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이었다. 후원하는 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같은 아동을 후원하는 소그룹의 후원자 한 분이 파산신청을 하는 딱한 형편이 되어 후원을 중단했다 한다. 당장 후원아동에게 갈 후원금이 줄게 됐으니 남은 후원자들이 조금씩 증액해서 아이가 받게 될 후원금 규모를 줄이지 말자 한다. “네!” 하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이런저런 일과 단체에 여러 형태로 후원하는 액수가 매달 십일조 규모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 아니라 생계비라 불리는 급여를 받는 처지라 총액이라 해봐야 소소한 액수지만 생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턱없는 일이긴 하다. 다시 전화가 왔다. 연말 불우독거노인을 돕는 기획이 있다며 소액 일시후원을 부탁한다. 다시 “네!” 하고 전화를 끊고 ‘나도 참!’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과 자연을 돕는 모든 기관과 사업에 후원하는 다른 분들의 사정 또한 다르지 않겠구나!’ 남아서, 여유가 충분해서 적든, 많든 지갑을 여는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회비를 매달 내는 분들 또한 내가 낸 만큼 활동으로 돌려받을 거라는 이악스런 이해타산 끝에 매달 회비를 내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자연을, 자연을 지키는 이들을 돕겠다는 정성일 뿐이다. 내가 감사는 아니어도 존중을 기대하는 것처럼 그분들 또한 내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새삼 감사하다.
김장을 안 했다. 지내신 노모께서 “올해부터는 사먹자!”하셨던 까닭이다. 마침 생협과 서울환경연합이 매년 진행하던 ‘김장나누기’ 행사 때, 판매용 김장도 해서 수익을 이웃돕기에 쓰겠다고 하기에 주문을 넣어두었다. 행사가 취소됐다. 늘 협찬하던 큰 기업에서 협찬을 중단했단다. 김치 없이 겨울을 어찌 나지 싶어 걱정이었다. 바라고 들으라고 한 걱정은 아니었으나 강원도가 고향인 후배가 고랭지 배추로 담은 부모님 댁 김장을 한 통 얻어다 준다. 다른 후배 내외는 교외에서 텃밭농사 짓는 부모님이 기른 배추로 담은 김장 김치 한 통을 가져다주었다. 아이 외할머니 댁에서도 김장 김치가 한 통 올라왔다. 그것만 해도 배가 부른데 이웃의 선배 한 분이 해남에서 김장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다며 나눠주신다. 마음마저 부풀어 올라 가슴이 따뜻하다.
나눔의 마법 따위는 없다. 누가 누구를, 일방이 일방을 돕는 일 따위는 환상이다. 이익을 타산하고 되돌아올 보응을 계산하기 전에 손이 먼저, 말이 먼저, 마음이 먼저 나가는 게 우리 생활 속 나눔의 현실이다. 어려워도 돕고, 힘들어도 거들어야 나눔이다. 새해가 열렸다. 같은 시간의 흐름일 뿐인데 해를 나누고 끝과 시작을 정해 산 것이 사람의 오래된 역사인지라 새로 열린 시간의 문 앞에서 우리 사회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 일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누는 일, 사람이 사람을 돕고, 사람이 자연을 돕고, 자연이 사람을 돕는 일이다. 거창하게 말고, 규모 있게 말고, 잘 나서도 아니고, 바라는 게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마음이 가서, 사람 노릇하며 살려고 ‘돕는’, 그런 나눔!
글 / 박현철 편집주간
지난 연말이었다. 후원하는 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같은 아동을 후원하는 소그룹의 후원자 한 분이 파산신청을 하는 딱한 형편이 되어 후원을 중단했다 한다. 당장 후원아동에게 갈 후원금이 줄게 됐으니 남은 후원자들이 조금씩 증액해서 아이가 받게 될 후원금 규모를 줄이지 말자 한다. “네!” 하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이런저런 일과 단체에 여러 형태로 후원하는 액수가 매달 십일조 규모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 아니라 생계비라 불리는 급여를 받는 처지라 총액이라 해봐야 소소한 액수지만 생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턱없는 일이긴 하다. 다시 전화가 왔다. 연말 불우독거노인을 돕는 기획이 있다며 소액 일시후원을 부탁한다. 다시 “네!” 하고 전화를 끊고 ‘나도 참!’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과 자연을 돕는 모든 기관과 사업에 후원하는 다른 분들의 사정 또한 다르지 않겠구나!’ 남아서, 여유가 충분해서 적든, 많든 지갑을 여는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회비를 매달 내는 분들 또한 내가 낸 만큼 활동으로 돌려받을 거라는 이악스런 이해타산 끝에 매달 회비를 내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자연을, 자연을 지키는 이들을 돕겠다는 정성일 뿐이다. 내가 감사는 아니어도 존중을 기대하는 것처럼 그분들 또한 내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새삼 감사하다.
김장을 안 했다. 지내신 노모께서 “올해부터는 사먹자!”하셨던 까닭이다. 마침 생협과 서울환경연합이 매년 진행하던 ‘김장나누기’ 행사 때, 판매용 김장도 해서 수익을 이웃돕기에 쓰겠다고 하기에 주문을 넣어두었다. 행사가 취소됐다. 늘 협찬하던 큰 기업에서 협찬을 중단했단다. 김치 없이 겨울을 어찌 나지 싶어 걱정이었다. 바라고 들으라고 한 걱정은 아니었으나 강원도가 고향인 후배가 고랭지 배추로 담은 부모님 댁 김장을 한 통 얻어다 준다. 다른 후배 내외는 교외에서 텃밭농사 짓는 부모님이 기른 배추로 담은 김장 김치 한 통을 가져다주었다. 아이 외할머니 댁에서도 김장 김치가 한 통 올라왔다. 그것만 해도 배가 부른데 이웃의 선배 한 분이 해남에서 김장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다며 나눠주신다. 마음마저 부풀어 올라 가슴이 따뜻하다.
나눔의 마법 따위는 없다. 누가 누구를, 일방이 일방을 돕는 일 따위는 환상이다. 이익을 타산하고 되돌아올 보응을 계산하기 전에 손이 먼저, 말이 먼저, 마음이 먼저 나가는 게 우리 생활 속 나눔의 현실이다. 어려워도 돕고, 힘들어도 거들어야 나눔이다. 새해가 열렸다. 같은 시간의 흐름일 뿐인데 해를 나누고 끝과 시작을 정해 산 것이 사람의 오래된 역사인지라 새로 열린 시간의 문 앞에서 우리 사회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 일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누는 일, 사람이 사람을 돕고, 사람이 자연을 돕고, 자연이 사람을 돕는 일이다. 거창하게 말고, 규모 있게 말고, 잘 나서도 아니고, 바라는 게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마음이 가서, 사람 노릇하며 살려고 ‘돕는’, 그런 나눔!
글 / 박현철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