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짧은 삶을 살기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살았던가…
지난 1월 말, 환경·여성·생명운동 진영은 귀중한 한 사람을 하릴없이 보내야 했다. 48세의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문순홍(文順弘) 박사.
꽃잎처럼 향기만을 남기고 훌쩍 날아간 그녀의 생애가 애달프다. 하지만 진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길은 그녀가 꿈꾸고 활동해왔던 일들의 시대적 의미를 살피고 그 뜻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본다.
이미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1992년 초, 불교환경교육원 (당시 불교사회교육원)에서 ‘생태학교’를 준비하면서 그녀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가 들려줬던 ‘생태주의’, ‘생태사상’이라는 새로운 담론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열정과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을 흔들어놓았다. 당시 우리 사회는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토대로 시민사회 영역이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특히 부문운동으로만 다뤄져오던 환경운동이 급속한 양적성장을 하며 시민사회 영역으로의 거대한 방향전환을 하고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 해 줄 만한 체계적인 사상과 이론의 토대는 매우 척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박사는 환경·생명운동의 이론적 지평을 확장시키며 『생태위기와 녹색의 대안』(1992), 『환경논의의 쟁점들』(1994), 『현대위기와 새로운 사회운동』(1994),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생태전략』(1995) 등을 저술했다. 특히 성급한 산업화의 부작용을 겪으며 대두된 서구사회의 생태사상과 이론의 다양한 지형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문 박사의 연구와 활발한 강연 활동은 생태적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과 실천전략들을 모색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환경연구회〉와 〈생태사회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젊은 환경연구자들을 배출했다.
90년대 중반부터 문 박사는 서구의 생태논의를 한국사회의 현실에 적용해, 자생적인 생태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책이 김지하 시인과의 대담을 정리한 『생명과 자치』(1996)다. 자생적인 생태담론의 정립에 대한 고인의 열정은 병마도 꺾지 못했다. 투병 와중에도 김지하, 장회익, 박이문, 김용복 선생 등 학문 영역을 넘어선 국내의 생태, 생명학자들을 모시고 〈생명학 포럼〉을 구성해 활동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지구를 살리는’일에도 앞장섰다. 생태학과 여성학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생태여성론(에코페미니즘)을 국내에 소개하고 ‘여성환경운동’이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 갔다.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1995), 『한국의 여성환경운동』(2001) 등을 발행하며, 〈여성환경연대〉 등의 단체를 구성해 그 실천에 앞장섰다. 문 박사의 이러한 헌신적 에너지는 ‘강한 책임감’과 ‘사심 없는 마음’에서 늘 넘쳐나, 주위 사람들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문 박사는 학자로서 현실 사회 주류의 안정된 삶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비혼’(非婚)의 ‘여성’이자 ‘비제도권’의 정치학자로서, 국가권력, 제도화된 중앙권력과는 한참 거리가 먼 ‘생태정치학’을 공부했다. 애초부터 제도권 학자로서의 안정된 삶은 그녀가 선택하고 꿈꿨던 삶의 방식도 아니었다. 또한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2년여의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고인의 관심은 자신의 건강보다는 연구 과제를 챙기는 데 더 있었다. 물론 동료와 후배들에게는 쾌활한 웃음으로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어놓았지만 정작 당신 자신에게는 그토록 엄격했다.
이러한 고인의 헌신적인 연구와 활동은 제2회 교보환경문화상 (연구부문)(1999년)과 제8회 환경의 날 ‘국민포장’(2003년)을 수상하게 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은 열정적인 삶이 결국 48세의 짧은 생으로 귀착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말리지 못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다.
학자로서 한국사회의 생태적인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고인은 90년 후반부터 1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었다. 생태민주주의와 정치생태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국가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책들이 『사회생태론의 철학』(1997), 『삶의 정치』(1998), 『정치의 재발견』(1998), 『생태학의 담론: 담론의 생태학』(1999), 『생태학: 그 열림과 닫힘의 역사』(2002), 『한국에서의 녹색정치, 녹색국가』(2002) 등이다. 또한 2000년부터 한국사회 녹색화 장기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화문화아카데미의 <바람과물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대안적인 연구소로 만드는 비전을 세웠다. 그 실천과제 중 하나로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2년간의 ‘녹색국가’에 대한 연구지원을 이끌어 냈으며, 후속 연구로 ‘정치의 녹색화’, ‘시민사회의 녹색화’, ‘자아의 녹색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태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시민사회운동의 사상적 자양분이 될 이토록 많은 일들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고 문 박사는 우리 곁을 떠났다. 생사를 오가는 고통스런 투병생활 속에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잠시도 놓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고 그립다. 김지하 시인은 문 박사에 대한 추모시에서 그녀를 ‘흰 꽃잎’으로 불렀다. 차가운 땅 위에 자신을 던져 온 세상을 순식간에 하얗게 뒤덮는 하얀 눈과 같은 고인의 순백의 정열을 기리는 말이리라. 하지만 이제는 봄기운에 자신의 몸을 녹여 새 생명의 싹을 틔우는 눈꽃처럼 고인께서 품었던 열정과 소망, 아픔과 외로움을 훌훌 털어 버리고, 당신이 남기신 업적과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환경, 여성, 생명운동에 긴 여운으로 남아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여여히 지켜봐 주기를 기도한다.
글 | 정규호 <바람과물연구소> 선임 연구원
이토록 짧은 삶을 살기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살았던가…
지난 1월 말, 환경·여성·생명운동 진영은 귀중한 한 사람을 하릴없이 보내야 했다. 48세의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문순홍(文順弘) 박사.
꽃잎처럼 향기만을 남기고 훌쩍 날아간 그녀의 생애가 애달프다. 하지만 진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길은 그녀가 꿈꾸고 활동해왔던 일들의 시대적 의미를 살피고 그 뜻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본다.
이미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1992년 초, 불교환경교육원 (당시 불교사회교육원)에서 ‘생태학교’를 준비하면서 그녀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가 들려줬던 ‘생태주의’, ‘생태사상’이라는 새로운 담론은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열정과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을 흔들어놓았다. 당시 우리 사회는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토대로 시민사회 영역이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특히 부문운동으로만 다뤄져오던 환경운동이 급속한 양적성장을 하며 시민사회 영역으로의 거대한 방향전환을 하고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 해 줄 만한 체계적인 사상과 이론의 토대는 매우 척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박사는 환경·생명운동의 이론적 지평을 확장시키며 『생태위기와 녹색의 대안』(1992), 『환경논의의 쟁점들』(1994), 『현대위기와 새로운 사회운동』(1994),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생태전략』(1995) 등을 저술했다. 특히 성급한 산업화의 부작용을 겪으며 대두된 서구사회의 생태사상과 이론의 다양한 지형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문 박사의 연구와 활발한 강연 활동은 생태적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과 실천전략들을 모색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환경연구회〉와 〈생태사회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젊은 환경연구자들을 배출했다.
90년대 중반부터 문 박사는 서구의 생태논의를 한국사회의 현실에 적용해, 자생적인 생태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책이 김지하 시인과의 대담을 정리한 『생명과 자치』(1996)다. 자생적인 생태담론의 정립에 대한 고인의 열정은 병마도 꺾지 못했다. 투병 와중에도 김지하, 장회익, 박이문, 김용복 선생 등 학문 영역을 넘어선 국내의 생태, 생명학자들을 모시고 〈생명학 포럼〉을 구성해 활동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지구를 살리는’일에도 앞장섰다. 생태학과 여성학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생태여성론(에코페미니즘)을 국내에 소개하고 ‘여성환경운동’이라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 갔다.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1995), 『한국의 여성환경운동』(2001) 등을 발행하며, 〈여성환경연대〉 등의 단체를 구성해 그 실천에 앞장섰다. 문 박사의 이러한 헌신적 에너지는 ‘강한 책임감’과 ‘사심 없는 마음’에서 늘 넘쳐나, 주위 사람들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문 박사는 학자로서 현실 사회 주류의 안정된 삶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비혼’(非婚)의 ‘여성’이자 ‘비제도권’의 정치학자로서, 국가권력, 제도화된 중앙권력과는 한참 거리가 먼 ‘생태정치학’을 공부했다. 애초부터 제도권 학자로서의 안정된 삶은 그녀가 선택하고 꿈꿨던 삶의 방식도 아니었다. 또한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2년여의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고인의 관심은 자신의 건강보다는 연구 과제를 챙기는 데 더 있었다. 물론 동료와 후배들에게는 쾌활한 웃음으로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내어놓았지만 정작 당신 자신에게는 그토록 엄격했다.
이러한 고인의 헌신적인 연구와 활동은 제2회 교보환경문화상 (연구부문)(1999년)과 제8회 환경의 날 ‘국민포장’(2003년)을 수상하게 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은 열정적인 삶이 결국 48세의 짧은 생으로 귀착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말리지 못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다.
학자로서 한국사회의 생태적인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고인은 90년 후반부터 1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었다. 생태민주주의와 정치생태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국가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책들이 『사회생태론의 철학』(1997), 『삶의 정치』(1998), 『정치의 재발견』(1998), 『생태학의 담론: 담론의 생태학』(1999), 『생태학: 그 열림과 닫힘의 역사』(2002), 『한국에서의 녹색정치, 녹색국가』(2002) 등이다. 또한 2000년부터 한국사회 녹색화 장기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화문화아카데미의 <바람과물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대안적인 연구소로 만드는 비전을 세웠다. 그 실천과제 중 하나로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2년간의 ‘녹색국가’에 대한 연구지원을 이끌어 냈으며, 후속 연구로 ‘정치의 녹색화’, ‘시민사회의 녹색화’, ‘자아의 녹색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태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시민사회운동의 사상적 자양분이 될 이토록 많은 일들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고 문 박사는 우리 곁을 떠났다. 생사를 오가는 고통스런 투병생활 속에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잠시도 놓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고 그립다. 김지하 시인은 문 박사에 대한 추모시에서 그녀를 ‘흰 꽃잎’으로 불렀다. 차가운 땅 위에 자신을 던져 온 세상을 순식간에 하얗게 뒤덮는 하얀 눈과 같은 고인의 순백의 정열을 기리는 말이리라. 하지만 이제는 봄기운에 자신의 몸을 녹여 새 생명의 싹을 틔우는 눈꽃처럼 고인께서 품었던 열정과 소망, 아픔과 외로움을 훌훌 털어 버리고, 당신이 남기신 업적과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환경, 여성, 생명운동에 긴 여운으로 남아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여여히 지켜봐 주기를 기도한다.
글 | 정규호 <바람과물연구소> 선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