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명화 속 환경이야기

예로부터 화가들은 자연을 대상으로 많은 그림들을 그려왔다. 서구의 경우 화가들이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서 그림을 생산하던 장인의 시기를 지나 바로크 시대가 되어서는 궁정의 화가로서, 왕의 요구에 따라 많은 주문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봉건적인 정치체제의 변화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만들었다. 기계 생산을 통한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화가들의 신분도 점차 변화해갔다. 과거처럼 권력자의 주문을 받아 도제식으로 제작하거나 궁정화가가 되어 근무하는 식을 탈피하여, 이제는 예술가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작품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사진기의 발명으로 인물의 초상이나 풍경 등을 회화적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화가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회화의 방법들을 연구하였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은 전통적인 그림의 주제나 기교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이나 일상의 사물들을 대상으로 했다. 인상주의 화풍은 도시풍경뿐만 아니라 프랑스 시골의 풍광이 주는 햇볕의 다양하고도 변화무쌍한 풍경들을 현장에서 직접 화폭에 담음으로써 생동감 있는 화면을 구축하게 된다. 인상주의는 빛과 색의 조화, 대상과 면의 구성을 탐구하였으며, 이들의 화풍은 후에 표현주의자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회변화에 따르는 다양한 풍광들을 인상적(!)으로 담아낸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산업혁명기의 환경에 대해서 상상해보는 일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모네와 생 라자르 역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1870년대 후반부터 파리시 동 북부에 위치한 생 라자르 역과 그 주변을 테마로 한 일련의 작품을 그렸다. 철도를 주제로 한 회화로는 영국의 풍경화 작가인 터너의 <비, 증기, 속도> 등이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모네, 피사로, 시슬리 등의 인상파 화가들이다. 특히 모네에게 있어서 빛은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들을 표현한다기보다는 인상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한 표현은 안개가 자욱이 낀 <런던의 국회의사당>을 그리거나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는 어느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을 담은 <개양귀비> 등과 같은 그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사물은 단지 색의 향연으로 보였으며 명암의 차이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물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빛의 파노라마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것을 탐구하였다.

스티븐슨이 발명한 증기기관차는 산업혁명의 속도와 능률에 있어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며 철도시대를 열었다. 영국에서 먼저 1825년에는 석탄을 탄갱에서 수로(水路)까지 운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스톡턴∼달링턴 철도가 개통되었고, 1830년에는 맨체스터∼리버풀 철도가 개통되어 상업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런 성공에 자극되어 철도망은 급격하게 영국의 전 국토로 확대되고, 산업자본을 순환시키는 대동맥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증기기관차는 석탄을 주원료로 하여 운행되던 것으로 기관차의 운행에 따라서 많은 오염원을 대기로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기관차가 방출하는 오염물질에 대한 환경문제보다는 산업혁명이라는 전체적인 사회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당시의 사람들은 거대한 쇳덩이가 움직이며 사람과 물량을 운송하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의 산업화에 뒤이어 프랑스에서도 곳곳에 기차역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연기를 힘차게 내뿜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물품을 싣고 달리는 기차를 보며 사람들은 경이에 찬 눈으로 들떠 있었는지도 모른다. 1877년 봄에 열렸던 인상파 제 3회 전시회에서 모네는 생 라자르 역을 주제로 한 연작 일곱 점을 출품하였다. 이 그림에서 모네는 역 구내의 구체적인 면들을 과감하게 생략하면서도 찰나의 인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의 주된 기법이 단지 빛과 색들의 향연으로 충만된 단순화기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문명이 주는 역동적인 사회분위기를 당대의 어떤 화가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러므로 모네의 생 라자르 역 그림에서는 부자가 되고 싶은 희망과 두근거림으로 잔뜩 상기된 시골청년이 이제 막 도착한 기차에서 내리는 장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의 품에는 몇몇 옷가지와 먹다 남은 감자 몇 톨이 담긴 작은 괴나리봇짐이 꼭 쥐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산업사회에 대한 벅찬 기대감은 위트릴로의 생 드니 운하 그림으로 오게 되면 산업화의 벅찬 기대감이 점차 어두운 현실로 물들여진 회색빛 그림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위트릴로의 생 드니 운하
‘술집에 가면 틀림없이 위트릴로를 만날 수 있었다. 카운터 옆에 서 있거나 그렇잖으면 벌써 고주망태가 되어 문 밖의 시궁창에 드러누워 가끔 “썅”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람들은 매정하게도 그를 쫓아냈고 그는 쓰러져서 신음하며 또 울었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의 평전을 쓴 칼코의 묘사이다. 위트릴로는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태어났다. 당시 몽마르트르 언덕은 도시빈민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달동네였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10세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등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18세에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다. 그는 우연히 병원에서 치료요법으로 배우기 시작한 그림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위트릴로는 심한 음주와 난잡한 생활 가운데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파리의 구석구석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인상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면서도 인상파 화가들이 놓치기 쉬웠던 구체적인 현실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생 드니의 운하에서 그는 한창 오염되고 있는 수로, 공장굴뚝을 통해 뿜어져나오는 연기 때문에 회색빛으로 변해버린 하늘, 오랜 세월 산업먼지에 찌든 회색 벽돌이 희미한 외광을 받아 빛나고 있는 산업혁명기의 대표적인 공장지대 풍경을 보여준다.

고향인 농촌을 떠나 도시의 임금 노동자가 된 사람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의 소음 속에서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했다. 당시 노동인구의 평균 연령이 20세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조사를 보면 그 참혹함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림 뒤편에 솟은 공장의 굴뚝 밑에는 바라크로 지은 불결한 공동 숙소에서 3~4명이 하나의 침대를 번갈아 사용하며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화장실도 10여 세대가 공동으로 사용했고, 목욕탕 설비 등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산업혁명기의 공업도시에서는 물조차도 현금을 주고 사야 하는 품목이 되어버렸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공장의 연기는 도시 전체를 숨쉬기 힘든 공간으로 만들었고, 노동자들은 어디에서도 평안을 찾을 수 없었다. 삶의 고통으로 찌든 도시노동자의 현실을 상상하게 하는 위트릴로의 그림은 산업혁명이 제공하는 경제적 성장의 이면에 숨은 환경오염문제나 도시노동자의 열악한 삶의 현실이 어떤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은 회색빛 경제성장의 대가로 현재까지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 외에도 마실 물, 숨 쉴 공기 등 생명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자연의 오염까지 함께 가져다주었다. 위트릴로의 회색은 죽음을 경고하는 회색이다.

고흐의 밤하늘
반 고흐 그림에 등장하는 밤하늘은 산업혁명기의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도시의 탁한 회색빛 공기들과는 사뭇 다른 톤으로 표현된다. 태양을 좇아서 북쪽에서 남쪽 아를르 지방으로 내려온 고흐는 가을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밤의 광경에 열중하게 된다. 그 동안 타는 듯한 태양의 풍경을 동경했던 그의 눈은 밤의 카페의 풍경을 통해 마침내 영혼의 침잠된 부분, 정신의 그늘진 부분을 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밤하늘과 등잔불의 레몬빛 노란색의 기묘한 대조는 그의 마음속에 일고 있던 갈등의 표현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미 그림물감과 캔버스도 다 써버렸고 지갑도 비었다. 다시 둘도 없는 사랑스러운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써야만 한다.

테오에게
오늘 아침 이른 시간에 너에게 편지를 쓴 후 태양이 비치는 정원 그림을 그리러 나가서 작업을 마쳤다.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새 캔버스를 가지고 나갔고, 그것도 끝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싶어 펜을 들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과거에 이런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다. 이곳의 자연은 정말 아름답다. 모든 것이, 모든 곳이 그렇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태양은 창백한 유황빛으로 반짝인다.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도저히 그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광경에 어찌나 열중했던지 규칙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덕분에 집 맞은편에 있는 정원을 소재로 그림 세 점을 그렸다. 또, 두 점의 카페 그림과 해바라기를 그렸고, 보쉬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 다음에 붉은 태양을 그렸고, 모래부대를 내려놓는 사람들, 오래된 물방앗간을 그렸다.
다른 습작은 차치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겠지.
그 바람에 오늘 물감과 캔버스가 다 떨어졌고 지갑도 완전히 비었다.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은 마지막 물감으로 마지막 캔버스에 그린 것이다.
정원 그림이므로 녹색을 띠고 있지만 녹색 물감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프러시안 블루와 황토색을 썼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떤 의문도 없다.
이 기분을 유지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1888년 9월 17일 고흐


가난한 화가 고흐의 밤하늘은 우리가 늘상 꿈꾸는 것처럼 별이 초롱초롱 하다못해 영롱하다. 푸른 밤공기 속에 등불 빛에 비쳐진 카페의 풍경은 낭만적인 상상을 가능케 한다.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 노천카페에 앉아 포도주 한 잔 마시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별이 초롱초롱한 밤을 만날 기회는 드문 것 같다. 밤이 되어도 자동차 바람에 실려 오는 먼지를 덮어쓰며 포장마차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고흐의 밤의 카페에 등장하는 상큼한 밤바람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소주잔을 거푸 비우며 목구멍에 낀 먼지나 털 뿐이다.

글 | 김윤환 미술가, 오아시스 프로젝트 기획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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