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새미로[사진이 있는 엽서] 구구소한도와 정전수유진중대춘풍

동짓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우리 전통 풍습이다. 밤이 가장 긴 그날이 지나면 비로소 낮의 길이가 한 뼘씩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날 새해의 달력을 주고받곤 했던 것이다. 그날 반가나 여염이나 할 것 없이 벽에 그림을 하나씩 걸었는데 그것은 소한도消寒圖라는 것이다. 어찌 그림이 추위를 사라지게 하겠냐마는 그만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크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봄은 기다리는 것이고 겨울은 마지못해 맞이하지만 어서 떠났으면 하는 불청객과도 같은 이미지가 아니던가. 그러나 선조들은 불청객을 떠나보내는 마음씨 또한 고왔다.

소한도는 대개 매화꽃 여든 한 송이를 그려놓았다. 하지만 겉만 그렸을 뿐 그것이 홍매인지 청매인지 아니면 백매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꽃잎의 색을 칠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빈 꽃잎을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한 송이씩 마음에 드는 색을 칠하며 추위를 보내고 봄을 기다렸던 것이다. 아마 여인네들은 붉은 색을 칠하고 남정네들은 청색을 칠했지 싶다. 그것이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이다. 매화를 그릴 솜씨가 없는 여염에서는 그저 동그라미를 여든 한 개 그려놓고 그곳에 색을 칠했다고 하니 그 마음들이 오죽이나 했을까. 또 글줄이나 읽는 사람들은 뜰 앞 정자 곁의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게 할 봄바람을 기다린다는 뜻의 ‘정전수유진중대춘풍亭前垂柳珍重待春風’이라는 글귀를 썼다고 한다. 글은 모두 아홉 자이며 그 획이 모두 아홉 획이다. 그러니 날마다 한 획씩 그으며 봄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처럼 누구의 봄인들 귀하지 않을 것이며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지만 무엇보다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은 봄만이 아니라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아우르는 자연일 것이다.


글 | 이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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