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볕뉘 읽기 110] 고은의 시 「무제시편 158」

 
먼 곳이 다 없어지고 있다
먼 곳이 없어지면
더 큰 불행은
가까운 곳이 없어지는 것
 
이럴 때
나는 먼 곳의 특혜를 받는다
 
나로부터 
내 발 밑이 멀다
알래스카
시베리아 캄차카
내 80년만의 희망봉
 
나는 나로부터 멀고 멀다
 
- 계간 문예지 『버클리문학』 2호 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현대사회처럼 영상매체가 사람들의 삶을 압도하는 환경에서는 매우 경계해야 할 경구로 받아들여집니다. 시각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차분하게 생각할 틈도 없이 그 세계에 빠져들게 만드는 속성은 현대 자본주의가 상품을 판매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의 속담과 대비될 만한 우리 속담에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영 장군 부친이 아들에게 물욕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남겨준 교훈이라고 하는데, 물욕에 앞서서 눈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황금을 돌로 보는 태도는 마음이 눈으로 보는 것에 지배당하지 않을 때 생겨날 수 있습니다. 눈보다 마음으로 먼저 사물을 판단하려고 할 때 가능한 태도입니다.
 
고은 시인이 노래하는 ‘먼 곳’에 있는 것들은 이처럼 마음으로 가치를 판단해볼 만한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마음으로 새겨 판단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북극의 빙하나 아마존의 숲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것의 소중함을 무시해버리기 쉽지만 마음으로 그것의 가치를 새겨 소중한 대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사라지고 맙니다. 눈으로 위기를 판단할 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마음으로 판단할 때가 적절한 때입니다. 따라서 고은 시인이 ‘먼 곳이 다 없어지고 있다’를 ‘북극의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로 읽어도 되지만,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로 읽어도 될 것입니다. 현대는 인간에게 점점 마음을 사라지게 만드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깨달음을 새해 벽두에 시인은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곧 설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설날에는 다들 고향을 찾아갑니다. 고향은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대상입니다. 내가 자라온 지난 추억을 만나러 가는 곳이 눈으로 확인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먼 곳’이 사라지면 소중한 자연도, 고향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도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나 자신은 나로부터 멀고 멀다’는 말은 나의 참 존재를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눈으로는 멀고 마음으로는 가까운 나의 삶을 돌아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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