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상 곳곳에서 자본과 권력의 성장추구 정책과 이윤추구 활동들이 사람과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에 맞서 지역민과 지역생태계를 지키려는 환경운동가들이 존재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불의한 폭력에 희생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오늘도 최전선에서 싸우는 환경영웅들의 이야기가 올해도 여섯 대륙에 타전됐다. 환경운동의 노벨상, 골드만환경상의 2015년 수상자들을 소개한다.
온두라스의 강 지킴이, 베르타 카세레스 Berta Cáceres 
온두라스의 데사(DESA) 사와 중국의 사이노하이드로(Sinohydro) 사는 합작으로 아구아 자르카 댐을 렌카족의 신성한 강, 구알카쿠 강에 건설하고자 했다. 이 댐은 철저히 ‘원주민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협약’을 위반한 개발사업으로, 댐 건설로 렌카족은 자신들의 땅에 대한 권리는 물론 생존에 필요한 자연의 혜택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베르타 카세라스(Berta Cáceres)는 불법벌목에 대항하고 부족민의 토지권과 생활 향상을 위해 일하는 <온두라스 대중주민의회>(National Council of Popular and Indigenous Organizations of Honduras)의 공동 설립자로서, 아구아 자르카 댐 건설 반대운동에 헌신했다. 그녀는 지역공동체 대표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부족의 여론을 전하고 지역의회를 댐 반대운동으로 이끌었다. 또한 아메리카인권위원회에 댐 개발이 불러오는 토착민 인권 유린 사건을 접수시키고 국제금융공사(IFC)와 세계은행(World bank) 투자부 같은 댐 개발사업에 자금을 대는 이들에게 사업이 가진 원주민 권리 침해와 환경 파괴들에 대해 알리고 비판했다.
건설사의 현장 진입을 봉쇄하는 주민경비체제를 만들어 무장한 사설경비업체의 폭력적 진압을 이겨내면서 카세라스와 그녀의 동료들은 댐 예정지 밖으로 건설장비들을 몰아냈다. 2013년 말 사이노하이드로 사는 데사 사에 계약 해지를 통고했다. 국제금융공사도 인권문제에 우려를 표하면서 지원을 철회했다. 현재까지 아구아 자르카 댐 건설사업은 중단상태다. 사회운동가에 대한 세계 제1의 살해율을 보이는 온두라스에서 카세레스의 승리는 온두라스를 넘어 남미 전역에서 무책임한 개발과 싸우는 환경운동가들의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캐나다 원주민공동체의 터전을 지켜낸 지도자, 마를린 벱티스테 Marilyn Baptiste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의 제니 그웨트인은 네미아 계곡 원주민 거주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지역 원주민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이 지역 숲과 호수, 시내, 큰뿔양, 회색곰, 연어, 무지개송어의 보호자로 살아왔다. 헌데, 이 지역은 거대한 금광, 동철광 지대이기도 해서 유명 광산업체인 TML사가 오랫동안 개발에 눈독을 들여왔다. 주정부는 2010년 1월, 연방정부의 사업환경영향평가가 개시되기 전에 TML사의 광산개발사업에 사업 승인을 내줬다.
마를린 벱티스테는 TML사가 맹렬하게 광산사업을 추진하던 때인 2008년 1월, 제니 그웨트인 지역 대표로 선출됐고 <책임있는 채굴을 요구하는 여성원주민들>(First Nations Women Advocating Responsible Mining)의 공동 설립자가 됐다. 그녀는 다양한 지역 원주민공동체 대표들과 원로들, 과학자들을 모아 여론을 조직하고 대상지 현황 청취자료를 캐나다 환경영향평가원(CEAA) 에 제출했다. CEAA의 결론에 주목하여, 연방정부는 2010년 11월 광산개발사업을 반려했다. 주가는 곤두박질 쳤지만, TML사는 광산개발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TML사는 2011년 수정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피쉬호수 지역으로 중장비를 들여왔다. 뱁티스테는 광산개발예정지 접근로 단독 봉쇄에 나섰다. 그리고 공동체의 땅으로 향하는 트럭과 중장비들의 이동통로를 용감하게 막아섰다. 2011년 12월 브리티쉬 콜롬비아 주 고등법원은 TML사가 낸 ‘원주민들이 광개발예정지 통로를 막는 일을 중단시켜달라!’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더 나아가 TML사에게 개발 예정지의 도로 건설, 숲 벌목 금지명령을 내렸다. 연방정부도 광산개발사업을 다시 기각했다.
뱁티스테와 제니 그웨트인협의회 동료들은 현재 피쉬 호수를 비롯한 일대 지역을 영구적으로 지키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원주민들의 문화와 친환경적 정서를 반영하지 않는 파괴적인 산업활동에 반대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최근 캐나다 대법원은 43만 에이커의 땅을 원주민의 소유로 확정판결했다. 대법원의 역사적인 결정은 원주민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들의 터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선례가 됐다.
아이티의 바다 수호자, 진 위너 Jean Wiener

아이티는 맹그로브숲과 연안 암초대에서 살아가는 해양생물들의 놀라운 종다양성의 보고이다. 또한 80퍼센트의 인구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극도의 빈곤에 떠밀려 많은 아이티인들은 남획에 생계를 의존한다. 불법적으로 신탄을 만들어 팔려고 지역민들이 맹그로브숲을 벌목하고 건축자재를 확보하려고 산호초를 잘라내자 어장은 더욱 황폐화됐다. 연안 맹그로브 숲 지대의 사막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맹그로브 숲은 폭풍해일을 막아줄 뿐 아니라 열대림의 5배에 달하는 탄소흡수력을 가졌기 때문에 맹그로브 숲의 파괴는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에 취약한 섬나라들의 미래를 더욱 심각하게 위협한다.
진 위너(Jean Wiener)의 부모들은 그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유학을 보냈지만 의학학위 대신 해양생태학 학위를 받고 돌아와, 1992년 <해양생물 보호 재단>(Foundation for the Protection of Marine Biodiversity)를 설립했다. 진 위너와 그의 동료들은 사회경제적으로 건강한 이윤창출이 연안생태계를 보호하면서 가능하다는 사실로 연안 공동체의 주민들과 정부를 설득해 카리브해 연안국가들 가운데 공식적인 해양보호수역(MPAs)없는 유일한 국가였던 아이티의 현실을 변화시켰다. 2013년 6월 아이티는 국가 최초의 MPA를 남서부 연안에 지정했고 그해 12월 북동부 연안에 두번째 보호지역을 지정했다. 진 위너는 현재 2개의 보호구역이 단지 종이 위의 계획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보호받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공동체와 함께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지속가능 어업의 선각자, 하워드 우드 Howard Wood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강 하구는 청어, 대구, 볼락, 가지미가 풍부한 곳으로 유명했다. 소규모 전통어업은 클라이드 강 하구와 인근 애런 섬 유역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생계수단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강력한 수산업계의 이윤 추구를 위한 지속적인 로비에 의해 영국 정부는 저인망 어업 금지법 등 기존의 다양한 보호정책을 철회했다. 이로 인해 순식간에 연안어업은 붕괴했고 곧 남은 수산자원인 가리비와 참새우를 남획하는 일이 벌어졌다. 업자들은 가리비 저인망으로 무차별적으로 반복적으로 해저를 훑었다. 그들은 해저에 상처를 입히고 어류와 조개류의 중요한 서식지인 산호와 갈조류 군락을 황폐화시켰다.
무책임한 어업행위가 불러온 참상을 봐왔던 하워드 우드는 1989년 뉴질랜드 여행길에 본 해양보호구역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고, 애런 섬 유역에 그와 유사한 해양보호구역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워드와 동료들은 개인 저축을 깨서 해양보호구역 설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95년 지역 해양환경보호에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의 그룹인 <애런해저신탁협회>(Community of Arran Seabed Trust)가 설립됐다. 하워드 우드는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 싸우는 투사가 되어 스코틀랜드 최초의 어업금지수역을 설치하기 위한 풀뿌리운동을 시작했다. 장장 12년간 지역 어민들로부터 스코틀랜드 의회 의원들까지 조직하고 설득하면서 마침내 2008년 어업금지수역을 설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후 그는 지역 잠수부들로 하여금 해안선 모니터링을 돕도록 설득하고, 어민들이 새로운 보호법을 지키도록 활동했다. 그러한 노력이 수년만에 어린 가리비와 산호, 해초류의 극적인 회복을 불러왔다.
하워드 우드는 2012년 COAST와 함께 애런 섬 남부 바다에 해양보호구역 설치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한 뒤 이 의제를 스코틀랜드의 최우선 의제로 만들기 위해 시민들을 조직해 맹렬히 활동했다. 2014년 6월 스코틀랜드 정부는 국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공동체 주도로 만들어진 애런 남부 해양보호수역을 포함한 30개의 새로운 해양보호구역 설치를 발표했다. 하워드 우드와 COAST는 현재 공동체의 바다에 대한 권리와 그들의 바다가 파괴적인 어업행위로부터 보호받을 합법적 권리를 만드는 작업을 정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미얀마의 강과 민주주의 지킴이, 밍 쪼 Myint Zaw

미얀마 군사독재정부가 추진해온 일련의 환경파괴적 개발사업의 하나가 중국 자본과 합작한 6000메가와트급 거대 수력 댐인 밋송 댐 개발사업이다. 이라와디 강의 분기점에 세워지는 이 댐은 50개 마을 1만8000명의 이주민을 발생시키고 지역의 문화적 심장지대를 수몰시켜, 이 지역의 풍부한 생물종다양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이라와디 강 하류의 수백만 명의 지역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생산될 전력의 90퍼센트는 중국으로 송전될 처지였다.
이라와디 강 삼각주 지역의 시골 출신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밍 쪼는 유학에서 돌아온 2008년 인도주의 재단을 세웠지만 2009년 재단의 활동목표를 밋송 댐 건설 저지를 중점과제로 삼은 환경단체로 바꾸었다. 밍쪼는 이라와디 강의 중요성과 밋송 댐의 위험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고취하는 일련의 예술 전시회를 조직했다. 엄격한 정부의 정보 통제와 감시가 존재하는 미얀마의 현실에서, 밍쪼와 그의 동료들은 정부의 검열과 위협을 두려워 않고 비합법 인쇄물을 제작해 시민사회에 퍼뜨렸다. 예술전시회 시리즈는 종내에 국민운동으로 변화했다. 예술가들이 강에 대한 시와 노래를 짓고 시민들은 밋송 댐에 대한 팜플렛과 DVD를 자신의 마을에 전파했다.
밋송 댐 반대 이라와디 강 살리기 운동은 대형 댐 건설과 외국의 환경파괴적 투자에 대한 의문을 사회화시켰고 이 의문에 공감한 곳에는 2011년 새로 구성된 정부의 최상층부인 부통령실까지 있었다. 2011년 미얀마의 틴 세인 대통령은 밋송 댐 건설을 중단하고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다시 이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밋송 댐의 운명은 2015년 말 선출될 미얀마 차기 대통령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밍 쪼와 그의 동료들의 헌신에 힘입어 널리 퍼진 댐의 위험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고양된 인식 때문에 정부는 더 이상 강을 죽이는 밀실정책을 행하기 어렵게 됐다.
케냐의 노동자들을 납중독에서 구한 모성, 필리스 오미도 Phyllis Omido

필리스 오미도는 케냐 몸바사 시의 빈민촌 지역 인근의 납 제련공장에서 지역사회 담당자로 일하는 싱글맘이었다. 그녀가 공장에서 일한 지 3개월이 됐을 때 오미도의 어린 아들이 크게 아파 입원하게 됐다. 아이의 병인을 찾지 못하던 의사는 아이의 혈액검사를 한 뒤 혈중 납농도가 매우 높고, 그것이 엄마의 모유에 의해 기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미도의 아들 치료비는 곧 오미도가 감당하기 어려운 2000달러 이상으로 부풀어올랐다. 오미도는 공장에 병원비를 요구했다. 회사는 아들의 납중독 사실을 외부에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치료비를 댔다. 그러나 오미도는 공장에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미도는 <정의, 거버넌스, 환경행동센터>(Center of Justice, Governance, and Environmental Action)를 설립해 활동하면서 정부기구에 지역민들의 납중독 상태를 조사하라고 설득했다. 그들이 조사한 한 아이의 혈중납농도는 혈액 100밀리그램당 37마이크로그램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치였다. 이는 미국 아이들 혈중 납농도의 거의 2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토양분석결과 제련공장이 가동된 시기인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거의 10배로 뛰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점증하는 지역공동체의 압력과 오미도와 CJGEA의 지칠줄 모르는 공장 폐쇄 캠페인에 직면하여 제련공장은 2014년 1월 가동을 중단했다. 오미도는 그 대가를 치뤘다. 2014년 4월 불법집회 조직과 폭력교사 혐의로 체포돼 투옥됐다. 석방 이후에도 오미도는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공장 폐쇄 이래 케냐의 상원 건강보건위원회 위원들은 제련공장 구역을 탐방했다. 현장을 본 그들은 오싹해져서 모든 지역민들의 건강조사를 실시하고 현장의 오염실태를 정화할 것을 선언했다. 오미도는 선언된 사안을 실천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계속하면서 ‘시민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케냐 헌법의 규정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계속 펼치고 있다.
지구상 곳곳에서 자본과 권력의 성장추구 정책과 이윤추구 활동들이 사람과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에 맞서 지역민과 지역생태계를 지키려는 환경운동가들이 존재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불의한 폭력에 희생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오늘도 최전선에서 싸우는 환경영웅들의 이야기가 올해도 여섯 대륙에 타전됐다. 환경운동의 노벨상, 골드만환경상의 2015년 수상자들을 소개한다.
온두라스의 강 지킴이, 베르타 카세레스 Berta Cáceres
온두라스의 데사(DESA) 사와 중국의 사이노하이드로(Sinohydro) 사는 합작으로 아구아 자르카 댐을 렌카족의 신성한 강, 구알카쿠 강에 건설하고자 했다. 이 댐은 철저히 ‘원주민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협약’을 위반한 개발사업으로, 댐 건설로 렌카족은 자신들의 땅에 대한 권리는 물론 생존에 필요한 자연의 혜택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베르타 카세라스(Berta Cáceres)는 불법벌목에 대항하고 부족민의 토지권과 생활 향상을 위해 일하는 <온두라스 대중주민의회>(National Council of Popular and Indigenous Organizations of Honduras)의 공동 설립자로서, 아구아 자르카 댐 건설 반대운동에 헌신했다. 그녀는 지역공동체 대표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부족의 여론을 전하고 지역의회를 댐 반대운동으로 이끌었다. 또한 아메리카인권위원회에 댐 개발이 불러오는 토착민 인권 유린 사건을 접수시키고 국제금융공사(IFC)와 세계은행(World bank) 투자부 같은 댐 개발사업에 자금을 대는 이들에게 사업이 가진 원주민 권리 침해와 환경 파괴들에 대해 알리고 비판했다.
건설사의 현장 진입을 봉쇄하는 주민경비체제를 만들어 무장한 사설경비업체의 폭력적 진압을 이겨내면서 카세라스와 그녀의 동료들은 댐 예정지 밖으로 건설장비들을 몰아냈다. 2013년 말 사이노하이드로 사는 데사 사에 계약 해지를 통고했다. 국제금융공사도 인권문제에 우려를 표하면서 지원을 철회했다. 현재까지 아구아 자르카 댐 건설사업은 중단상태다. 사회운동가에 대한 세계 제1의 살해율을 보이는 온두라스에서 카세레스의 승리는 온두라스를 넘어 남미 전역에서 무책임한 개발과 싸우는 환경운동가들의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캐나다 원주민공동체의 터전을 지켜낸 지도자, 마를린 벱티스테 Marilyn Baptiste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의 제니 그웨트인은 네미아 계곡 원주민 거주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지역 원주민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이 지역 숲과 호수, 시내, 큰뿔양, 회색곰, 연어, 무지개송어의 보호자로 살아왔다. 헌데, 이 지역은 거대한 금광, 동철광 지대이기도 해서 유명 광산업체인 TML사가 오랫동안 개발에 눈독을 들여왔다. 주정부는 2010년 1월, 연방정부의 사업환경영향평가가 개시되기 전에 TML사의 광산개발사업에 사업 승인을 내줬다.
마를린 벱티스테는 TML사가 맹렬하게 광산사업을 추진하던 때인 2008년 1월, 제니 그웨트인 지역 대표로 선출됐고 <책임있는 채굴을 요구하는 여성원주민들>(First Nations Women Advocating Responsible Mining)의 공동 설립자가 됐다. 그녀는 다양한 지역 원주민공동체 대표들과 원로들, 과학자들을 모아 여론을 조직하고 대상지 현황 청취자료를 캐나다 환경영향평가원(CEAA) 에 제출했다. CEAA의 결론에 주목하여, 연방정부는 2010년 11월 광산개발사업을 반려했다. 주가는 곤두박질 쳤지만, TML사는 광산개발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TML사는 2011년 수정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피쉬호수 지역으로 중장비를 들여왔다. 뱁티스테는 광산개발예정지 접근로 단독 봉쇄에 나섰다. 그리고 공동체의 땅으로 향하는 트럭과 중장비들의 이동통로를 용감하게 막아섰다. 2011년 12월 브리티쉬 콜롬비아 주 고등법원은 TML사가 낸 ‘원주민들이 광개발예정지 통로를 막는 일을 중단시켜달라!’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더 나아가 TML사에게 개발 예정지의 도로 건설, 숲 벌목 금지명령을 내렸다. 연방정부도 광산개발사업을 다시 기각했다.
뱁티스테와 제니 그웨트인협의회 동료들은 현재 피쉬 호수를 비롯한 일대 지역을 영구적으로 지키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원주민들의 문화와 친환경적 정서를 반영하지 않는 파괴적인 산업활동에 반대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최근 캐나다 대법원은 43만 에이커의 땅을 원주민의 소유로 확정판결했다. 대법원의 역사적인 결정은 원주민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들의 터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선례가 됐다.
아이티의 바다 수호자, 진 위너 Jean Wiener
아이티는 맹그로브숲과 연안 암초대에서 살아가는 해양생물들의 놀라운 종다양성의 보고이다. 또한 80퍼센트의 인구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극도의 빈곤에 떠밀려 많은 아이티인들은 남획에 생계를 의존한다. 불법적으로 신탄을 만들어 팔려고 지역민들이 맹그로브숲을 벌목하고 건축자재를 확보하려고 산호초를 잘라내자 어장은 더욱 황폐화됐다. 연안 맹그로브 숲 지대의 사막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맹그로브 숲은 폭풍해일을 막아줄 뿐 아니라 열대림의 5배에 달하는 탄소흡수력을 가졌기 때문에 맹그로브 숲의 파괴는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에 취약한 섬나라들의 미래를 더욱 심각하게 위협한다.
진 위너(Jean Wiener)의 부모들은 그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유학을 보냈지만 의학학위 대신 해양생태학 학위를 받고 돌아와, 1992년 <해양생물 보호 재단>(Foundation for the Protection of Marine Biodiversity)를 설립했다. 진 위너와 그의 동료들은 사회경제적으로 건강한 이윤창출이 연안생태계를 보호하면서 가능하다는 사실로 연안 공동체의 주민들과 정부를 설득해 카리브해 연안국가들 가운데 공식적인 해양보호수역(MPAs)없는 유일한 국가였던 아이티의 현실을 변화시켰다. 2013년 6월 아이티는 국가 최초의 MPA를 남서부 연안에 지정했고 그해 12월 북동부 연안에 두번째 보호지역을 지정했다. 진 위너는 현재 2개의 보호구역이 단지 종이 위의 계획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보호받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공동체와 함께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지속가능 어업의 선각자, 하워드 우드 Howard Wood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강 하구는 청어, 대구, 볼락, 가지미가 풍부한 곳으로 유명했다. 소규모 전통어업은 클라이드 강 하구와 인근 애런 섬 유역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생계수단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강력한 수산업계의 이윤 추구를 위한 지속적인 로비에 의해 영국 정부는 저인망 어업 금지법 등 기존의 다양한 보호정책을 철회했다. 이로 인해 순식간에 연안어업은 붕괴했고 곧 남은 수산자원인 가리비와 참새우를 남획하는 일이 벌어졌다. 업자들은 가리비 저인망으로 무차별적으로 반복적으로 해저를 훑었다. 그들은 해저에 상처를 입히고 어류와 조개류의 중요한 서식지인 산호와 갈조류 군락을 황폐화시켰다.
무책임한 어업행위가 불러온 참상을 봐왔던 하워드 우드는 1989년 뉴질랜드 여행길에 본 해양보호구역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고, 애런 섬 유역에 그와 유사한 해양보호구역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워드와 동료들은 개인 저축을 깨서 해양보호구역 설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95년 지역 해양환경보호에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의 그룹인 <애런해저신탁협회>(Community of Arran Seabed Trust)가 설립됐다. 하워드 우드는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 싸우는 투사가 되어 스코틀랜드 최초의 어업금지수역을 설치하기 위한 풀뿌리운동을 시작했다. 장장 12년간 지역 어민들로부터 스코틀랜드 의회 의원들까지 조직하고 설득하면서 마침내 2008년 어업금지수역을 설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후 그는 지역 잠수부들로 하여금 해안선 모니터링을 돕도록 설득하고, 어민들이 새로운 보호법을 지키도록 활동했다. 그러한 노력이 수년만에 어린 가리비와 산호, 해초류의 극적인 회복을 불러왔다.
하워드 우드는 2012년 COAST와 함께 애런 섬 남부 바다에 해양보호구역 설치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한 뒤 이 의제를 스코틀랜드의 최우선 의제로 만들기 위해 시민들을 조직해 맹렬히 활동했다. 2014년 6월 스코틀랜드 정부는 국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공동체 주도로 만들어진 애런 남부 해양보호수역을 포함한 30개의 새로운 해양보호구역 설치를 발표했다. 하워드 우드와 COAST는 현재 공동체의 바다에 대한 권리와 그들의 바다가 파괴적인 어업행위로부터 보호받을 합법적 권리를 만드는 작업을 정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미얀마의 강과 민주주의 지킴이, 밍 쪼 Myint Zaw
미얀마 군사독재정부가 추진해온 일련의 환경파괴적 개발사업의 하나가 중국 자본과 합작한 6000메가와트급 거대 수력 댐인 밋송 댐 개발사업이다. 이라와디 강의 분기점에 세워지는 이 댐은 50개 마을 1만8000명의 이주민을 발생시키고 지역의 문화적 심장지대를 수몰시켜, 이 지역의 풍부한 생물종다양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이라와디 강 하류의 수백만 명의 지역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생산될 전력의 90퍼센트는 중국으로 송전될 처지였다.
이라와디 강 삼각주 지역의 시골 출신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밍 쪼는 유학에서 돌아온 2008년 인도주의 재단을 세웠지만 2009년 재단의 활동목표를 밋송 댐 건설 저지를 중점과제로 삼은 환경단체로 바꾸었다. 밍쪼는 이라와디 강의 중요성과 밋송 댐의 위험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고취하는 일련의 예술 전시회를 조직했다. 엄격한 정부의 정보 통제와 감시가 존재하는 미얀마의 현실에서, 밍쪼와 그의 동료들은 정부의 검열과 위협을 두려워 않고 비합법 인쇄물을 제작해 시민사회에 퍼뜨렸다. 예술전시회 시리즈는 종내에 국민운동으로 변화했다. 예술가들이 강에 대한 시와 노래를 짓고 시민들은 밋송 댐에 대한 팜플렛과 DVD를 자신의 마을에 전파했다.
밋송 댐 반대 이라와디 강 살리기 운동은 대형 댐 건설과 외국의 환경파괴적 투자에 대한 의문을 사회화시켰고 이 의문에 공감한 곳에는 2011년 새로 구성된 정부의 최상층부인 부통령실까지 있었다. 2011년 미얀마의 틴 세인 대통령은 밋송 댐 건설을 중단하고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다시 이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밋송 댐의 운명은 2015년 말 선출될 미얀마 차기 대통령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밍 쪼와 그의 동료들의 헌신에 힘입어 널리 퍼진 댐의 위험성에 대한 시민사회의 고양된 인식 때문에 정부는 더 이상 강을 죽이는 밀실정책을 행하기 어렵게 됐다.
케냐의 노동자들을 납중독에서 구한 모성, 필리스 오미도 Phyllis Omido
필리스 오미도는 케냐 몸바사 시의 빈민촌 지역 인근의 납 제련공장에서 지역사회 담당자로 일하는 싱글맘이었다. 그녀가 공장에서 일한 지 3개월이 됐을 때 오미도의 어린 아들이 크게 아파 입원하게 됐다. 아이의 병인을 찾지 못하던 의사는 아이의 혈액검사를 한 뒤 혈중 납농도가 매우 높고, 그것이 엄마의 모유에 의해 기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미도의 아들 치료비는 곧 오미도가 감당하기 어려운 2000달러 이상으로 부풀어올랐다. 오미도는 공장에 병원비를 요구했다. 회사는 아들의 납중독 사실을 외부에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치료비를 댔다. 그러나 오미도는 공장에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미도는 <정의, 거버넌스, 환경행동센터>(Center of Justice, Governance, and Environmental Action)를 설립해 활동하면서 정부기구에 지역민들의 납중독 상태를 조사하라고 설득했다. 그들이 조사한 한 아이의 혈중납농도는 혈액 100밀리그램당 37마이크로그램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치였다. 이는 미국 아이들 혈중 납농도의 거의 2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토양분석결과 제련공장이 가동된 시기인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거의 10배로 뛰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점증하는 지역공동체의 압력과 오미도와 CJGEA의 지칠줄 모르는 공장 폐쇄 캠페인에 직면하여 제련공장은 2014년 1월 가동을 중단했다. 오미도는 그 대가를 치뤘다. 2014년 4월 불법집회 조직과 폭력교사 혐의로 체포돼 투옥됐다. 석방 이후에도 오미도는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공장 폐쇄 이래 케냐의 상원 건강보건위원회 위원들은 제련공장 구역을 탐방했다. 현장을 본 그들은 오싹해져서 모든 지역민들의 건강조사를 실시하고 현장의 오염실태를 정화할 것을 선언했다. 오미도는 선언된 사안을 실천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계속하면서 ‘시민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케냐 헌법의 규정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계속 펼치고 있다.
글 | 박현철 편집주간
사진 | 골드만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