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임길진칼럼 16] 한반도와 세계의 핵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한반도의 핵문제라고 하면 흔히 북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문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핵문제는 단순하지도, 단일하지도 않다. 우선 북핵문제처럼 핵무기 보유정책의 문제가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안사태처럼 핵발전 정책으로 인한 문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문제의 교묘함은 이 두 문제가 별개의 문제가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분리할 수 없는 핵문제라는 점이다. 핵은 평화적 이용이거나, 무기로서 사용가능성을 두고 이용하는 문제이거나 본질적으로는 같다. 핵문제의 본질은 이용의 목적에 따라 위험이 경감되거나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은폐되거나 절차화될 뿐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핵무기도 해체해 재처리하면 핵연료가 되고, 핵연료도 고도 농축하면 핵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다. 이 변환의 가능성이 핵문제의 본질적 핵심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이를 국가이익 관철의 수단으로 삼는 정책은 재론의 여지 없이 반생태적, 반인류적, 반사회적이다. 문제는 흔히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불리는 핵발전의 경우, 한국과 같은 에너지 수입국가들이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고, 이미 이들 에너지 수입국의 국가에너지체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핵문제, 인류의 존망이 걸린 세계의 두통거리,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우리가 어떤 입장과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사회적인 수준에서 생각하고 논의하여 합의하여야 한다. 이 합의가 문제 해결의 첫 수순이다. 한국사회는 이 합의가 없었거나, 정부 주도의 일방적 지침만 있었다는 데에서 더욱 심각한 갈등과 미래의 실패를 현재화하고 있다고 진단된다.

핵 사용이 유발하는 세 가지 문제
첫째는 핵발전이다. 핵발전은 많은 나라의 에너지공급체계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총 발전량의 약 17퍼센트를 핵발전에 의존한다. 우리나라는 1998년 총발전량의 41.7퍼센트를 점유한 이래 꾸준히 4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핵발전의 문제는 안전의 문제이다. 핵발전소는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지만 위험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아직도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사고와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를 기억한다. 이러한 사고들은 핵발전 폐지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둘째는 핵폐기물 문제다. 핵폐기물(방사성폐기물)은 핵발전소 가동과 핵무기 실험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따라서 핵발전소가 완전히 안전하게 운영된다고 해도 회피할 수 없는 위험요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사선 폐기물은 핵발전소 내에 임시저장되어 있다. 정부는 이들 폐기물의 포화연도를 2008년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다양한 압축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주장은 핵폐기장 건설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1986년 이후 꾸준히 핵폐기물 관리시설 부지를 확보하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는 신뢰를 상실하고 문명사회에서 벌어져서는 안 될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만을 불러왔을 뿐이다.

셋째 문제는 핵무기의 문제이다. 미소 양국의 냉전체제시 세계에는 약 5만개의 핵폭탄이 있었다. 이 핵폭탄의 파괴력을 TNT(다이너마이트/2,4,6-트리니트로톨루엔)로 환산하여 세계인구로 나누면 이 세상에 사는 한 사람이 약 3.5톤의 TNT를 걸머진 것과 같다. 3.5톤이면 한 사람을 수백번 죽이고도 남는다.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자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Nonproliferation Treaty)」에 따르면, 합법적 핵보유국은 1968년에 핵무기를 가지고 조약에 서명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의 5개국이다. 1968년 이후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핵 보유국이 되었다. 그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비핵국으로 조약에 가입했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불법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불법적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다. 강대국은 핵무기를 보유해도 되고 약소국은 자국 방위를 위해 핵무기를 보유해서는 안 된다라는 논리는 강대국의 편의적인 발상이 아닌가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면적인 정의론은 무기를 들고 상대를 위협하며 대치하는 순간만이 평화라고 여기는 전복적인 사고를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참으로 무참한 어리석음일 뿐이다. 평화는 핵이 아니라 비핵과 탈핵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대한 제국들의 핵무기는 확인하고 조사한 후, 합의하고 감소시켜 장기적으로는 모두 폐기시켜야 할 대상이다.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체제보전을 위한 보루로서 핵무기 보유의 핑계거리로 삼을 대상이 아니다. 또한 최근 벌어진 ‘한국정부 핵무기 제조 위한 핵연료 농축 의혹사건’에 대해서 변명이랍시고, ‘북의 핵에 대항하기 위해 남도 핵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반응은 위험하고도 유아적인 사고일 뿐이다.

폭력으로 평화를 살 순 없다
한반도를 핵의 사슬에서 풀어내는 첫 단추는 핵발전, 핵폐기물, 핵무기문제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이고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절대적으로 평화와 생명의 원칙 위에 서야 한다. 핵발전과 핵폐기물, 핵무기문제에 단기간의 극적인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온 나라, 온 사회, 전세계가 전면적으로 합의하여 절차적으로, 공인된 방식으로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감소시키고 폐기하는 길 밖에는 없다. 실천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을 회피하는 시간만큼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으로 이전될 뿐이다.

인류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여 핵발전(원천에너지는 화석연료 우라늄에서 얻어진다)을 포함한 일체의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재원을 확보하는 국가적, 세계적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 불완전하고, 강대국의 입김에 크게 좌우되는 ‘핵무기의 감축과 폐기를 위한 세계조약’을 재정비하고 강화하는 국제사회적 노력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엔 주최로 열린 WSSD(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에서 결정된 무기 축소에 관한 조항들은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전력을 풍족히 쓰기 위해 핵발전을 무한정 용인하려는 개별적인 자아(개인)의 이기심이며, 권력과 체제의 안정을 위해, 또는 타국에게 자국의 의지를 강제할 절대무력을 갖기 위해 핵무기를 용인하려는 사회적인 자아(사회 또는 국가)의 이기심이다.

핵발전에 대체할 수 있는, 한반도의 지상과 지형에 맞고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평화로운 발전방법을 꾸준히 개발하고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장기적 계획을 즉각 실천해야 한다. 합리적인 협상절차, 동의형성, 보상, 과학적 안전성 확인 등을 통하여 핵폐기물을 처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를 공멸로 몰고 갈 핵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고 나아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남김 없이 폐기하는 것이다.

핵무기를 만드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주택, 환경, 교육, 교통, 건강, 위락 등에 투자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 시민의 삶을 돌보지 않고 핵무기로 국가의 존망을 걸어보려는 시도는, 그러한 선택밖에 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핵보유 강대국들의 불평등한 압력만큼이나 비도덕적이며 반생명적이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모든 시민세력은 핵무기 폐기를 위한 국가적인, 국제적인 평화운동을 세계시민의 이름으로 크게 펼쳐야 한다. 핵문제에 대해 국부적인 반응을 보이고 전면적인 원칙적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핵은 모든 것이 꼬리를 물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고리이다. 시민사회가 그 고리를 끊는 일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핵의 문제는 진정으로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임길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미국 미시간주립대 및 한국 KDI 국제정책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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