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새미로[사진이 있는 엽서] 연탄재 발로 차고 싶은 날

연탄이다. 강원도 정선의 고양리 근처 길섶에 함부로 패대기쳐 놓은 연탄재, 어떤 시인은 그 아름다운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연탄재를 힘껏 발로 차도 좋을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 날만큼은 발로 차기도 하고 부지깽이나 삽으로 내려치기도 하며 산산조각을 내려 애를 썼다. 가능한 한 연탄재가 잘게 부수어지도록 모질게 말이다. 그들이 그토록 박살이 나야만 했던 까닭은 그들이 활활 불타오르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을 위한 살신성인이다. 인간들이 먹는 음식을 끓여 주는가 하면 그들의 등허리를 뜨끈하게 지져주던 그들이 이번에는 눈길에 행여 미끄러질세라 인간들의 발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그 덕에 살얼음이 낀 겨울날의 골목길도 든든하기만 했고 하염없이 눈이 퍼붓던 언덕길도 가뿐하게 오르지 않았던가.

그뿐 아니었을 것이다. 제 아무리 라면 맛이 어쩌고 하지만 라면은 연탄불에 끓여야 하고 군밤이나 오징어는 그 위에서라야 제 맛으로 알맞게 굽힌다. 또 흉흉한 세상 살다 지친 어른들이 불콰하게 취한 채 골목을 걷다가 온 울분을 그에게 퍼 부으며 발로 걷어차곤 했으니 그는 그저 사람들에게 봉사만 하는 꼴이다. 요즈음이 그렇다. 골목에 연탄재라도 나와 있으면 이래저래 비틀린 심사를 그에게 쏟아 놓고 싶다. 불이 채 꺼지지 않은 것이면 그 위에 실례를 하고 싶고 바짝 타고 남은 것이면 나 또한 한 번쯤 걷어차고 싶기만 하다. 그렇기에 그는 언뜻 보면 이리저리 사람에게 치이는 하찮은 신세 같지만 세상에 나와서 요모조모 그리도 쓸모가 많은 것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만하면 그의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비록 사진에 보이는 연탄재 중 서넛은 내 발에 채여서 깨지긴 했지만 세상에 나와 그만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알뜰하고 살뜰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깨뜨려 다른 이들에게 소용이 닿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행복이니까 말이다. 


글 | 이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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