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 사는 비인간 생명체와 눈높이를 맞추는 사진, 그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사진은 어떤 장대한 서사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들의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서사는 저 멀리 시원에까지 가 닿는다. 피사체의 길고 깊은 이야기가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흘러넘쳐서 당신과 내게로 회귀한다. 회귀하여 우리를 깨운다.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느냐고.
『이름보다 오래된』이 그런 책이다. 이름보다 오래된 고라니의 삶과 생태, 그만의 고유한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제각기 다른 고라니의 얼굴이다. 작가는 그 얼굴들에 이름을 붙여놓고 있다. 가장 흔하게 로드킬 당하는 야생동물이라는 것 말고,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3만 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것 말고, 고라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어쩌면 당신은 그것 외에 아무것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그렇다면, 고라니일까? 아니면 고라니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고라니의 삶일까, 고라니의 죽음일까? 우리가 고라니에 대해서 한 줄이라도 더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고라니가 사는 방식이 아니라 고라니가 죽는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깊은 밤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고라니의 출몰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아느냐고, 고라니가 농작지를 얼마나 망치고 다니는지 아느냐고. 2014년 총에 맞은 고라니는 3만6천 원가량의 농작물을 먹어치웠다고 목숨을 잃었고, 2018년에는 1만4천 원가량의 농작물을 먹어치웠다고 총에 맞았다. 2015년 이후부터 고라니로 인한 농작 피해 금액보다 고라니 현상금 비용이 더 높아졌다. 현상금의 역설이다.
물론 고라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도로가 난 곳에, 집이 들어선 곳에, 새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곳에, 원래는 자신들이 먼저 살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의 땅에서 추방당한 존재들이다. 추방당한 존재들은 인기척에 놀라 몸을 숨긴다. 인간의 모든 삶의 방식과 편의가 그들에게는 위협이 된다.
작가 문선희는 매우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고라니가 돌아보는 순간을 기다린 사람이다. 그 기다림 끝에 고라니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들과 ‘관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이름보다 오래된』에서는 기다림의 역전이 일어난다. 작가가 고라니가 자신을 보아주기를 기다렸다면, 이번에는 50여 점의 사진 속에 담긴 고라니들은 그만큼의 세계가 되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가 대답해주기를 기다린다. 비인간 생명체와 함께 구축하는 세계를 약속해주기를 기다린다. 인간 존재가 휴머니즘을 넘어서기를 기다린다. 고라니를 기다린 작가가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고라니의 기다림이다. 책 속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라니들의 얼굴에 오롯이 새겨진 고유성에 깊이 매료되었다. 모두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존재로 초대받은 소중한 생명들이라는 것, 당신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를 부품처럼 갈아 끼울 수 없듯이 모든 생명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명제가 생생하게 와 닿았다.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연한 이치지만,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마치 은하수라는 단어를 아는 것과 은하수를 직접 보는 것이 차원이 다른 일인 것처럼. 고유성에 깃든 경이와 다양성에 깃든 장엄함을 생생하게 체험한 후, 나는 비로소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이름보다 오래된 생명체들은 자기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답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지, 그 답을.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야생에 사는 비인간 생명체와 눈높이를 맞추는 사진, 그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사진은 어떤 장대한 서사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들의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서사는 저 멀리 시원에까지 가 닿는다. 피사체의 길고 깊은 이야기가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흘러넘쳐서 당신과 내게로 회귀한다. 회귀하여 우리를 깨운다.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느냐고.
『이름보다 오래된』이 그런 책이다. 이름보다 오래된 고라니의 삶과 생태, 그만의 고유한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제각기 다른 고라니의 얼굴이다. 작가는 그 얼굴들에 이름을 붙여놓고 있다. 가장 흔하게 로드킬 당하는 야생동물이라는 것 말고,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3만 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것 말고, 고라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어쩌면 당신은 그것 외에 아무것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그렇다면, 고라니일까? 아니면 고라니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고라니의 삶일까, 고라니의 죽음일까? 우리가 고라니에 대해서 한 줄이라도 더 말할 수 있다면, 그건 고라니가 사는 방식이 아니라 고라니가 죽는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깊은 밤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고라니의 출몰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아느냐고, 고라니가 농작지를 얼마나 망치고 다니는지 아느냐고. 2014년 총에 맞은 고라니는 3만6천 원가량의 농작물을 먹어치웠다고 목숨을 잃었고, 2018년에는 1만4천 원가량의 농작물을 먹어치웠다고 총에 맞았다. 2015년 이후부터 고라니로 인한 농작 피해 금액보다 고라니 현상금 비용이 더 높아졌다. 현상금의 역설이다.
물론 고라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도로가 난 곳에, 집이 들어선 곳에, 새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곳에, 원래는 자신들이 먼저 살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의 땅에서 추방당한 존재들이다. 추방당한 존재들은 인기척에 놀라 몸을 숨긴다. 인간의 모든 삶의 방식과 편의가 그들에게는 위협이 된다.
작가 문선희는 매우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고라니가 돌아보는 순간을 기다린 사람이다. 그 기다림 끝에 고라니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들과 ‘관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이름보다 오래된』에서는 기다림의 역전이 일어난다. 작가가 고라니가 자신을 보아주기를 기다렸다면, 이번에는 50여 점의 사진 속에 담긴 고라니들은 그만큼의 세계가 되어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가 대답해주기를 기다린다. 비인간 생명체와 함께 구축하는 세계를 약속해주기를 기다린다. 인간 존재가 휴머니즘을 넘어서기를 기다린다. 고라니를 기다린 작가가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고라니의 기다림이다. 책 속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라니들의 얼굴에 오롯이 새겨진 고유성에 깊이 매료되었다. 모두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존재로 초대받은 소중한 생명들이라는 것, 당신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를 부품처럼 갈아 끼울 수 없듯이 모든 생명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명제가 생생하게 와 닿았다.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연한 이치지만,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마치 은하수라는 단어를 아는 것과 은하수를 직접 보는 것이 차원이 다른 일인 것처럼. 고유성에 깃든 경이와 다양성에 깃든 장엄함을 생생하게 체험한 후, 나는 비로소 ‘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이름보다 오래된 생명체들은 자기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답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지, 그 답을.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