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202] 오삼으로부터 오삼에게로


2024년, 대한민국을 홀렸던 가장 매력적인 생명체는 아무래도 판다곰이다. 사람들은 판다곰 가족들의 개별적인 캐릭터에 빠져들고, 그들의 가계도를 파악하고, 판다를 돌보는 사육사와의 관계성에 열광했다. 새로 태어난 쌍둥이들의 성장 과정을 유튜브로 꼼꼼히 좇고, 이제 곧 중국으로 반환하게 될 판다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이후의 삶을 미리 염려한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나 또한 끼어있다. 판다 영상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한다. 또한 안다. 그런 모든 순간에 나는 종종 화면 바깥, 동물원 울타리 바깥의 곰들을 잊고 있음을……. 이를  테면, 반달가슴곰 KM-53이 그렇다. 

『오삼으로부터』는 그렇게 야생의 곰을 잊고 있던 내게 도착한 모종의 편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지리산사람들> 윤주옥 공동대표가 반달곰 오삼이에게 쓴 편지글인 동시에, 공연팀 <팔꿈치활동범위>에서 거리극을 만드는 결의 그림책이다. 반달가슴곰 KM-53이라는 명칭은, Korea + Male + 53번째 발신기를 달고 관리코드를 붙였다는 의미로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이 붙여준 것이다. 오삼이에게 허락된 서식지는 지리산이었지만, 그의 활동성은 지리산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의외의 곳에서 발견되어 강제로 붙잡혀 오기도 했고,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오삼이의 그러한 특이사항은 곧잘 뉴스거리가 되었고, 덕분에 ‘이상한 곰, 곰 세계의 ADHD’라는 별칭 또한 생겼다. 울타리 바깥의 어떤 곰들은 그렇게 사람들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나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그와 나 사이의 관계가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서 충분히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 그는 비로소 귀엽거나 사랑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달가슴곰의 숫자는 대략 80~90마리쯤이다. 2004년 다섯 마리 정도에 불과하던 것을, 복원 사업을 통해서 그만큼 확대시켜 놓은 결과다. 한반도에서 살던 반달가슴곰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곰들을 중국, 러시아, 몽골 등지에서 들여와 자연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야생으로 풀어놓았던 것이다. 반달가슴곰을 만나는 일이 두렵지만, 그들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야말로 진짜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는 일은, 반달가슴곰의 멸종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절멸일 따름이다. 환경부의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한 바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된 동물들은, 2023년 기준 멸종위기 야생생물1급이 68종, 2급이 214종으로 지정돼 있다. 호랑이, 작은관코박쥐, 여우, 스라소니, 삵, 하늘다람쥐, 담비 등이 그에 해당한다. 

“지리산을 걷기만 해도 심각성을 느낄 수 있는데, 인간들은 멈추고, 바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지리산에 산악열차, 케이블카, 모노레일, 골프장을 짓겠다고 난리야. 그곳에서 반달가슴곰이 먹이를 찾고, 겨울잠을 자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걸 알면서도 나무를 베고 숲을 망가뜨리려고 하다니, 참 뻔뻔한 인간들이지. 한쪽에서는 도로와 주차장을 걷어 내고 나무를 심자는 생각을 모으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보다 몇백 배 넓은 숲을 파괴하려고 하니, 생각만으로도 무서워. 반달가슴곰도 살 수 없고, 풀과 나무도 살 수 없는 땅은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본래 이 편지는 이 책의 주인공인 오삼이를 향해서 쓰인 것이었으나, 오삼이는 이제 이런 하소연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인간들이 경계 지어 두었던 활동반경을 벗어나 종종 모험을 했던 오삼이는 지난 6월 13일, ‘포획과 마취 과정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어떤 야생동물들의 죽음은 충분한 슬픔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모험하는 야생동물이라면 더 그렇다. 그가 멀리 있을수록, 그의 죽음이 덜 슬픈 세상일수록, 풀과 나무 없는 공간에서 인간들의 환호가 화려할수록, 우리의 삶의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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