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환경영화 『레커닝』, 마녀사냥의 구조적 광기

“분명 그 집에 사악한 뭔가가 있어!”

1665년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 전역에 페스트가 창궐했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대규모 역병으로 런던 인구의 25%, 영국 인구의 10%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 역병이 악마와 그 악마의 추종자, 즉 마녀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이 시기, 영화 『레커닝(The Reckoning)』에서처럼 ‘사악한 뭔가가 있다’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는 곧장 특정 개인을 마녀로 몰아 섬뜩한 고문이 동반된 재판으로 이어지게 했다. 형식은 재판이었지만, 그야말로 ‘답정 마녀’ 재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권력자 탐욕과 자신들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분노의 대상을 찾아 한때 정겨웠던 이웃을 더 악랄하게 마녀라고 증언했다. 마녀재판에선 변호인 조력이 원칙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마녀를 변호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 『레커닝』은 17세기 중반 광기의 시대, 영국에서 일어난 마녀사냥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는 코비드 19 펜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가치관 변화와 그에 따른 사람들의 혼란 상황을 빗대고자 했다. 2021년 9월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레커닝』은 평론가와 관객의 나쁘지 않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 200명이라는 극히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더욱이 이 영화의 감독이 2005년 영화 『디센트(The Descent)』를 통해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최고의 공포영화’라고 평가받았던 영국 태생 닐 마셜이란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참고로 영화 『디센트(The Descent)』는 전 세계적으로 4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마녀 잔혹사

영화 『레커닝』은 마녀사냥에 대한 비판 의식을 그대로 살려냈다. 전통적 마녀 소재 영화는 괴팍한 노파의 모습을 지닌 마녀를 악(惡)으로, 마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공주 또는 미소녀와 이를 돕는 왕자 또는 마녀 사냥꾼을 선(善)으로 표현했다. 반면 영화 『레커닝』은 중세 유럽 마녀가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보여준다. 또 그 조작에 따른 피해자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의 주인공 그레이스(샬롯 커크)는 남편 그리고 젖먹이 딸과 함께 성에서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그레이스는 어릴 적 자신의 엄마가 마녀로 몰려 끔찍하게 죽어 나간 고통을 갖고 있다. ‘신의 도구’를 자처한 마녀재판 전담 판사는 어린 그레이스를 살리고 싶으면 마녀라는 걸 자백하라고 윽박질렀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그 결과 산 채로 화형을 당했고, 그레이스는 그 모습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다. 그레이스는 결혼 후 이런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한다.

성실하고 신심 깊은 남편은 그레이스의 고통을 사랑으로 보듬어줬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성주는 그레이스의 남편이 페스트에 걸린 이방인의 술을 마시게 했다.

젊고 매력적인 그레이스를 차지하기 위한 술수였다. 남편이 죽은 뒤 성주는 직접 그레이스를 찾아가 호색한의 상투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레이스를 겁탈하려다 실패한 성주는 주민을 동원해 그레이스를 마녀로 몰아세우고 마녀 심판관으로 유명한, 정확히 고문으로 마녀라는 자백을받아 내기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판사까지 초빙했다. 이 판사가 바로 그레이스의 엄마를 화형에 처한 장본인이었다. 판사는 며칠 동안 끔찍한 고문을 가하며 그레이스에게 자백을 강요한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도 끝끝내 자백을 거부한 그레이스에게 판사는 “마녀가 아니라면 이런 고통을 누가 참나?”라면서 사형을 판결한다.

마지막으로 판사는 과거 그레이스의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레이스가 자기 딸을 살리고 싶다면 마녀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한다. 자백해도, 자백하지 않아도 화형당할 상황에 놓인 그레이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영화 『레커닝』은 마녀재판의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녀로 기소된 사람은 우선 ‘마녀 마크’ 찾기부터 시작한다. 마녀 마크란 마녀 집회(사바스)에 참석해 악마와 결탁한 표시로 몸에 새겨진 표식이다. 시각적으로 드러난 마녀 마크가 없으면 바늘로 온몸을 찔러 마크를 찾아냈다. 고문은 마녀재판의 핵심이었다. 탈골과 뼈 부수기는 기본이었고, 신체 절단, 불에 달군 철 신발 신기기 등 영화 『레커닝』보다 더 잔혹한 고문 사례가 많았다. 마녀는 악마의 힘을 받았기에 일반적인 고문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대의 마녀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고문 과정에서 죽는 사람도 많았다. 마녀라고 자백하면 죄의 경중에 따라 교살 후 화형 또는 산 채로 화형인지가 결정된다. 동양권의 팽형(烹刑)처럼 삶아 죽이는 형벌도 있었다.

영화 『레커닝』의 감독 마셜은 “유럽과 북미에서 여성 50만 명이 마녀라는 명목으로 재판받고 고문당한 뒤 처형됐다.”라는 내용을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올렸다. 감독은 대규모 역병의 공포 속에서 집착적으로 희생양을 찾던 광기의 시대 상황을 전하고 싶어 했다. 마녀사냥의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30만 명 또는 900만 명에 이른다는 설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1200만 명보다 많았다는 설도 있지만, 최근 역사학자들은 마녀재판 기록과 기록되지 않은 희생자 등을 고려해 대략 5만에서 10만 명으로 보는 경향이다. 과학 사상사를 전공한 모리시마 쓰네오는 『마녀사냥』(김진희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마녀재판 희생자 수가 30만 명이든 900만 명이든, 암흑 재판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서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또 마녀사냥의 희생자 75~85%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를 젠더 관점에서 고찰한 연구도 많다.


끝나지 않는 마녀사냥

인류학적으로 마녀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민중 신앙 속에서 초자연 현상을 의미하는 마법(magic)의 주술사이자 샤먼이었다. 『마녀사냥』에 따르면, 마녀 박해 사례로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200년 이집트였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와 기원후 고대 로마 시대와 그 이후에서도 여러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고대 마녀 탄압은 중세에 자행된 마녀사냥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마녀가 박해당한 것은 마녀라서가 아니라 마녀가 주술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거나 농작물을 말려 죽이는 등의 악행을 저질러서였다. 소위 형법 범죄에 대한 징계”라는 것이 모리시마의 분석이다. 오히려 위정자들은 병을 치료하고 작물을 번성하게 한 선한 마법을 권장했고, 지배자의 위엄과 악한 마법 방어를 위해 마녀를 동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12세기 후반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작은 교황권 전성기 시대 교황의 전권을 위임받은 ‘이단 심문관(Inquisitor)’부터였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한 이단 심문관은 초기 성직자 부패문제와 이교도 문제 해결의 대안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 정신은 사라지고 광신적 태도만 남았다. ‘이단자 한 명을 멸하기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 천 명의 희생도 불사하다.’라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14세기 들어 교황이 마녀재판을 허용하자 이단 심문관의 마녀사냥이 본격화됐다. 사실 이 시기 마녀재판은 혼란 시대 민중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이기도 했다. 성녀로 추앙받던 프랑스의 잔 다르크가 마녀재판을 거쳐 화형에 처해진 것도 정치화된 마녀 담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5세기 종교적, 철학적으로 학식 높은 이들은 마녀재판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악마화된 마녀 개념’을 정립했다. 요한네스 니더의 『개미나라(Rormicarius)』와 야콥 슈프랭거·하인리히 크리머의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이 대표적이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뜻의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 인쇄술 발달과 함께 17세기까지 여러 번 출판되면서 마녀사냥의 교본이 되었다. 여성은 태생적으로 악마의 유혹에 약하다는 인식도 깊게 심었다.

그에 따라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마녀 집회에 참석하고, 여기서 영·유아를 살해하고 제물을 바쳐 악마 등과 문란한 교접을 벌인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녀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이를 통해 16세기 마녀사냥의 절정에 이르게 했다.

역사학자 주경철은 『마녀: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생각의힘)에서 “마녀사냥은 유럽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현상 중 하나”라고 본다. 마녀사냥의 정점 시기는 중세 암흑기가 아닌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혁신 운동인 르네상스와 과학학명과 계몽철학에 따라 이성과 합리성이 자리 잡던 근대 초였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에서 마지막마녀재판이 있었던 시기는 프랑스 1745년, 독일 1775년, 이탈리아 1771년, 폴란드 1773년, 스페인 1781년, 스위스 1782년이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유럽이 전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는 18세기 중후반까지 마녀사냥이 이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주경철은 마녀사냥이라는 무지몽매한 사건의 필요충분조건이 유럽사에 내재했다고 평가한다. 지배층의 선을 증명하기 위해 악이 필요했다는 시각이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의 적대적 공생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역사학자 조한욱은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우리 말 번역서 추천사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녀사냥 다시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그것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현상의 본질을 파악해야지만 반복을 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른 16~17세기는 지구의 기후 역사로 볼 때 소빙하기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독일 역사학자 볼프강 베링어는『기후의 문화사』(안병옥·이은선 옮김. 공감)에서“마녀사냥은 소빙하기가 낳은 범죄” 라고 진단했다. 종교사학자 제프리 버튼 러셀은 마녀사냥을 “사회 불안과 공포가 특정 개인에게 투영된 결과 그들은 고문 살해되었으며, 그렇게 제거해도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라 지적했다(『마녀의 문화사』. 김은주 옮김. 르네상스).

현재 기후위기 가속화는 파국적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그 파국이 절망이 아닌 해방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 적응과 완화를 말한다. 기후위기 시대 마녀사냥의 재현을 방지하기 위해선 현재의 이분법적 갈등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가 파국적 상황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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