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림 94] 우리의 표지판

파주에 오고 줄곧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로드킬.

자유로와 연결된 모든 도로를 고속도로로 인식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사는 작은 마을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동물의 죽음을 보는 것도 괴롭고 그 괴로움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마을공동체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 평소 잘 하지 않는 집으로 초대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떠들었더니 공감하는 회원들이 늘었다. 10월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느 오후에 각자 음식 한가지씩 들고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의자와 식기가 손님맞이에 동원되었다. 이렇게 많은 손님을 맞이한 적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었다.

어릴 적 서울로 전학 온 뒤 난감한 게 생일 파티였다. 생일날 서로의 집에 초대하는 문화가 놀라웠다. 어촌마을에 살 때는 따로 잔치나 생일 파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가난한 무허가 우리 집에 초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벽 시장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는 시간은 개미의 기침소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졸업 때까지 생일 없는 아이가 되었다. 초대받는 쪽이 되어도 쉽게 응할 수 없었다.오고 가는 법칙이 있는데 나만 받을 수 없었고 매번 핑계를 생각하는 일에 점점 지치기도 했다. 어른이 된 후에도 늘 열악한 작업실 환경에 누굴 초대해서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는 일도 쉽지 않았다. 

늘 먹고살기 바쁜 사람이 되는 쪽이 편했던 것 같다. 아니 외로울 틈 없이 바빴는지 외롭기 싫어 바빴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만들고 싶은 야생동물보호 표지판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동물들만 지나다니는 구름다리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 살 때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본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았고 부족한 것은 언제나 마음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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