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는 단순하고 천진한 사람, 천상 시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무계획적인 박정희식의 개발논리가 지금과 같은 IMF의 총체적 난국을 만들어 왔다는 이선관 시인의 지적에, 나는 환경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이제부터는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개인개인이 환경운동을 생활화하는 것, 일을 너무 크게 잡지 말고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아직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부족한데 대중 속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환경에 대한 생각들을 생활로서 실천하는 운동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새롭게 한해를 맞으면서 앞으로의 그의 계획은 무엇인가. 그는 계속해서 시를 쓰는 것이 자기의 계획이고 또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공연한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거다. ‘환경’과 ‘통일’을 중심주제로 시를 쓰고 싶은데 이 두 주제는 모두 생명에 관계되는 것으로 같은 일이기 때문이며 환경문제로는 특히 핵문제를 집중적으로 쓰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고 계획이다. 스웨덴에서는 핵발전소 12개를 몽땅 폐쇄했다고 하는데 이 좁은 땅덩어리에 또다시 핵발전소를 건설한다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란 말과 함께 그는 「체르노빌3」 「체르노빌 4」라는 새로 쓴 연작시 두편을 내게 내민다. 

그와 함께 마산의 중심인 창동의 거리를 걷는다. 그에게는 저 4월 혁명의 봉화를 올린 곳, 부마항쟁의 중심지였던 이곳 마산이, 그 중심인 창동이 언제나 자랑스럽다. 그래서인가. 그의 매일은 창동에서 반경 500m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마산의 지킴이, 창동의 허새비로 자처하는 시인에게는 이곳이 마산의 중심인 동시에 한반도의 중심, 세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것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기준이 아니던가. ‘불출호(不出戶)하되 지천하(知天下)라’-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의 일을 모두 안다는 노자의  말처럼 그는 마산에, 창동에 뿌리박고 있으되 그의 관심은 온 지구로 가득차 있다. 일상의 삶의 수준에서 보면 시방 이선관 시인의 삶의 형태야말로 지구생태계에 가장 적합한 소비형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월 10만원 미만의 생계비로 무소유의 소박한 삶을 사심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그만큼 더욱 넉넉해지고 자유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시인 이선관은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가장 생태적인 인간이고 지구촌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한 매우 드문 인간들 중의 하나일성 싶다. 

지구촌의 환경시인 이선관을 만나고 오면서 문득 노자가 이상향(理想鄕)으로 그리던 소국과민(小國寡民)이 생각난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삶이 소박해지고 삶이 소박해지면 세상이 넉넉해지는 것은 세상사의 바른 이치이다. 시방 온 나라가 앓고 있는 이 홍역 또한 분수를 잃은 욕심 때문임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지금 정작 우리가 서둘러야 할 구조 조정은 다른 것이 아닌, 쓰고 버리는 식의 소비형태와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 자신의 삶과 그리고 물질적 욕망에 중독된 우리의 마음부터 먼저 바르게 이루어내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충분히 가난함으로써 더욱 풍요로운 삶을 일구는 마산의 지킴이 이선관 시인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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