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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파주에 있는 친구네 놀러 갔다. 고즈넉한 마을에 오래된 아파트가 운치 있어 나도 모르게 그곳에 사는 친구가 부러웠다. 부러우면 이사 오라는 친구의 말에 웃었다.

나는 지금 파주에 있다.

우연히 들렀던 마을이 마음에 들어 덜컥 40년 가까이 지낸 서울을 정리하고 경기도민이 되었다. 서울 집을 정리하면서 알았다. 내게 마지막 남은 기득권(?)이 서울에 집이 있다는 사실이란 걸 말이다. 혼자 준비해야 하는 노후가 버젓이 기다리고 있고 무엇보다 저임금 전문직 노동자란 현실을 무시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내 결정이 충동적이라고 했고 나도 문득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복잡한 서울을 떠나 한가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싶은 마음이 낯선 마을로 날 안내했다. 지금도 내 선택을 언제쯤 후회할지 궁금하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창공을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를 보았다. 볼록하고 귀여운 배를 보이며 떼를 지어 차례로 비행에 나선 그들을 보면서 서울살이를 고집했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불편을 겪으면서 얼마나 게으른 문명인이 되었는지 실감했고 40분에 한 대씩 지나가는 마을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동동대며 보낸다.

주민센터가 모두 집 근처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느긋한 마음가짐이 내 시간의 축이 될 것을 알았다. 전입 신고하러 읍내에 가던 날, 마을버스 승객들이 가는 곳을 아는 기사님과 장단콩밭이 신기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무상 마스크 중복 수령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마스크를 단단하게 고쳐 쓰는 공무원을 만나고 난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40분 기다리며 나는 급할 게 없는 한량처럼 쏘다니다가 목이 늘어진 양말처럼 앉아 읍내 풍경을 관찰했다.

모든 잡무를 처리하는데 하루 반나절을 쓰고 느낀 사실은, 온라인으로 3분이면 끝난다는 거. 우정과 자본의 힘으로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사람은 왜 둥지를 트는가, 라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속내를 감춘 듯 보이지만 그 자체가 실체인 안개처럼 뿌연 투명함을 지닌 도시 파주. 내겐 너무 과분한 절경을 보여주고 가끔 우울을 조심하라고 말해주는 풍경들. 과소비를 자책하는 내게, 그간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여기라는 친구 말에 울컥했다. 운 좋게 대강 살아온 나에게 차고 넘치는 칭찬 같아서 부끄럽지만.

이사를 도와준 친구들과 수많은 청년노동자 그리고 콜센터 직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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