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림 90] 마당과 바다

집안 형편이 나아진 중학교 입학 무렵,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베란다라는 공간이 생기고 엄마는 생선을 말리셨다. 어린 입맛에 어중간하게 비린 말린 생선보다 오동통한 고등어구이가 더 좋았다. 엄마는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는 화분과 화초를 사오시고 곁에 고추나 우거지를 말렸다. 기괴한 베란다, 우리 집 베란다 풍경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여전히 엄마는 어떤 집에 사시든 무엇이든 말려 식재료를 보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가족은 엄마의 마당에서 말린 식재료로 여태 목숨을 연명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넓고 볕이 잘 드는 마당을 엄마에게 선물했더라면 가끔은 먹지 않아도 배부른 효녀가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주제에 아직도 엄마가 만드신 음식에 의존해 산다. 맛있다는 말로 대충 때울 심산이다.

지금 사는 공동주택은 1층이 모두 정원으로 설계되었다. 이층에 사는 나는 아래층 정원이 훤히 보인다.

아래층 할머니 댁 정원에 금계국이 활짝 피었다. 인지장애가 있는 할머니는 가끔 우리 집 벨을 누르고 멍하니 서 계실 때도 있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당신의 마당에서 캔 수확물을 나눠 주실 정도로 인심도 후하신 분이다. 마당에서 할머니와 따님이 나누는 담소를 들으면 온갖 채소와 꽃이 피는 그들의 마당은 단순히 마당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엄마의 사라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한 딸의 노력 속에서 ‘나도 저런 효심이 있었더라면’하고 자책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뜰에 말린 생선이나 금계국이 있길 바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말린 생선 살의 밀도 높은 비린내를 좋아하게 된 나는 아래층 마당에서 피어난 금계국을 보면서 인터넷으로 반건조 박대 구매 버튼을 누른다.

곧 바다에 닥칠 비극을 대비해서 내가 좋아하는 바다생물을 잔뜩 사 둬야 하나,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 모든 바다생물을 사재기해도, 내리는 비는 어쩔 것인가. 자신만의 뜰도 없는 우리는 이제 바다마저 잃고 어찌 살아갈지 모르겠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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