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익 선생은 1925년 경북 봉화에서 대지주의 손자로 태어나 일제시대에 중학을 마쳤다. 이후 상경하여 경성제대에 입학했으나 당시 혼란한 사회상으로 인해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다. 해방 후 〈민청(조선민주청년동맹)〉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좥사회안전법좦에 연루되어 6년 남짓 징역을 살았다. 출소 이후 청년시절의 좌익활동 경력으로 인해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조직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이후 일평생을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했다. 작은 농사를 지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소박한 삶에 대한 선생의 실천은 우리 시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선생의 자연 순리에 따르는 삶과 그러한 삶의 면면을 풀어낸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비롯한 3권의 에세이집은 우리 시대의 삶의 속도와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불러왔다. 지난 2004년 12월 29일 선생은 자택에서 향년 79세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저서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 현암사),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1995, 현암사), "사람이 뭔데"(2002, 현암사) 등 3권을 남겼다.
“우리 인간들이 자연으로부터 너무 많이 수탈해왔어. 이제 자연에 보탬이 되도록 나는 나무 심는 일을 하겠어”
1975년 도시의 생활을 접기 위해 시골에서 살고 있는 선각자들을 찾아 배움의 길목에서 전우익 선생을 찾았을 때 그분이 주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나무 토막 하나를 들고 그 나이테와 주름에 관해 설명해 주시면서 생명의 신비를 전해 주신 것도 잊을 수 없다. 그분의 책도 몇 권 읽었지만 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10년 내내 나의 머리와 가슴에 오롯이 살아 있다.
그리하여 야산에서 나무 한 그루 잘라오지 못하고 피죽을 사서 화목으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 나는 학생들 몇 사람을 끌어들여 엔진이 달린 톱으로 우리집 뒷산에서 나무를 베었다.
밀식된 잣나무 30그루 정도 잘라서 화목으로 쓰고 말았다.
마당에는 푸른 잣나무 가지가 쌓여 있다. 녹색 생명이 서서히 시들어가겠지. 나무 둥치는 화목 보일러에서
억울한 비명소리를 내며 하늘을 향해 하얀 머리카락을 날리고 나를 저주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저 하얀 연기가 전우익 선생의 머리카락이 아닐까?
내 몸 하나 따뜻하게 하려고, 잠자리를 좋게 하려고, 사람들과 호젓한 대화를 나누려고, 그 많은 나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이웃집 할아버지들 동네 아저씨들이 우리 뒷산에 와서 나무하는 것을 지나쳐 보고 차가운 눈길 하나 주지 않았던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냉엄한 성찰을 하고 있다. 전우익 선생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호박 하나에서처럼 자연의 아주 작은 숨결도 놓치지 않은 생명 존중의 섬세함 옛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며 친구에게 다가가는
전우익 선생은 1925년 경북 봉화에서 대지주의 손자로 태어나 일제시대에 중학을 마쳤다.
이후 상경하여 경성제대에 입학했으나 당시 혼란한 사회상으로 인해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다. 해방 후 〈민청(조선민주청년동맹)〉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좥사회안전법좦에 연루되어 6년 남짓 징역을 살았다. 출소 이후 청년시절의 좌익활동 경력으로 인해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조직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이후 일평생을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했다. 작은 농사를 지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소박한 삶에 대한 선생의 실천은 우리 시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선생의 자연 순리에 따르는 삶과 그러한 삶의 면면을 풀어낸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비롯한 3권의 에세이집은 우리 시대의 삶의 속도와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불러왔다.
지난 2004년 12월 29일 선생은 자택에서 향년 79세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저서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 현암사),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1995, 현암사), "사람이 뭔데"(2002, 현암사) 등 3권을 남겼다.
“우리 인간들이
자연으로부터 너무 많이 수탈해왔어.
이제
자연에 보탬이 되도록
나는 나무 심는 일을 하겠어”
1975년 도시의 생활을 접기 위해
시골에서 살고 있는 선각자들을 찾아
배움의 길목에서
전우익 선생을 찾았을 때
그분이 주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나무 토막 하나를 들고
그 나이테와
주름에 관해 설명해 주시면서
생명의 신비를 전해 주신 것도 잊을 수 없다.
그분의 책도 몇 권 읽었지만
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10년 내내
나의 머리와 가슴에 오롯이 살아 있다.
그리하여
야산에서 나무 한 그루 잘라오지 못하고
피죽을 사서 화목으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
나는 학생들 몇 사람을 끌어들여
엔진이 달린 톱으로
우리집 뒷산에서 나무를 베었다.
밀식된 잣나무
30그루 정도 잘라서 화목으로 쓰고 말았다.
마당에는 푸른 잣나무 가지가 쌓여 있다.
녹색 생명이 서서히 시들어가겠지.
나무 둥치는 화목 보일러에서
억울한 비명소리를 내며
하늘을 향해 하얀 머리카락을 날리고
나를 저주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저 하얀 연기가
전우익 선생의 머리카락이 아닐까?
내 몸 하나 따뜻하게 하려고,
잠자리를 좋게 하려고,
사람들과 호젓한 대화를 나누려고,
그 많은 나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이웃집 할아버지들
동네 아저씨들이 우리 뒷산에 와서
나무하는 것을 지나쳐 보고
차가운 눈길 하나 주지 않았던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냉엄한 성찰을 하고 있다.
전우익 선생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호박 하나에서처럼
자연의 아주 작은 숨결도 놓치지 않은
생명 존중의 섬세함
옛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며 친구에게 다가가는
풀잎처럼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지신
전우익 선생은
생명사랑의 눈물로
우리의 마음을 적셔주실 겁니다.
글 | 허병섭 도시빈민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 이사, 생태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