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지리산의 봄

산청 단속사지(斷俗寺址) 정당월매(政堂月梅) 한지에 수묵채색, 168×265cm, 1998년


산청·하동·구례·남원·함양,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고을마다 산야는 봄꽃 향기로 물든다. 섬진강과 경호강의 물이 풀려 남해로 흘러갈 때 천지는 이미 꽃 사태로 아우성이다.  ‘산청3매’로 불리는 원정매(元正梅), 정당매(政堂梅), 남명매(南冥梅)는 선비정신을 추앙하고 기리는 매화로 유명하다. 산청에는 지금도 옛 사람들의 탐매기행을 따르는 풍류가 이어진다. 

매화가 만개할 무렵 하동에서는 마침내 벚꽃이 터지고 온 사방이 환해진다. 이름 그대로 화개(花開)의 십리벚꽃은 천지를 물들이고 섬진강변은 인파와 꽃사태로 들썩인다. 화개장터와 쌍계사도 야단법석이다. 상춘객은 삼삼오오 모여 둘레길을 걷고 하동읍 먹점마을의 매화는 그윽하다.  

  

하동 먹점마을의 봄 한지에 수묵채색 46×60cm, 2016년


구례에서는 산수유마을이 노랗게 물든다. 원경의 춘설과 강변의 산수유가 어울리고, 봄꽃이 연출한 풍경이 생업이 된 산수유축제는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천년사찰 화엄사의 흑매화, 천연기념물 길상암 매화, 지장암의 올벚나무도 이름값에 어울리는 자태를 보여준다. 이 때 산벚꽃 흐드러진 피아골의 연곡사에 동백이 피고 진다. 작은 부도 옆에 세워진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高光洵 殉節碑)에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은 마치 핏빛처럼 선연하다.  

이즈음 남원에서는 솔숲 아래 진달래가 수줍게 피고 지고 바래봉의 철쭉이 피어난다. 그 산길 이어지는 팔랑치 고개에 행락객의 긴 행렬도 이어진다. 꽃길은 함양의 봄으로 연결된다. 안의면 금천리의 광풍각 벚꽃이 비단내(금천)로 흩날리고 고목의 왕버들은 새순을 달고 회춘(回春)을 만끽한다. 함양은 우안동 좌함양으로 불리는 선비의 고장이다. 자연이 선물한 지리산 풍경 속에 선비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 화림동계곡이다. 계곡의 봄은 거연정, 영귀정, 동호정, 농월정의 운치 속에 깃든다. 진달래와 수양(능수)매화, 그리고 벚꽃의 도열을 받으며 반석이 빛나고 있다. 

 

산청 황매산 철쭉, 한지에 수묵채색 167×231cm, 2008년


지리산의 봄은 마침내 산청으로 돌아와 왕산과 마주한 황매산의 철쭉제로 절정을 이룬다. 5월까지 이어지는 봄꽃의 향연은 실로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인사이고 대지와 초여름의 신록을 이어주는 마중물이다. 

 

글 그림 | 이호신

이호신 님은 지난 32년 동안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마을의 삶을 붓그림으로 담고 있는 한국화가.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운주사 천불천탑골1’ 등 대가람 연작과 소나무와 마을 연작 등 진경산수와 생활산수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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