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새미로[사진이 있는 엽서] 사진으로 꼴값하기

사진을 찍으면서 늘 느낀다.
사진이란, 그 중에서도 흑백사진이란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그들을 모두 포함하는 회색이 같이 있어야 제격이라고 말이다. 그들 셋이 모두 어우러져야만 그래도 사진으로 꼴값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또 고민이다. 무엇을 찍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사진 속에 그들 셋이 잘 어우러져 대상을 돋보이게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온통 검은색이나 죄 흰색으로 된 사진을 예술이라는 이름을 덧씌워서 보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이 용서되지만 쉽사리 용납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사진기 파인더를 들여다 볼 때마다 컬러로 보이는 색을 흑백으로 바꿔 보면서 흑과 백 그리고 회색의 정도를 가늠해야 한다.

그 탓에 흑백사진의 색깔 중에서도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이다. 이놈이 없으면 화면은 그저 되바라진 대비만이 남게 되고 마니까 말이다. 그들만이 남으면 사진은 툭 불거져 더욱 또렷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건조하기 짝이 없는 심심한 사진이 되고 만다. 그래서 회색은 완충지대이다. 다만 그들을 흡수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각각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완충지대인 셈이다. 회색은 결코 흑색이나 백색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 그저 어떻게 그들을 서로 포용하고 허용하며 용납할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만 사진은 세 가지 색으로 완성된다는 이야기를 불현듯 꺼내 놓는 까닭은 또 다시 불거진 붉은색 논쟁 때문이다. 이제 그것을 쉽게 허용하고 용납하며 받아들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회색을 머금지 못한 편협하기 짝이 없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내 사진에 회색이 없는 흑백의 편협함을 나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듯이 붉은색만 내세우면 모든 것이 다 될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옹색한 편협함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꼴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도 그렇거니와 모든 것들이 꼴값만 하고 있어도 세상은 흥미진진할 것이다. 제발 꼴값들 좀 하시기를 권한다.


글 | 이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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