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는 이곳은 벚꽃 개화 시기가 전국에서 가장 늦은 곳이다.
벚꽃은 봄 끝에 피는 게 미안했는지, 웅장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벚꽃이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고가의 독서 의자를 사고 말았다. 몸이 불편해 장시간 책을 읽기 어렵다는 핑계로 독서를 하기 편한 전용 의자를 사서 베란다에 두었다. 정확한 용도는 꽃구경인데 말이다.
독서 의자에서 복만(반려고양이)과 쟁탈전을 벌이다가 복만의 털을 쓸어 베란다 밖으로 버릴 때가 있다. 사실 잘 모아 쓰레기통에 버려야 옳은데 그게 귀찮아 허공에 날려 보낸다.
가끔 아랫집 할머니네 텃밭에 떨어질 때면 속으로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반성한다. 오늘 아침 할머니께서 텃밭에서 잡풀을 뽑아 아래층 길가로 버리는 걸 봤다.
우리는 완전하게 나쁜 사람이기도 어렵지만, 좋은 사람으로만 살기도 어렵다. 가끔 내가 저지른 일상의 악행에 눈 감기도 하고 누군가의 부주의를 눈감아주기도 한다.
가끔 아래층 생활소음이 들릴 때가 있다. 주말이면 종종 1층에 사시는 할머니의 딸이 오신다. 할머니는 인지능력 장애가 있는 환자분이시다. 자꾸만 사라져 가는 엄마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딸은 열심히 엄마 곁에서 이것저것 묻는다.
질문 끝에 항상 ‘기억나지 엄마?’하며 묻는 소리가 들린다. 독서 의자에 앉아 나의 엄마를 생각한다. 총기가 총총했던 나의 엄마도 요즘은 많은 것을 놓아버린 듯 보인다.
엄마가 편하다면 상관없지만, 딸인 나는 가슴이 아프다. 이웃의 생활소음을 통해 내가 만날 앞으로의 시간을 가늠하는 일이 어쩐지 나쁘지만은 않다. 슬프지만도 않다. 무섭긴 해도 전부를 부정하기엔 우린 연약한 인간이다.
어떤 건축가가 말했다. 창문은 아픈 환자에게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옳은 말이다. 내 경험상 그렇다. 앞으로 내 삶을 가늠하기도 하고 지역사회에서 내가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그런가. 오늘은 우리가 처음 사는 날이라 그럴 수도 있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내가 사는 이곳은 벚꽃 개화 시기가 전국에서 가장 늦은 곳이다.
벚꽃은 봄 끝에 피는 게 미안했는지, 웅장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벚꽃이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고가의 독서 의자를 사고 말았다. 몸이 불편해 장시간 책을 읽기 어렵다는 핑계로 독서를 하기 편한 전용 의자를 사서 베란다에 두었다. 정확한 용도는 꽃구경인데 말이다.
독서 의자에서 복만(반려고양이)과 쟁탈전을 벌이다가 복만의 털을 쓸어 베란다 밖으로 버릴 때가 있다. 사실 잘 모아 쓰레기통에 버려야 옳은데 그게 귀찮아 허공에 날려 보낸다.
가끔 아랫집 할머니네 텃밭에 떨어질 때면 속으로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반성한다. 오늘 아침 할머니께서 텃밭에서 잡풀을 뽑아 아래층 길가로 버리는 걸 봤다.
우리는 완전하게 나쁜 사람이기도 어렵지만, 좋은 사람으로만 살기도 어렵다. 가끔 내가 저지른 일상의 악행에 눈 감기도 하고 누군가의 부주의를 눈감아주기도 한다.
가끔 아래층 생활소음이 들릴 때가 있다. 주말이면 종종 1층에 사시는 할머니의 딸이 오신다. 할머니는 인지능력 장애가 있는 환자분이시다. 자꾸만 사라져 가는 엄마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딸은 열심히 엄마 곁에서 이것저것 묻는다.
질문 끝에 항상 ‘기억나지 엄마?’하며 묻는 소리가 들린다. 독서 의자에 앉아 나의 엄마를 생각한다. 총기가 총총했던 나의 엄마도 요즘은 많은 것을 놓아버린 듯 보인다.
엄마가 편하다면 상관없지만, 딸인 나는 가슴이 아프다. 이웃의 생활소음을 통해 내가 만날 앞으로의 시간을 가늠하는 일이 어쩐지 나쁘지만은 않다. 슬프지만도 않다. 무섭긴 해도 전부를 부정하기엔 우린 연약한 인간이다.
어떤 건축가가 말했다. 창문은 아픈 환자에게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옳은 말이다. 내 경험상 그렇다. 앞으로 내 삶을 가늠하기도 하고 지역사회에서 내가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그런가. 오늘은 우리가 처음 사는 날이라 그럴 수도 있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