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태풍이 훼방을 놓은 첫 약속을 미루고 나흘 뒤 사진작업하는 선배와 만난 제주의 하늘, 정말 곱다. 바람도 가라앉았다. 오늘이 바로 영등할망이 택일해 준 날인가보다. ‘평화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새별오름’이다. 정월대보름날 오름 전체에 불을 놓는 축제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핏빛으로 물들었던 역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려 말 명나라로부터 제주의 좋은 말 2000필을 요구받은 고려 조정이 제주에서 말을 취하려 하자 제주의 몽골족 목호들은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 자신들의 황제였던 쿠빌라이가 풀어 키운 말을 명나라에 바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공민왕은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당시 제주 인구에 버금가는 2만5000여 명의 군사를 제주로 보냈다. 고려 출정군에 맞선 목호 세력에는 몽골족뿐만 아니라 그들과 제주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 제주인, 고려 관리의 잦은 수탈에 반감을 가진 제주민들이 다수 포함됐다. 한 달여 동안 전투가 계속됐고, 새별오름과 오름 앞의 ‘어림비’라고 불리는 드넓은 초원에서도 많은 제주민이 희생됐다. 그 아픈 역사의 현장에는 지금 또 다른 아픈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27홀 골프장과 고급 리조트가 들어선 것이다. 게다가 건너편엔 중국인 부자들을 겨냥한 분양형 콘도가 빼곡하다.
애월읍 납읍리 금산공원의 후박나무 군락
내가 환경운동을 시작했던 당시 제주의 중심현안은 단연코 골프장 건설을 포함한 관광개발 문제였다. 대규모 외지자본에 의한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제주민의 농지, 마을공동목장이 사라져 갔다. “20년 전 제주에 신혼여행 왔을 때 당시 제주도지사가 지금도 도지사를 하고 있다!”는 지인의 말이 새삼스럽다. 관료와 토호, 지역 기득권 세력의 동맹관계는 지금도 굳건하다. 국내 외지자본에서 최근 해외 중국자본으로 자본의 흐름만 바뀌었을 뿐 자본의 성격 또한 여전하다. 모진 자연환경과 수탈의 역사로 민란이 잦았던 제주는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겪고도 또 다시 자연의 착취와 개발이익의 유출이라는 고난과 수탈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별오름 정상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제주의 자연은 최고의 치유제이지만 그 자신은 파괴의 희생양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문득 ‘요즘 바깥나들이가 내키지 않았던 것도 이런 생각에 지칠까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또 잇따라 드는 생각. ‘나 참 삭막하구나!’ 깊이 숨을 쉬고 눈을 들어 멀리 보았다. 항상 의연한 한라산과 오름의 모습이 시야와 가슴을 채운다. 그곳이 개발의 힘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심한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떨림을 기억하면 소름이 돋는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러서겠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져본 적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도 못 써볼 지경으로 변하는 지역의 개발현안들에 더 집중력을 가지고 대응하고, 더 질기게 대응하겠다는 다짐이 단단해질 뿐이다.
새별오름 전경
요즘 애들이 말이 늘어 대화 아닌 대화하는 재미가 붙었다. 전부는 어렵겠지만 내 유년시절의 기억을 우리 아이들이 누리며 커가도록 하고 싶다. 아빠가 지킨 산과 들과 바다에서 아이들과 새까맣게 타도록 놀고 싶다. 오늘의 아이들과 내일의 아이들이 제주의 산과 물에 깃든 아픔이 아니라 제주의 아름다움을 먼저 보고 자라게 하고 싶다. 은빛물결 흔들린다. 억새 속에서 고요히 웃었다.
새별오름에 올라 한라산을 바라본다
가을 태풍이 훼방을 놓은 첫 약속을 미루고 나흘 뒤 사진작업하는 선배와 만난 제주의 하늘, 정말 곱다. 바람도 가라앉았다. 오늘이 바로 영등할망이 택일해 준 날인가보다. ‘평화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새별오름’이다. 정월대보름날 오름 전체에 불을 놓는 축제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핏빛으로 물들었던 역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려 말 명나라로부터 제주의 좋은 말 2000필을 요구받은 고려 조정이 제주에서 말을 취하려 하자 제주의 몽골족 목호들은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 자신들의 황제였던 쿠빌라이가 풀어 키운 말을 명나라에 바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공민왕은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당시 제주 인구에 버금가는 2만5000여 명의 군사를 제주로 보냈다. 고려 출정군에 맞선 목호 세력에는 몽골족뿐만 아니라 그들과 제주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 제주인, 고려 관리의 잦은 수탈에 반감을 가진 제주민들이 다수 포함됐다. 한 달여 동안 전투가 계속됐고, 새별오름과 오름 앞의 ‘어림비’라고 불리는 드넓은 초원에서도 많은 제주민이 희생됐다. 그 아픈 역사의 현장에는 지금 또 다른 아픈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27홀 골프장과 고급 리조트가 들어선 것이다. 게다가 건너편엔 중국인 부자들을 겨냥한 분양형 콘도가 빼곡하다.
애월읍 납읍리 금산공원의 후박나무 군락
내가 환경운동을 시작했던 당시 제주의 중심현안은 단연코 골프장 건설을 포함한 관광개발 문제였다. 대규모 외지자본에 의한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제주민의 농지, 마을공동목장이 사라져 갔다. “20년 전 제주에 신혼여행 왔을 때 당시 제주도지사가 지금도 도지사를 하고 있다!”는 지인의 말이 새삼스럽다. 관료와 토호, 지역 기득권 세력의 동맹관계는 지금도 굳건하다. 국내 외지자본에서 최근 해외 중국자본으로 자본의 흐름만 바뀌었을 뿐 자본의 성격 또한 여전하다. 모진 자연환경과 수탈의 역사로 민란이 잦았던 제주는 4·3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겪고도 또 다시 자연의 착취와 개발이익의 유출이라는 고난과 수탈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별오름 정상에서 그 생생한 현장을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제주의 자연은 최고의 치유제이지만 그 자신은 파괴의 희생양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문득 ‘요즘 바깥나들이가 내키지 않았던 것도 이런 생각에 지칠까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또 잇따라 드는 생각. ‘나 참 삭막하구나!’ 깊이 숨을 쉬고 눈을 들어 멀리 보았다. 항상 의연한 한라산과 오름의 모습이 시야와 가슴을 채운다. 그곳이 개발의 힘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심한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떨림을 기억하면 소름이 돋는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러서겠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져본 적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손도 못 써볼 지경으로 변하는 지역의 개발현안들에 더 집중력을 가지고 대응하고, 더 질기게 대응하겠다는 다짐이 단단해질 뿐이다.
새별오름 전경
요즘 애들이 말이 늘어 대화 아닌 대화하는 재미가 붙었다. 전부는 어렵겠지만 내 유년시절의 기억을 우리 아이들이 누리며 커가도록 하고 싶다. 아빠가 지킨 산과 들과 바다에서 아이들과 새까맣게 타도록 놀고 싶다. 오늘의 아이들과 내일의 아이들이 제주의 산과 물에 깃든 아픔이 아니라 제주의 아름다움을 먼저 보고 자라게 하고 싶다. 은빛물결 흔들린다. 억새 속에서 고요히 웃었다.
글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사진 | 이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