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근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고문(이하 직책 생략)은 환경운동 30년 차가 넘은 강원도 지역 1세대 환경운동가이자 목회자다. 이 때문에 그의 삶 속엔 성서적 관점의 환경운동이 짙게 깔려 있다. 이것이 그가 자원 동원 능력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는 지방 소도시에서 환경운동을 오랫동안 지탱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환경운동의 씨앗을 척박한 환경에서 전파해왔다. ‘신념이 밥 먹여주진 않지만, 오래가게는 한다.’라는 말처럼, 장석근의 삶은 환경운동가에게 환경운동 철학과 신념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장석근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고문 Ⓒ함께사는길 이성수
핵폐기장 반대운동으로 시작한 환경운동 30년
1956년생인 장석근은 신학대학 졸업 후 1984년부터 지금까지 강원도 고성군 오봉 교회에서 40년 가까이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오봉 교회 부임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차편 하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당시 교회 신도는 20여 명 남짓이라 최저 생계비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봉급을 받았지만, 그는 외부 대형 교회 지원을 거부하고 교인들과 함께 자립적 목회 활동을 선택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주일이면 인근지역에서 오는 신도를 포함해 50~60명이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장석근의 첫 환경운동은 지역에서 벌어진 반핵운동이다. 1991년 고성군이 핵발전소 후보 지역으로 거론되더니 1992년엔 핵폐기장 후보 지역 중 하나로 발표됐다. 이 당시 장석근은 작은 교회 목회자 6명과 함께 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줄여서 ‘핵반사’를 구성해 지역주민과 함께 핵발전소, 핵폐기장, 송전탑 문제를 공부해가며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1993년 7월 핵폐기장 반대 집회에 당시 3만 명이 안 되는 고성군 주민 가운데 5천 명이 참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반핵운동을 계기로 환경운동의 필요성을 체감한 장석근은 곧바로 고성녹색사랑회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4년 청초호 매립 논란이 벌어지자 청초호 되살리기 시민모임 구성에 참여한 그는 쏟아지는 환경 사안에 따라 1995년부터 지역 환경운동연합 창립을 준비했다. 준비위원회 과정을 거쳐 1996년 9월 속초환경운동연합(이후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으로 전환) 창립 대회를 예정했다. 행사 준비를 위한 자료집 인쇄까지 다 마쳤지만, 당시 이른바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 벌어지면서 창립식을 한 달 연기해야 했다. 남북 접경지역이란 특수성이 그대로 드러난 일화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정치적 기회구조가 열리면서 전국적으로 시민운동단체가 속속 생겨나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강원 영동 지역엔 관변단체와 동호회 수준 단체뿐이었다. 그래서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은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민운동다운 시민운동단체를 개척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장석근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1996년 창립 후 첫 활동이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송전탑 반대 운동이었다. 강원도 지역 특성상 자연환경을 대규모로 훼손하는 개발 사업에 맞선 운동이 대부분이었다. 10년째 논란 중인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만 해도 그렇다. 좁은 지역에서는 행정기관과 개발업자의 입김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학연, 혈연, 지연으로 얽혀있어 운동의 대중적 확산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인적, 물적, 재정적 자원 동원이 어려운 가운데 상근 인력 한두 명으로 이런 상황에 맞서야 했기에 초창기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은 투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도 막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장석근은 “사실 환경 사안의 제일 끝에 가면 인간의 욕심이 남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욕심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그는 지난 30년 환경운동을 하면서 “속상한 게 더 많았던 것 같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본에 늘 밀려도 해야 하는 게 환경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그는 투쟁 중심에서 정책 대안 중심 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어 문화적 관점의 환경운동과 환경교육 강화와 소모임 활동화 등에도 중점을 두면서 지역 환경운동의 활력을 꾀하고자 했다.
성서적 관점의 환경운동가
감리교단에서 생태목회운동에도 앞장선 장석근은 환경운동을 성서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는 “환경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 중심적”이라면서 “나는 신앙생활 자체가 생명운동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숨 쉬고 사는 게 다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 창세기에 나와 있는 ‘땅을 정복하라(창세기 1장 28절)’라는 말을 사람들이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학자는 성경에 기록된 정복이 단순히 지배, 착취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잘 관리하라는 뜻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이 자연을 잘 관리해야 한다.’라는 해석 역시 배격한다. “그건 서양의 해석방법이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돌봐. 자연이 우리를 돌보지.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 안에 인간이 있는 거다. 그런 개념으로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구원’이란 종교적 표현을 우리말로 ‘생명 살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 암수 동물들을 짝 지어 태운 것은 그들 역시 신의 생명 살림의 대상이었음을 뜻한다. 그는 “자연은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석근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끝없은 탐욕 문제에 대해 ‘새처럼 살자’를 화두로 정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마태복음 6장 26절)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 의미만 찾지 새 자체를 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새는 뭔가를 가지고 있으면 날 수가 없다. 자기 먹을 거만 먹지 쌓아두지 않고, 옷 한벌로 평생을 산다. 집도 새끼를 키워낼 만큼만 짓는다.”라면서 “자본주의 시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좋은 덕목은 새처럼 사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장석근은 지난 30년 환경운동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성냥팔이 소녀가 쓸쓸히 죽은 이유가 뭔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깨를 들이대고 ‘얘, 집에 가서 자’ 이렇게만 얘기해 줬어도 걔는 얼어 죽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사회적 생명 살림 관점이 필요한데, 환경운동을 통해 사회적 생명 살림을 실천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그는 환경운동이 자본에 계속 밀리면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사회적 제동을 걸고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어떤 거를 결론을 잘 지어야만 성공이 아니라 그런 과정 중에 멈춰 설 수 있게 하는 그런 요인들이 환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장석근은 환경운동연합에 대한 애정도 깊다. 그는 환경운동연합의 지난 30년을 상징하는 인물로 최열을 꼽았다. 그는 “최열 사무총장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역량이 (환경운동연합을) 좌우했다.”라면서 최열 사무총장 시대를 기준으로 환경운동연합을 전후로 나눌 수 있다고 봤다.
개인 역량이 조직 발전을 리드한 이후의 시간대에 미래 비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서 환경운동연합의 활동이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성장과 개발 지향 언론과 여론이 강해진 영향과 더불어 환경운동연합이 세대 변화에 따른 문화와 가치의 변화에 맞게 운동을 준비해 나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우리는 식구”

지난 2021년 속초시가 영랑호를 개발하겠다고 하자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영랑호를 그대로 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함께사는길 이성수
그는 환경운동연합의 미래를 위해 운동의 변화를 주문한다. “지금 우리 회원들도 나이 많은 회원들이 많다. 젊은 회원들은 별로 없다. 옛날 같은 조직과 운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그는 우선 “환경운동연합 안팎에서 젊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우리가 아니라 걔네들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중앙과 지역 환경운동연합 모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환경운동의 미션에 충실한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라고도 덧붙였다. 이어 그는 중앙 단위에서 정책, 연구 단위를 활성화해서 어려운 지역을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장석근은 젊은 활동가들에게 “우리는 옳다는 것 때문에, 옳은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너무 여유가 좀 없었다.”라면서 “여유롭게 좀 깊이 생각하고, 재밌게 하면서 멀리 보고, 전문가들도 찾아보고, 자기 성찰도 하는 그런 과정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활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연대란 꼭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환경운동연합 구성원을 “우리는 식구”라고 말하는 장석근은 성서적 관점의 강인한 신념으로 30년 넘게 환경운동을 벌여왔다. 이기는 싸움보다 자본과 권력에 밀린 싸움이 잦았다. 그런데도 그는 지구라는 행성의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교회 안과 교회 밖 사회의 생명 살림을 위해 사회적 제동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그것을 환경운동가의 숙명이라고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과 권력의 질주를 멈춰 세우는 지속적인 운동을 강조하면서 그는 ‘새처럼 살자’를 주문했다. 다음 세대 젊은 활동가들에게는 “우리 세대와 달리 재밌고, 여유롭게 운동하길 바란다.”고 주문하면서 환경운동연합도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장석근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고문(이하 직책 생략)은 환경운동 30년 차가 넘은 강원도 지역 1세대 환경운동가이자 목회자다. 이 때문에 그의 삶 속엔 성서적 관점의 환경운동이 짙게 깔려 있다. 이것이 그가 자원 동원 능력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는 지방 소도시에서 환경운동을 오랫동안 지탱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환경운동의 씨앗을 척박한 환경에서 전파해왔다. ‘신념이 밥 먹여주진 않지만, 오래가게는 한다.’라는 말처럼, 장석근의 삶은 환경운동가에게 환경운동 철학과 신념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장석근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고문 Ⓒ함께사는길 이성수
핵폐기장 반대운동으로 시작한 환경운동 30년
1956년생인 장석근은 신학대학 졸업 후 1984년부터 지금까지 강원도 고성군 오봉 교회에서 40년 가까이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오봉 교회 부임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차편 하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당시 교회 신도는 20여 명 남짓이라 최저 생계비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봉급을 받았지만, 그는 외부 대형 교회 지원을 거부하고 교인들과 함께 자립적 목회 활동을 선택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주일이면 인근지역에서 오는 신도를 포함해 50~60명이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장석근의 첫 환경운동은 지역에서 벌어진 반핵운동이다. 1991년 고성군이 핵발전소 후보 지역으로 거론되더니 1992년엔 핵폐기장 후보 지역 중 하나로 발표됐다. 이 당시 장석근은 작은 교회 목회자 6명과 함께 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줄여서 ‘핵반사’를 구성해 지역주민과 함께 핵발전소, 핵폐기장, 송전탑 문제를 공부해가며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1993년 7월 핵폐기장 반대 집회에 당시 3만 명이 안 되는 고성군 주민 가운데 5천 명이 참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반핵운동을 계기로 환경운동의 필요성을 체감한 장석근은 곧바로 고성녹색사랑회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4년 청초호 매립 논란이 벌어지자 청초호 되살리기 시민모임 구성에 참여한 그는 쏟아지는 환경 사안에 따라 1995년부터 지역 환경운동연합 창립을 준비했다. 준비위원회 과정을 거쳐 1996년 9월 속초환경운동연합(이후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으로 전환) 창립 대회를 예정했다. 행사 준비를 위한 자료집 인쇄까지 다 마쳤지만, 당시 이른바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 벌어지면서 창립식을 한 달 연기해야 했다. 남북 접경지역이란 특수성이 그대로 드러난 일화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정치적 기회구조가 열리면서 전국적으로 시민운동단체가 속속 생겨나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강원 영동 지역엔 관변단체와 동호회 수준 단체뿐이었다. 그래서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은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민운동다운 시민운동단체를 개척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장석근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1996년 창립 후 첫 활동이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송전탑 반대 운동이었다. 강원도 지역 특성상 자연환경을 대규모로 훼손하는 개발 사업에 맞선 운동이 대부분이었다. 10년째 논란 중인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만 해도 그렇다. 좁은 지역에서는 행정기관과 개발업자의 입김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학연, 혈연, 지연으로 얽혀있어 운동의 대중적 확산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인적, 물적, 재정적 자원 동원이 어려운 가운데 상근 인력 한두 명으로 이런 상황에 맞서야 했기에 초창기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은 투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도 막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장석근은 “사실 환경 사안의 제일 끝에 가면 인간의 욕심이 남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욕심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그는 지난 30년 환경운동을 하면서 “속상한 게 더 많았던 것 같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본에 늘 밀려도 해야 하는 게 환경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그는 투쟁 중심에서 정책 대안 중심 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어 문화적 관점의 환경운동과 환경교육 강화와 소모임 활동화 등에도 중점을 두면서 지역 환경운동의 활력을 꾀하고자 했다.
성서적 관점의 환경운동가
감리교단에서 생태목회운동에도 앞장선 장석근은 환경운동을 성서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는 “환경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 중심적”이라면서 “나는 신앙생활 자체가 생명운동이라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숨 쉬고 사는 게 다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 창세기에 나와 있는 ‘땅을 정복하라(창세기 1장 28절)’라는 말을 사람들이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학자는 성경에 기록된 정복이 단순히 지배, 착취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잘 관리하라는 뜻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이 자연을 잘 관리해야 한다.’라는 해석 역시 배격한다. “그건 서양의 해석방법이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돌봐. 자연이 우리를 돌보지.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 안에 인간이 있는 거다. 그런 개념으로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구원’이란 종교적 표현을 우리말로 ‘생명 살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 암수 동물들을 짝 지어 태운 것은 그들 역시 신의 생명 살림의 대상이었음을 뜻한다. 그는 “자연은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 관점에서 자연을 바라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석근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끝없은 탐욕 문제에 대해 ‘새처럼 살자’를 화두로 정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마태복음 6장 26절)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 의미만 찾지 새 자체를 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새는 뭔가를 가지고 있으면 날 수가 없다. 자기 먹을 거만 먹지 쌓아두지 않고, 옷 한벌로 평생을 산다. 집도 새끼를 키워낼 만큼만 짓는다.”라면서 “자본주의 시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좋은 덕목은 새처럼 사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장석근은 지난 30년 환경운동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성냥팔이 소녀가 쓸쓸히 죽은 이유가 뭔가?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깨를 들이대고 ‘얘, 집에 가서 자’ 이렇게만 얘기해 줬어도 걔는 얼어 죽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사회적 생명 살림 관점이 필요한데, 환경운동을 통해 사회적 생명 살림을 실천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그는 환경운동이 자본에 계속 밀리면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사회적 제동을 걸고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어떤 거를 결론을 잘 지어야만 성공이 아니라 그런 과정 중에 멈춰 설 수 있게 하는 그런 요인들이 환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장석근은 환경운동연합에 대한 애정도 깊다. 그는 환경운동연합의 지난 30년을 상징하는 인물로 최열을 꼽았다. 그는 “최열 사무총장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역량이 (환경운동연합을) 좌우했다.”라면서 최열 사무총장 시대를 기준으로 환경운동연합을 전후로 나눌 수 있다고 봤다.
개인 역량이 조직 발전을 리드한 이후의 시간대에 미래 비전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서 환경운동연합의 활동이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성장과 개발 지향 언론과 여론이 강해진 영향과 더불어 환경운동연합이 세대 변화에 따른 문화와 가치의 변화에 맞게 운동을 준비해 나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우리는 식구”
지난 2021년 속초시가 영랑호를 개발하겠다고 하자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영랑호를 그대로 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함께사는길 이성수
그는 환경운동연합의 미래를 위해 운동의 변화를 주문한다. “지금 우리 회원들도 나이 많은 회원들이 많다. 젊은 회원들은 별로 없다. 옛날 같은 조직과 운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그는 우선 “환경운동연합 안팎에서 젊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시대는 우리가 아니라 걔네들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중앙과 지역 환경운동연합 모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환경운동의 미션에 충실한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라고도 덧붙였다. 이어 그는 중앙 단위에서 정책, 연구 단위를 활성화해서 어려운 지역을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장석근은 젊은 활동가들에게 “우리는 옳다는 것 때문에, 옳은 일을 한다는 것 때문에 너무 여유가 좀 없었다.”라면서 “여유롭게 좀 깊이 생각하고, 재밌게 하면서 멀리 보고, 전문가들도 찾아보고, 자기 성찰도 하는 그런 과정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활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연대란 꼭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환경운동연합 구성원을 “우리는 식구”라고 말하는 장석근은 성서적 관점의 강인한 신념으로 30년 넘게 환경운동을 벌여왔다. 이기는 싸움보다 자본과 권력에 밀린 싸움이 잦았다. 그런데도 그는 지구라는 행성의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교회 안과 교회 밖 사회의 생명 살림을 위해 사회적 제동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그것을 환경운동가의 숙명이라고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과 권력의 질주를 멈춰 세우는 지속적인 운동을 강조하면서 그는 ‘새처럼 살자’를 주문했다. 다음 세대 젊은 활동가들에게는 “우리 세대와 달리 재밌고, 여유롭게 운동하길 바란다.”고 주문하면서 환경운동연합도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