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선 글, 임효영 그림
“2007년 12월 7일 금요일 오전 7시 6분, 태안 앞바다에서 초대형 크레인을 실은 삼성1호가 20만 톤 기름이 실린 허베이 스피릿호와 부딪혔다. 배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바다는 오후 늦게까지 무섭게 파도를 몰고 왔다. 겨울바람에 역한 기름 냄새가 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검은 기름에 뒤덮여 죽은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퍼덕이며 뒹굴었는지, 갈매기 주변이 검은 기름으로 얼룩져 있었다. 문득 수업 시간에 보았던 검은 바다와 시커멓게 죽어 버린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태안 바다가 그렇게 시커멓게 변해 버린 일이 있었다. 원유를 실은 배가 바다에서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 기름이 바다를 잠식하고, 바다를 근거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숨통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이전까지는 누구도 상상해 본 일이 없었다. 태안에서부터 서산, 보령, 서천, 홍성, 당진에 이르기까지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됐고,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된 것은 물론 매일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으로 향했다. 방제복을 입은 그들은 바다에서 기름을 거둬내는 일을 도왔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해상 203㎢, 해안 54㎢까지 해양오염지역이 되었고, 해안사구의 훼손 면적도 4만5964㎡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 주민들의 건강이상 호소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알려진 것만 해도 이 정도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어마어마한 사건은 그 충격에 비해서 금세 잊히고 말았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태안이 본 모습을 되찾는 시간은 최소 30년이며, 일부 지역은 복구가 영원히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동안 일각에서는 태안기름유출 사건이 아니라 삼성중공업선박 기름유출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징벌적 손해배상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수년에 걸친 지리한 재판이 열리는 동안 사고 책임의 주체는 은근슬쩍 뒤로 물러났다. 누구도 징벌되지 않았다. 다만 시커먼 기름에 뒤덮인 적 있다는 꼬리표만 태안에 남겨졌을 뿐이다.
『바다가 기름으로 덮인 날』이 의외의 책인 건 그 때문이다. 잠자던 기억 저편에 있던 태안을 많고 많은 사고 현장 중의 하나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이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도록 만든다. 색채를 절제하고 흑과 백으로만 표현된 장면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 앞에서 마음이 쿵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치게 된다. 이를테면, 모래사장 곳곳에서 허리를 숙여 하얀 천을 드리우고 기름을 걷어 내는 사람들의 모습, 검은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바위틈에서 흰뺨오리를 발견하는 순간, 새카만 파도가 끊임없이 덮여오는데 그걸 피하지 못하고 꿀꺽꿀꺽 입으로 삼키던 소년의 악몽, 이런 장면들은 극적인 동시에 현실의 한 조각이다.
책은 그때 태안 앞바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사고 이후에 사람들은 어떻게 연대했는지, 바다와 바다 생명체들과 인간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런 중요한 문제를 그림책으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123만 명의 땀방울이 태안 앞바다에 상괭이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손길들이 영영 사라질 줄 알았던 바다를 다시 푸른빛으로 빛나게 만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손바닥 도장을 찍으며 약속했다. “잊지 않고 살던 곳으로 돌아와 준 굴, 조개, 꽃게들아! 견뎌 줘서 고맙고 이겨 내서 고마워. 다시는 너희들의 바다를 아프게 하지 않을게.” 그 속에 내 손바닥도, 현우와 시윤이 손바닥도 쿡! 찍혀 있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너희들의 바다’에 밑줄을 긋는다. 그 바다에 기름이 덮인 날을 기억하려고 말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박혜선 글, 임효영 그림
“2007년 12월 7일 금요일 오전 7시 6분, 태안 앞바다에서 초대형 크레인을 실은 삼성1호가 20만 톤 기름이 실린 허베이 스피릿호와 부딪혔다. 배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바다는 오후 늦게까지 무섭게 파도를 몰고 왔다. 겨울바람에 역한 기름 냄새가 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검은 기름에 뒤덮여 죽은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퍼덕이며 뒹굴었는지, 갈매기 주변이 검은 기름으로 얼룩져 있었다. 문득 수업 시간에 보았던 검은 바다와 시커멓게 죽어 버린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태안 바다가 그렇게 시커멓게 변해 버린 일이 있었다. 원유를 실은 배가 바다에서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 기름이 바다를 잠식하고, 바다를 근거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숨통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이전까지는 누구도 상상해 본 일이 없었다. 태안에서부터 서산, 보령, 서천, 홍성, 당진에 이르기까지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됐고,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된 것은 물론 매일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으로 향했다. 방제복을 입은 그들은 바다에서 기름을 거둬내는 일을 도왔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해상 203㎢, 해안 54㎢까지 해양오염지역이 되었고, 해안사구의 훼손 면적도 4만5964㎡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 주민들의 건강이상 호소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알려진 것만 해도 이 정도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어마어마한 사건은 그 충격에 비해서 금세 잊히고 말았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태안이 본 모습을 되찾는 시간은 최소 30년이며, 일부 지역은 복구가 영원히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동안 일각에서는 태안기름유출 사건이 아니라 삼성중공업선박 기름유출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징벌적 손해배상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수년에 걸친 지리한 재판이 열리는 동안 사고 책임의 주체는 은근슬쩍 뒤로 물러났다. 누구도 징벌되지 않았다. 다만 시커먼 기름에 뒤덮인 적 있다는 꼬리표만 태안에 남겨졌을 뿐이다.
『바다가 기름으로 덮인 날』이 의외의 책인 건 그 때문이다. 잠자던 기억 저편에 있던 태안을 많고 많은 사고 현장 중의 하나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이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도록 만든다. 색채를 절제하고 흑과 백으로만 표현된 장면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 앞에서 마음이 쿵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치게 된다. 이를테면, 모래사장 곳곳에서 허리를 숙여 하얀 천을 드리우고 기름을 걷어 내는 사람들의 모습, 검은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바위틈에서 흰뺨오리를 발견하는 순간, 새카만 파도가 끊임없이 덮여오는데 그걸 피하지 못하고 꿀꺽꿀꺽 입으로 삼키던 소년의 악몽, 이런 장면들은 극적인 동시에 현실의 한 조각이다.
책은 그때 태안 앞바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사고 이후에 사람들은 어떻게 연대했는지, 바다와 바다 생명체들과 인간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런 중요한 문제를 그림책으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123만 명의 땀방울이 태안 앞바다에 상괭이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손길들이 영영 사라질 줄 알았던 바다를 다시 푸른빛으로 빛나게 만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손바닥 도장을 찍으며 약속했다. “잊지 않고 살던 곳으로 돌아와 준 굴, 조개, 꽃게들아! 견뎌 줘서 고맙고 이겨 내서 고마워. 다시는 너희들의 바다를 아프게 하지 않을게.” 그 속에 내 손바닥도, 현우와 시윤이 손바닥도 쿡! 찍혀 있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너희들의 바다’에 밑줄을 긋는다. 그 바다에 기름이 덮인 날을 기억하려고 말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