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대를 위하여[살대를 위하여 80] 달을 보다

1월 20일 밤에는 반달이 떴습니다. 달빛이 밝아 달의 푸른 힘줄까지 보였습니다. 이상한 일은 흰구름이 달을 가릴 때 오히려 달의 존재가 더욱 확실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구름은 가리고자 하나 달은 그때마다 더욱 빛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 5년을 가늠할 선거가 끝났습니다. 탈핵에서 4대강 재자연화까지 환경과 생명의 가치를 확장시킬 진보적인 정책들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들이 허무해졌습니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은 ‘태국에 4대강사업을 수출하려는데 환경NGO가 4대강사업을 태국 현지에서 비난’한다며 환경연합을 두고 ‘비애국, 반국가적 단체’라는 막말을 했습니다. 새 정부 인수위원회는 탈핵운동세력이 피땀으로 얻어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규제기능을 다시 옛 관할부처로 넘겼습니다. 이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름이 바뀐 전 정권의 과학기술부에 말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환경연합에 들씌우려던 비애국, 반국가단체의 혐의는 감사원이 ‘4대강사업은 총체적인 부실사업’이란 감사 결과를 내놓자 자승자박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수출에 실패하면 환경연합 때문이라고 변명하려던 계획이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새 정부는 4대강사업의 실패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려는 새 정부 의지의 일단입니다. 그런 의지는 4대강사업의 불편한 진실을 저들이 부인할 수 없게 만든 환경운동의 승리입니다. 핵발전의 안전규제기능이 무력화된 것은 이제 막 탈핵운동이 대중화되는 시점에서 뼈아픈 일입니다. 

가야 할 길이 더 잘 보입니다. 탈핵의 길에 만난 흰구름일 따름입니다. 구름이 달을 보는 일까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달이 거기 있는 걸 보았는데, 달이 없다 여길 수 있겠습니까. 달빛의 밝음을 더 잘 알 수 있게 할 뿐입니다. 가야 할 탈핵의 길이 있고 우리의 눈은 이미 거기 가 있는데 밤길일지라도 구름이 어떻게 우리 발길을 어지럽히겠습니까. 걷다 길 어두우면 고개 들어 하늘을 봅니다. 달이 빛나고 있습니다. 

탈핵의 길만 그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권, 복지, 여성, 경제민주화…… 평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민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시민운동의 길이 다 그러할 것입니다. 그것을 희망의 손발로 일구어갈 일입니다. 갈 길 아는 사람의 발걸음은 무겁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의 생각은 허무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달빛 밝아 어깨를 겯고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잘 보입니다. 연대의 손길 더욱 굳게 하고 우리는 길을 갑니다.

박현철 편집주간 parkhc@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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