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모어 플라스틱 혹은 제로웨이스트의 생활을 해볼까,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고, 아주 빠르게 포기했다. 카페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건 가장 낮은 단계였고, 해볼 만 했다.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거나 일회용 컵 대신에 텀블러를 휴대하는 일 정도니까. 배달 음식을 먹을 때도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된다. 나무젓가락은 가져오지 마시라, 음식은 일회용기가 아니라 식당 그릇에 담아 오시면 집에 있는 그릇에 옮긴 후 돌려드리겠다, 같은 요청들이 필요한 거니까.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는 장바구니를 가져갈 수 있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소포장된 과일이나 먹을거리들 앞에서는 좀 막막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공산품들 앞에서는 식은땀이 난다. 노모어 플라스틱은 그저 굳은 의지의 문제이기만 한 게 아니라 매우 디테일하고 세밀한 문제의식을 일상에 투영시켜야 하는 문제였고, 결국에는 자기 생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판단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던 거다. 그런 고민 없는 호기심은 ‘일회성 소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는 좋은 매뉴얼이 될 만하다. 책 속의 인상적인 실천 방안은 이런 거다. 이를 테면, 마이크로 시위.
“미세플라스틱만 미세하란 법이 있나. 우리의 시위도 ‘미세’하게 작아진다. 이런 활동은 내향적인 사람도, 바쁜 사람도 참여하기 쉽다. (중략) 기업이 움찔하는 대상은 바로 소비자다. 소비자 요청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화장품 미세플라스틱 캠페인 때 단체 이름으로 공문을 보냈더니 반응이 없던 회사도 같은 내용을 소비자 이름으로 홈페이지에 남기자 응답했다. 이처럼 구매한 물건의 포장재를 기업에 돌려보내며 대안을 촉구하는 행동을 마이크로 시위(작은 시위)라고 한다. 카톡 채팅방에는 ‘쓰레기 없는 세상을 꿈꾸는 방’이나 네이버 카페 ‘제로웨이스트 홈’ 등에는 소소하고 훈훈한 마이크로 시위 이야기가 가득하다. 화장품 원료업체가 완충재를 사용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미담이며 배달앱에 일회용 식기와 물티슈를 거절하는 선택 간을 요구한 일 등 깨알같이 성실하고 갸륵하다.”
이 마이크로 시위에 초점을 들고 제법 길게 인용한 것은, ‘마이크로 시위’의 방향성과 운동성에 대한 개인적인 공감 때문이다. 돈을 내는 소비자에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 되는 일, 일상적인 구매행위를 가장 정치적인 행위로 전환시키는 일, 그런 것들의 성취는 아주 느리게 이뤄지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주요 이슈를 확 바꿔놓아 버리고 만다. 일회용에 대한 담론이 지금의 수위로 전개되기까지의 오랜 과정은 그 자체로 작은 시위가 해낼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증명해준다.
이미 자백했지만 나는 노모어 플라스틱이나 제로웨이스트에 빠르게 패배했고, 안타깝게도 내 주변의 친구들 역시 작심삼일을 넘지 못하는 의지박약의 부류들이다. 그런데 작은 시위가 가진 힘은, 언제든 부담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플라스틱과 벌이는 전면전이 자기의 일상을 다 걸어야 하는 엄청난 일이라면, 사소한 것들만 먼저 걸면 된다. 가령, 비닐봉지 말고 에코백을 드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다. 면생리대부터 시작하는 거다. 플라스틱 소포장 공산품 말고 대용량 제품을 구매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다. 반복적인 작심삼일을 하는 거다. 작게 작게 굴러가는 우리의 일상이 결국에는 거대한 우리의 세계다. 그렇게 내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어제의 결심 같은 것들이 그 세계를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p.s. 존 버거의 『여기, 우리 만나는 곳』의 일부를 재인용한다. 새겨둘 만하다.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노모어 플라스틱 혹은 제로웨이스트의 생활을 해볼까,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고, 아주 빠르게 포기했다. 카페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건 가장 낮은 단계였고, 해볼 만 했다.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거나 일회용 컵 대신에 텀블러를 휴대하는 일 정도니까. 배달 음식을 먹을 때도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된다. 나무젓가락은 가져오지 마시라, 음식은 일회용기가 아니라 식당 그릇에 담아 오시면 집에 있는 그릇에 옮긴 후 돌려드리겠다, 같은 요청들이 필요한 거니까.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는 장바구니를 가져갈 수 있지만, 플라스틱 용기에 소포장된 과일이나 먹을거리들 앞에서는 좀 막막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공산품들 앞에서는 식은땀이 난다. 노모어 플라스틱은 그저 굳은 의지의 문제이기만 한 게 아니라 매우 디테일하고 세밀한 문제의식을 일상에 투영시켜야 하는 문제였고, 결국에는 자기 생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판단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던 거다. 그런 고민 없는 호기심은 ‘일회성 소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는 좋은 매뉴얼이 될 만하다. 책 속의 인상적인 실천 방안은 이런 거다. 이를 테면, 마이크로 시위.
“미세플라스틱만 미세하란 법이 있나. 우리의 시위도 ‘미세’하게 작아진다. 이런 활동은 내향적인 사람도, 바쁜 사람도 참여하기 쉽다. (중략) 기업이 움찔하는 대상은 바로 소비자다. 소비자 요청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화장품 미세플라스틱 캠페인 때 단체 이름으로 공문을 보냈더니 반응이 없던 회사도 같은 내용을 소비자 이름으로 홈페이지에 남기자 응답했다. 이처럼 구매한 물건의 포장재를 기업에 돌려보내며 대안을 촉구하는 행동을 마이크로 시위(작은 시위)라고 한다. 카톡 채팅방에는 ‘쓰레기 없는 세상을 꿈꾸는 방’이나 네이버 카페 ‘제로웨이스트 홈’ 등에는 소소하고 훈훈한 마이크로 시위 이야기가 가득하다. 화장품 원료업체가 완충재를 사용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미담이며 배달앱에 일회용 식기와 물티슈를 거절하는 선택 간을 요구한 일 등 깨알같이 성실하고 갸륵하다.”
이 마이크로 시위에 초점을 들고 제법 길게 인용한 것은, ‘마이크로 시위’의 방향성과 운동성에 대한 개인적인 공감 때문이다. 돈을 내는 소비자에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 되는 일, 일상적인 구매행위를 가장 정치적인 행위로 전환시키는 일, 그런 것들의 성취는 아주 느리게 이뤄지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주요 이슈를 확 바꿔놓아 버리고 만다. 일회용에 대한 담론이 지금의 수위로 전개되기까지의 오랜 과정은 그 자체로 작은 시위가 해낼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증명해준다.
이미 자백했지만 나는 노모어 플라스틱이나 제로웨이스트에 빠르게 패배했고, 안타깝게도 내 주변의 친구들 역시 작심삼일을 넘지 못하는 의지박약의 부류들이다. 그런데 작은 시위가 가진 힘은, 언제든 부담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플라스틱과 벌이는 전면전이 자기의 일상을 다 걸어야 하는 엄청난 일이라면, 사소한 것들만 먼저 걸면 된다. 가령, 비닐봉지 말고 에코백을 드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다. 면생리대부터 시작하는 거다. 플라스틱 소포장 공산품 말고 대용량 제품을 구매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다. 반복적인 작심삼일을 하는 거다. 작게 작게 굴러가는 우리의 일상이 결국에는 거대한 우리의 세계다. 그렇게 내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어제의 결심 같은 것들이 그 세계를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p.s. 존 버거의 『여기, 우리 만나는 곳』의 일부를 재인용한다. 새겨둘 만하다.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